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7년 08월 2007-08-16   842

기분 좋은 초록정치의 파수꾼

만약 아줌마가 사전적 의미대로 결혼한 여자를 예사롭게 이르는 말이라면, 나는 아줌마여도 상관없다. 그러나 만약 아줌마가 현재 통용되는 사회학적 의미대로라면 나는 아줌마이고 싶지 않다. 웬만해선 컬이 안 풀리는 뽀글뽀글 파마머리, 전철에서 빈자리가 나기만을 호시탐탐 노리는 눈초리, 세 사람 이상인데도 항상 횡대만을 고집하여 길을 걷는 이상한 습관, 아이로 시작해서 남편으로 끝나는 수다 등이 아줌마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이렇듯 세상은 아줌마를 긍정하지 않는 이미지들로 가득 차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줌마 정당을 표방한 정치세력이 있단다. 바로 ‘초록정당을 만드는 사람들’(이하 초록만사). 이현주 초록만사 실행위원은 아줌마이길 거부하는 내게 ‘생명을 낳고 기르는 여성성으로 사회와 지구를 돌보는’ 진짜 아줌마의 모습을 보여주며 이제 아줌마임을 긍정해도 좋다고 조용히 일러주었다.

사람을 알게 되고 사람과 함께 한 의정활동

그도 2002년 지방의원이 되기 전까지는 그저 직장인이었던 모양이다. 신문사에서 18년을 보내는 동안 그에게 과밀학급으로 어려움을 겪고 방과 후엔 방치되고 마는 아이들 문제, 그 지역을 흐르는 안양천이나 쓰레기 소각장 문제들은 남의 일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가 사회문제에 무감했던 것만은 아니다. 노조에서 상근도 하고, 서울 YMCA에서 회원 활동도 오랫동안 하였다. 녹색가게에서 자원 활동도 꾸준히 하였다. 그의 표현대로 ‘이것저것 참견을 하고’ 다닌 셈이다. 그러나 정작 함께 사는 지역 사람들에게까지 그의 마음이 미치지는 못했다. 학교에서 제대로 된 급식을 먹지 못하는 아이들, 아이를 맡길 곳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직장 다니는 엄마들, 소각장 배출 가스를 마시며 산책하는 노인들이 함께 사는 마을 사람들인 것을 제대로 알아채지 못했다는 얘기다.

여성민우회 추천 후보로 지방의원이 되고부터 비로소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눈에 담을 때는 반드시 여성의 시선을 견지한다. 왜냐하면 지역을 바라볼 때 살림의 체험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관계를 통해 마을을 살리겠다는 마음도 굳건히 다졌다. 그 결과 다소 모험적이라고 볼 수도 있는 그의 정치인으로서의 제2의 인생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선거운동부터 남달랐다. 그는 선거사무실을 따로 임대하지 않고, 살고 있는 아파트를 선거사무소를 이용했다. 당시 5층이었던 그의 아파트에 걸어 놓은 플래카드가 의외의 효과를 거두자 언론에서는 이색 선거운동 아이디어라며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선거차량도 별도로 빌리지 않았다. 타고 다니던 마티즈 와이퍼에 고무장갑을 끼우고 돌아다니거나 자전거에 깃발을 꽂고 누비며 유권자들을 만났다. 비가 오면 다른 후보들은 선거운동을 중단하지만 혼자서 그는 학교에 찾아가 우산 챙겨주는 엄마들을 만나 신나게 독점(?) 유세를 하기도 했다. 의정활동도 구태와 관습에서 한참 멀긴 마찬가지. 그는 스스로 “성과는 없고 문제제기 정도밖에”, “표결 붙이면 밀려서 영향을 거의 미치지 못했어요.”라고 겸손해 하지만, 그가 제대로 된 의원 역할을 하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는 그가 지키려고 노력했던 원칙하나만 보더라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회의 있을 때마다 최대한 문제제기 하려고 했어요. 4년 동안 한 번도 구정 질문 안하는 의원도 있거든요. 그리고 모든 회의에 참석하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어요. 기본회의 외에 예결특위, 추경회의까지 들어갔어요. 처음에 저는 혼자 무소속이고 여자니까 (당시 양천구 의원 20명 중 여성은 그 하나였고, 한나라당 소속 16명을 비롯해 그를 제외한 19명의 의원은 모두 정당원이었다) 모든 특별위원회에 다 들어가겠다고 했어요. 처음엔 그러라고 하더니 본예산에 한 번 들어가니까 담에 빠지라고 하더라구요. 결국 의원들이 공부해야 하고 준비할 게 많으니까 안 가려고 해서 결국 제가 다 들어갔어요.“

선거운동부터 의정활동까지 다른 정치인들이 하는 것과 정반대로 활동을 하다 보니, 양천구 홈페이지 게시판엔 ‘양천구 의회에는 이현주 의원 한사람밖에 없다’는 한탄이 올라올 정도였다.

나만의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초록정치

눈부신 의정활동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 그는 정당과 중앙정치의 심판장으로 전락한 2006년 지역선거에서 낙선했다. 정당공천제와 중선구제를 도입한 공직선거법 개정의 피해자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정당에 줄서 권력을 얻으려는 정치꾼이 아니라 주민의 살림살이를 제대로 챙기는 살림꾼이 되겠다는 소신을 버릴 수가 없었던’ 그는 이제 홀가분한 모습으로, 그러나 목동마을 만들기 포럼, 여성들과의 독서모임, 지역 아동센터 추진 등 더욱 본격적으로 목동 지역을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만들기 위한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이런 소신 때문에 그는 낙선이 확정되었을 때도 덤덤한 모습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그동안 고마웠다며 웃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그가 남들에게 고배였을 낙선의 경험조차 새로운 도전으로 받아들이며 성공적인 인생이모작의 결실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곁에 늘 초록정치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초록정치란 뭘까?

“초록이라고 하면 환경문제만을 떠올리는데 제가 정치를 경험해보니까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정치를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현재 정치는 이해관계를 위해 하는 거잖아요. 제가 의원 됐을 때 사람들이 제게 이익이 되지 않는데 왜 열심히 하냐는 의심을 계속 받았어요. 이해관계를 추구해야 하는데 안 하니까……. 자기 이익을 위해 하는 건 당연한 거고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건 이해 받기 힘들어요. 어떤 면에서 초록 정치는 자기만의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는 덧붙여 자기만의 이해관계를 넘어서 추구해야 할 초록정치의 가치로 ‘생명, 살림, 다양성’등을 꼽았다.

생명, 평화, 상생을 지향하는 초록정당

초록정치를 꿈꾸는 사람들은 지난 5월 31일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정당으로서 초록 정당을 제안하였다. 초록 정당을 만드는 사람들로 옷을 갈아입은 것이다. ‘권력을 둘러 싼 쟁투보다는 생명 평화의 가치와 문화를 확산하고 초록 세상의 꿈을 이루는’ 바탕이 되고자 하는 초록만사는 ‘사람을 살리고 지구를 살리고 우주 생명의 기운을 살리는 살림 정당, 태양과 바람의 경제를 만들어가는 자전거 정당, 뭇 생명을 존중하고 자연의 지혜를 본받는 반딧불이 정당, 민주주의와 분권, 지역공동체에 기반을 둔 풀뿌리정당, 사회적 약자, 소수자들의 친구가 되는 말아톤 정당, 미래의 주인공인 어린이들의 마음을 닮은 강아지똥 정당 등 다양한 초록가치를 제시하였다. 우리에게 익숙한 녹색 대신 초록을 쓰는 이유는 초록이 서구 녹색당이 가진 한계를 넘어 생명, 평화, 상생 등의 가치를 표현할 수 있는 색깔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란다. 초록만사는 현재 전국을 돌며 지역별 제안 모임을 갖고 있는데, 8월부터 창당발기인 모집하고 9월에 창당발기인대회를 거쳐 창당준비위원회를 발족하겠단 야심찬 계획을 가지고 있다. 목표는 1만 명 당원 확보. 2008년 총선에서 득표율 3% 득표율을 달성하고 비례대표 1명을 배출하는 것이다.

다소 낭만적이고 이상적으로 보이는 초록 가치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궁금해진다.

“말로는 안 되는 거 같아요. 내가 사는 모습을 어떻게 보이냐에 따라 설득이 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요. 지역에서 보면 초록정당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그동안 그 지역에서 어떤 행동을 보였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성급히 하면 안 돼요. 우리나라는 정당 만들 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하지만 초록 정당은 그래서는 안 되죠. 시간이 걸리더라도 거칠건 거쳐야 될 거 같아요.”

하루만 자고 일어나도 달라져 있는 요즘 시류에선 굼떠 보일지라도 제대로 만들어가겠다는 각오이다.

초록정치 실천은 일상으로부터

그는 ‘기분 좋은 초록정치’의 파수꾼의 몫을 다하기에도 바쁜 생활이지만 틈틈이 숲을 찾는다. 우연히 찾았다가 너무 좋아서 내친 김에 숲해설가 전문가 과정까지 마쳤다고 하나 내게는 그것 역시 초록정치를 가까운 삶에서 실현하는 또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마치 그의 남편이 병적이라고 지적할 만큼 치열하게 실천하려는 ‘빈그릇 운동’처럼 말이다.

“지방 의원할 때 음식물 쓰레기를 추적해 본 적이 있어요. 상상도 못할 이물질이 얼마나 많은지. 그걸 대충 거른 다음 끓여서 돼지에게 먹이더라구요. 그 돼지고기로 우리 식탁에 올라오는 햄 같은 식품을 만드는 것이지요. 빈그릇 운동처럼 남기지 않는 게 최선의 대안이에요.”

그 말을 듣고도 나는 음식쓰레기가 줄지 않아서 골칫거리라고 하소연을 계속 해대자, 음식 쓰레기를 멋지게 활용하는 몇 가지 팁을 일러준다.

“지렁이를 키우세요. 가끔 지렁이가 어딘가로 탈출하긴 하지만. EM발효액을 이용하면 미생물이 가득한 퇴비를 만들 수 있어요. 화단에 뿌려도 좋고, 탈취제로도 아주 좋지요.”

하지만 그는 아무래도 음식 쓰레기를 남기지 않는 게 우선이라는 듯 수박껍질로 장아찌 만드는 법을 가르쳐 준다.

매 순간을 의식하는 삶

그는 지방의원으로 일하는 동안 지역을 보는 눈을 키웠으며, 초록가치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얻고, 삶을 나누는 정치를 실현하는 데 밑거름이 되는 소중한 경험을 하였다. 스스로도 매우 재미있었고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되돌아보았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그 행복한 삶은 낙선 후에도 여전한 듯했다. 의원 타이틀 여부를 떠나 초록가치를 실천하는 현장에 계속 있기 때문일까? 그는 블로그에 ‘살아가면서 순간순간을 의식하는 것’으로 삶의 목표를 정했다며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쉽지는 않겠지만 불가능할 거 같지는 않습니다. 재미있을 거 같지 않습니까? 길을 걸을 때는 내 걷는 자세는 바른가, 안 좋은 자세를 고집하고 있지는 않나? 멍한 상태로 있을 때는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며 멍하고 있는 거지? 무슨 스트레스 있나? 혹시 화가 날 때는 어, 내가 화가 났네. 뭣 때문이지? 심호흡부터 해야지. 음식 만들 때는 식구들이 맛있게 먹고 건강해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하나, 아니면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고 있나 내 속을 들여다보면서……”

순간을 의식하며 자신을 들여다보면 사람들이 보이고 함께 사는 지구도, 우주도 보이나보다. 그가 행복한 이유이다.

박영선 참여사회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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