월간참여사회 2007년 09월 2007-09-01   1054

축제는 끝나고

역전과 전복의 사회적 놀이터, 축제

축제는 화합이다. 축제에 그 누구도 제외시키지 않는다. 축제를 묘사한 그림들을 살펴보면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도 축제의 장 어디엔가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몸이 불편한 사람, 사회적으로 신분이 낮은 사람, 여성, 어린이, 늙은이 등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축제에서 병신춤 등 다양한 춤을 추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축제정신은 단순한 화합이 아니다. 진정한 축제정신은 일상적인 모든 요소의 화합이 아니라, 역전, 전복, 반역에 의한 화합이다. 세상을 거꾸로 뒤집어서 다시 화합하는 것, 일상의 관계를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축제정신의 본질이다.

그러므로 축제는 일상을 완전히 새롭게 볼 수 있는 상상력에서 출발하며, 이를 통하여 일상적인 질서를 새롭게 재구성하는 사회적인 놀이인 것이다.

아무리 축제가 상업적인 장삿속에 휘둘리고, 관광을 위한 상품으로 전락하더라도, 진정한 축제에는 이러한 본질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고, 남아 있어야 한다. 축제정신이 결여된 축제를 축제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한여름의 열기가 막바지로 치닫는 8월이면 영국에서는 지역마다 다양한 축제가 열린다. 이러한 8월의 축제들 가운데 축제정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축제가 있다. 화려한 의상과 분장과 타악기가 모두를 끌어안는 노팅힐 카니발과 다양한 공연, 화려한 전통군악대의 행렬로 유명한 에딘버러 축제가 그 주인공들이다. 이 두 축제 모두 사회에서 배제된 사람들, 초대받지 못한 사람들이 축제의 중심으로 우뚝 서서 새롭게 축제를 만들고, 축제 본연의 정신을 살려낸 대표적인 사례들로 꼽힌다.

유럽 최대의 흑인 음악예술제 노팅힐 카니발

매년 8월 마지막 주말과 그 다음 주 월요일에 영국은 노팅힐 카니발로 축제 분위기를 마음껏 즐긴다. 노팅힐 카니발은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흑인음악과 예술을 선보이는 축제다.

사실상 흑인음악을 유럽 대중에 알리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것도 이 노팅힐 카니발이다. 노팅힐 카니발을 통하여 흑인들의 음악과 예술이 백인 사회인 유럽에 새로운 기여를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노팅힐 카니발이 인종차별주의적 폭력과 인종폭동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인종간의 반목과 갈등이 카니발을 통하여 용해되고 완화되는 것만으로도 노팅힐 카니발은 진정한 축제정신을 구현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축제의 정수에 도달하는데 40여 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인종차별을 넘어 하나로 아우르는 축제의 힘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영국은 전쟁으로부터 사회를 재건, 복구하는데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식민지 국가로부터 많은 이민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카리브해 사람들도 50년대 초반부터 영국에 대규모로 이민을 왔다. 이들은 대부분 런던 서쪽 노팅힐에 정착했다. 하지만, 주거시설이 형편없는데다가, 파시스트 조직의 본부가 있는 노팅힐은 특히 인종차별이 심하여 충돌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1958년 8월 말 노팅힐에서는 흑인에 대한 폭력과 린치가 대규모로 가해졌다. ‘영국을 백인의 것으로!’라는 구호가 벽에 걸렸고 인종차별적 폭력이 노골적으로 저질러졌다. 당시 신문에서도 ‘백인들에 의한 흑인사냥’이라고 표현을 쓰고 있을 정도였다. 이러한 사태에 영국사회는 충격을 받았다. 인종차별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나 있는 것으로 믿었던 영국인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당시에도 이민을 통제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다. 하지만 카리브해 이민자들은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대신 자기들에게도 전통과 문화가 있다는 것을 지역에 알리기로 하였다. 카리브 해의 전통과 문화를 백인 사회에 알리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문화와 정체성에 대한 자존심을 회복하고 자긍심을 불러일으키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59년 ‘카리브 카니발’이라는 이름의, 크게 주목 받지도 못하는 카니발이 열렸다. 이 해의 또 다른 중요한 사건으로 카리브 해 출신의 흑인 젊은이가 살해당했고, 영국 사회는 분노하였다. 이 젊은이의 장례식에는 백인을 포함한 다양한 인종이 참가하여 인종차별주의를 규탄하였다.

해가 거듭될수록 카니발에 점점 더 많은 인종과 문화가 참가하여 규모가 커졌다. 카니발의 이름도 노팅힐 카니발로 정착되었다.

노팅힐 카니발을 통해 소수 인종 집단은 자신의 문화적 전통에 대하여 자부심을 갖고 스스로 즐길 수 있는 기회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이주해온 사회에 문화적인 다양성을 더하는 기여를 하게 되었다. 실제로 카리브 해의 레게음악은 노팅힐 카니발을 통하여 유럽에 소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백인들은 카리브 해 흑인들을 자신들의 일을 대신하는 노동자나 일하는 기계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음악과 문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이제 노팅힐 카니발은 영국 전체의 축제로 성장하였다. 하지만, 58년의 영국 역사상 가장 격렬했던 인종폭동을 기억할 때에야 비로소 노팅힐 카니발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게 된다. 피로 물든 과거의 역사에서 이해와 화합의 축제가 싹튼 사실을 기억하기 위하여 노팅힐 카니발은 1958년 흑인에 대한 폭력이 대대적으로 시작되었던 8월 마지막 주말에 열린다.

전쟁이 앗아간 인간성 회복을 위한 예술 한마당

에든버러는 스코틀랜드의 수도이다. 8월이면 에든버러는 세계 각국의 예술가들과 이들이 펼치는 예술 한마당을 보러 온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로 축제 분위기가 한껏 달아오른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에든버러 축제의 역사는 결코 길다고 할 수 없다.

제 2차 세계대전은 인류에게 큰 충격을 던짐과 동시에 반성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유럽인들은 유대인 학살과 잔혹한 전쟁으로 인간성이 말살되고, 문명이 파괴되는 장면을 목격하였다. 이러한 암울함을 문화의 힘으로 이겨내려는 의지가 에든버러 축제를 탄생시켰다. 에든버러 축제를 일구어낸 사람들은 축제가 스코틀랜드와 영국, 나아가 유럽의 문화적인 삶을 풍부하게 해주고, 이를 통해 인간성이 꽃피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뿐만 아니라 축제의 예술적인 정신이 성과를 낸다면, 관광산업으로 직결될 것이라고 예견하였다. 이에 입각하여 제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7년 에든버러 축제가 시작되었다.

에든버러 축제는 초기에 세계 최고의 고급 예술 축제를 목표로 했다. 클래식 음악, 오페라, 연극, 무용 등의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예술가들을 초빙하여 최고급 예술을 선보이고자 했다. 하지만, 횟수를 거듭하면서 다른 많은 행사들이 파생되었다. 예를 들면 스코틀랜드 전통의상을 입고 백파이프를 부는 전통 군악대 행렬, 서적 축제, 영화제, 재즈 축제 등이 생겨났다. 지금은 원래의 축제 기간인 7, 8월 이외에도 과학제, 어린이 축제, 새해맞이 축제 등 다양한 행사가 일 년 내내 펼쳐지고 있다.

초대받지 않은 비주류가 만든 에든버러 프린지

이 가운데에서 가장 유명하고 중요한 축제가 프린지 축제이다. 프린지 축제는 말 그대로 중심에서 벗어난 주변부, 일탈의 의미를 잘 살림으로써 기존의 중심을 뒤집는 축제의 정신에 충실한 축제이다. 에든버러 축제는 처음에 세계 최고의 고급 예술을 지향하여 최고의 예술가들만을 초대하였다. 하지만, 이름 없는 예술가들도 ‘초대받지 않은 손님’으로 에든버러에 도착하였다. 이들을 위한 무대는 어디에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이들은 초대받지 않은 축제를 열었고, 그것이 프린지 축제의 시작이 되었다. 고급예술을 지향하는 에든버러 본 축제와 일탈의 축제가 동시에 시작된 것이다.

현재 관광객들의 인기를 끄는 것은 오히려 초대받지 못했던 세계의 예술가들이 시작한 프린지 축제일 것이다. 이들에게는 아름다운 중세도시 에든버러의 길거리와 골목, 장터 모든 공간이 무대가 된다. 도시 전체를 축제의 무대로 바꿔버린다는 의미이다. 기존의 질서를 뒤집고, 기성의 가치관을 전복하는 축제의 적극적인 의미가 에든버러 프린지 축제에서 아주 잘 구현되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에든버러의 프린지 축제를 본받아 다양한 형태의 프린지 축제를 펼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8월에 기득권 예술에서 소외된 공연예술을 중심으로 프린지 축제를 하고 있다.

축제의 정신을 일상 속으로

8월을 마지막으로 노팅힐 카니발도, 에든버러 축제도 끝이 났다. 축제를 통한 전복과 세상의 재편은 끝이 나고 모두 일상으로 되돌아왔다. 축제를 경험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새롭게 추구해야만 하는가? 이제는 일상에서 축제정신을 구현하는 일이 남아 있다. 참여연대의 다양한 활동도 어찌 보면 축제정신을 일상생활에서 실현하는 일일 것이다. 축제는 함께 추구하는 즐거운 일이다. 새로운 둥지를 튼 참여연대에서 한 사람도 제외된 사람 없이 일상적인 질서를 뒤집는 축제를 계속 펼쳐가는 것이 우리 앞에 놓인 일이다.

참여연대 시민위원장, 성공회대 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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