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7년 06월 2007-06-01   856

어색한 스승의 날

연중 많은 국경일과 기념일이 있는데 복잡하고 찜찜한 기분으로 보내게 되는 요상한 날이 있다. 스승의 날이 그렇다.

살아오면서 고마운 스승을 여럿 만났지만 불혹에 새로 시작한 학업의 길에서 ‘인생의 스승’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은 스승을 만나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4월의 달력을 넘기며 아이들에게 물었다.

“엄마가 이번 스승의 날에 특별한 선물을 해드리고 싶은 분이 있는데, 너희들 생각엔 어떤 게 좋겠니?” 초등 1학년인 작은 아이가 냉큼 “시원하게 안마를 좀 해드리면 어때요?”하고 나섰다. 6학년인 큰애는 잠깐 더 생각하는 눈치더니 “나물을 캐어다 맛있는 반찬을 만들어 드리지 그러세요?”라고 제안했다.

아이들의 대답에 내 마음이 흐뭇해졌다. 돈으로 무엇을 사드리라는 손쉬운 제안 대신 시간 들이고 몸을 움직여 무엇을 해드리라고 말할 줄 아는 녀석들이 기특했다. 그러나 나는 어떤 제안도 실행하지 못했다. 핑계야 찾으면 없겠는가마는, 결국은 게으름과 정성 부족 때문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의 스승께 못해드린 것 때문에도 아쉽고 후회스런 마음이었지만 아이들의 담임선생님 때문에도 내내 마음이 불편한 하루였다. 나는 아이의 담임선생님들을 나의 조력자, 더 정확하게는 공동 양육자로 여긴다. 내가 해진 뒤 사적인 영역에서 아이를 돌본다면 그들은 낮에 공적인 영역에서 내 아이를 키워주는 이들이다. 나는 그들에게 동지애에 가까운 친밀한 마음을 품고 있다. 이런 날에 그들을 데면데면하게 대하거나 모른 척 해야 한다는 사실이 어색하고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나 어렸을 적에는 4월쯤이 ‘가정방문의 달’이었다. 아이들이 어떤 환경에서 자라고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담임선생님이 학생들의 집을 방문하는 행사였다. 연일 이 집 저 집 순례하다보면 물리치지 못하고 받은 술 몇 잔에 밤새 부대끼기도 하고, 학부모가 억지로 호주머니에 넣어준 달걀이 깨져 양복저고리를 버리는 일도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가정방문의 달이 중간에 이르면 어떤 접대도 사양한다고 누누이 당부하시곤 했으나 우리 집만은 예외였다. 가정방문이 우리 동네로 잡히는 날 땅거미가 내릴 무렵이면 선생님들이 미리 약속이나 한 듯 앞서거니 뒤서거니 마당으로 들어서시곤 했다. 엄마는 홍어무침과 멸치조림, 김치보시기를 얹은 조촐한 술상을 보았다. 소심한 마음에 늘 어렵게만 느껴졌던 선생님들이 막걸리 잔을 주고받으며 농담도 하고 노래도 부르던 정겨운 뒤풀이 광경이 아스라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스승의 날 저녁 뉴스에서 동료의 가슴에 꽃을 달아주며 자축하는 선생님들을 보며 소박한 술상 차려 그들과 정담을 나누고픈 마음이 간절했다. 누구보다 가까울 수 있는 사이인 교사와 학부모가 자연스럽게 정을 나누는 훈훈한 스승의 날을 우리는 언제쯤 누릴 수 있게 될까.

고진하 (참여사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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