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7년 08월 2007-08-16   463

지구촌 평화의 날은 언제 오려나

우리가 지구촌 국제분쟁에 관심을 두는 것은 그 궁극적인 목표가 한반도 분단 극복의 대안을 찾고자 하는 데 있다. ‘김재명의 평화 이야기’는 전쟁의 광풍과 정치적 폭력이 그칠 새 없는 21세기를 살아가는 독자들과 더불어 지구촌 평화를 함께 생각하는 연재 칼럼이다. 편집자 주

2,400년 전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그의『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이렇게 기록했다. “전쟁은 일상적인 시민생활의 규범을 혼란 속으로 몰아넣을 뿐 아니라, 법과 정의의 이념을 제쳐놓고 우리 인간의 본성을 공격적이 되도록 만든다.” 희랍문명의 꽃을 피웠던 아테네 시민들이 전쟁의 광풍에 휩싸이는 것을 지켜보면서 투키디데스는 우리 인간의 공격적 본성에 깊은 절망감을 느꼈다.

그런 모습을 우리는 21세기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아프리카 수단 다르푸르 지역들에서 본다.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의 전쟁보다 더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21세기의 유혈투쟁들은 투키디데스가 절망했다는 인간의 공격적 본성만 갖고는 설명이 안 되는 복합적인 요인들(이를테면 석유를 비롯한 자원 탐욕, ‘세계정부’가 없는 무정부주의적 국제체제, 전쟁이 터지기를 은근히 기다리는 군수회사를 비롯한 어둠의 세력 등)이 깔려있다.

인류역사는 곧 전쟁사

인류사를 돌아보면 피의 역사로 가득하다. 중국이나 인도, 페르시아 등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역사나, 그리스-로마시대를 거친 유럽사를 보아도 크고 작은 전쟁들은 끊임없이 되풀이 됐다.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끼리의 전쟁이나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전쟁에서부터 21세기 첫전쟁이라 할 아프간전쟁, 그에 뒤이은 이라크전쟁까지 숱한 전쟁이 있어왔다. 한 전쟁연구에 따르면, 우리 인간이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그리고 황하강 유역 등에서 문명사회를 이루기 시작한 이래로 지난 3,400년 동안 전쟁 없이 지낸 기간은 겨우 268년이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지구촌의 전쟁과 평화, 군사 관련 연구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지닌 싱크 탱크다. 이 연구소에선 해마다 『군비·군축·국제안보 연감』을 발행해왔다. 올해 6월에 발간된 2007년도 SIPRI 연감에 따르면, 2006년 1년 동안 사망자 1천 명 이상을 낸 전쟁은 17개다. 이 가운데 4개 전쟁을 빼고는 모두 10년 이상을 끈 전쟁들이다. 근래에 일어난 4개의 전쟁이란 △알-카에다 세력을 상대로 미국이 벌이는 테러전쟁 △이라크전쟁 △수단 동부지역의 다르푸르 내전 △이스라엘-레바논 헤즈볼라 전쟁을 가리킨다.

2007년 지구촌 현실은 이라크 유혈사태를 비롯해, 평화와 안정과는 거리가 멀다. 이를 반증하는 하나의 통계자료가 있다. 2007년6월 현재 8만3천 명의 평화유지군(군인 7만9백 명, 경찰 9천6백 명, 군사정전감시단 2천5백 명)이 전 세계 18개 분쟁지역에서 활동 중이다. 유엔평화유지군의 파병 숫자로 보면, 유엔이 평화유지활동을 시작한지 58년이 흐르는 동안 지금이 가장 많다.

평화는 기도로 오지 않는다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전쟁의 광풍에 희생당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지금부터 40년쯤 전인 1960년대는 미국의 베트남전쟁 개입 반대 데모가 지구촌을 들끓게 했던 격동의 시대였다.

그런 시대를 고민하며 살았던 프랑스의 지성 레이몽 아론은 “어지러운 시절은 (우리로 하여금) 생각을 깊이 하도록 만든다”(Troubled times encourage meditation)고 말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도 9·11 테러며 미국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공 등이 우리의 삶에 무슨 뜻을 지니고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하다.

지난 7월 한국 교회 젊은이들의 아프가니스탄 피랍사건은 먼 곳에서 벌어지는 지구촌 분쟁이 우리에게도 어떤 형태로든 관련됨을 보여준다.

몇 해 전에 미국 뉴욕의 헌책방에서 뜻 깊은 책을 하나 찾아냈다. 6·25 때 특파원으로 활동했던 사진가 칼 마이던스가 펴낸 『폭력적인 평화』(1968년)다. 마이던스의 책에 실린 사진들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여성 사진가인 마가레트 버크-화이트의 작품. 6.25 때 죽은 한 남자의 시신의 관 앞에서 3명의 여인이 서럽게 우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다. 그 여인들은 고인의 처,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였다. 3대에 걸친 그 여인들이 나란히 앉아 윗몸을 굽힌 채 서럽게 흐느끼는 사진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통곡소리가 들려오는 듯 한 환청을 느끼기 마련이다.

이처럼 전쟁은 민초들에게 크나큰 시련과 슬픔으로 다가온다. 전쟁은 무한폭력이 합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특수한 공간이다. 그런 비극적 상황을 이용해 이득을 챙기는 죽음의 상인들, 또는 어둠의 정치세력들이 있다. 힘이 진리라고 믿는 어둠의 세력에게 전쟁의 유혹은 강하다.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영구평화는 무덤에서나 가능하다”고 했다. 무덤을 파내 그 속에 드러누워 있는 평화를 깨워 일으키려면, 전쟁이 왜 일어나는지, 전쟁을 부추겨 이득을 보는 세력이 누구인지를 제대로 가려내야 한다. 그리고 평화를 얻기 위해 이 땅의 평화주의자들이 함께 뭉쳐 전쟁광들과 어둠의 세력에 부딪쳐야 한다. 평화는 기도한다고, 간절히 바란다고 오지 않는다.

김재명 국제분쟁전문기자, 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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