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4년 12월 2004-12-01   890

부시 정권 제 2기, 그리고 한반도 평화

미 대선의 결과는 세계인들의 기대와는 달리 네오콘(공화당을 중심으로 한 미국의 신보수주의자들)의 승리였다. 민주당 케리 진영은 애초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지 못한 채 부시의 전쟁정책에 애매한 태도를 취하다가 기선을 잡는 계기를 놓쳤다. 그에 더해 미국 사회에 지난 1960년대 이래 밑바닥에서 꾸준히 진행되어온 ‘보수주의 혁명’ 위력이 마침내 확실하게 드러난 것이라고 하겠다. 무엇보다도 전쟁과 평화의 문제 앞에서 미국은 ‘전쟁의 지속’을 선택한 것이다.

재집권 4년은 ‘제국 해체의 과정’일지도…

그러나 부시 집권 2기는 과연 이러한 군사주의 정책의 관철을 별 저항 없이 관철해나갈 수 있을 것인가? 답은 ‘아니다’이다. 이번 미국 대선을 기점으로 사회적 양극화 현상을 노출했던 대목은 부시에게 적지 않은 도전이 되기 때문이다. 반 부시 세력은 비록 정치적으로는 패배했으나 사회적 반격 자세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반부시 운동과 흐름, 특히 이라크 정정의 장래는 부시체제에 중대한 부담이 된다.

네오콘 세력들은 일단 자신들의 강공기조가 변화하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지금의 정치적 승리를 지속적으로 확대재생산함으로써 미국 제국주의적 일방주의 힘을 강화시킬 구상을 그대로 관철시키려 할 것이다. 이른바 ‘보수주의 혁명의 완결’, 즉 미국 자신의 내부적 변혁과 세계전체 질서를 미국의 가치와 정책을 정점에 놓고 군사력으로 조형해나가겠다는 것이다.

부시 체제의 구호는 “대 테러 전쟁을 통한 미국과 세계의 안전”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반대다. 미국의 21세기 세계전략은 세계평화를 저해하는 위협을 제거했다기보다는, 그 위협의 요인을 더 강화하고 추가하는 사태를 보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강경정책을 쓰면 쓸수록 자기모순에 빠지는 상황이 벌어지고 마는 것이다.

하여 역설적이게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제국의 강화’가 아니라 ‘제국 해체의 과정’으로 들어가는 조짐을 보이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안전해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더더욱 스스로 위험해져가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미국의 정책적 틀 안에 들어서는 순간, 그 어떤 나라도 안전해질 수 없는 처지에 처하고 만다. 일방적 군사주의가 당분간 연명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미래의 생명력은 차츰 잃어가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미국은 자신의 국가적 정체성에 대해 질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는 상태에 처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안전이라는 문제에서, 그 안전해지려는 미국은 도대체 어떤 국가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실로, 미군에 대한 저항 근거지가 되어왔던 팔루자에 대한 총공세는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무고한 민간인들의 대대적인 희생과, 이에 분노한 이라크 저항세력의 항전과 아랍권의 분노는 미국의 미래를 스스로 만든 덫에 걸리게 한다. 팔루자는 소멸되지 않고 도처에서 팔루자 확산을 이뤄내고 있다. 어떻게 보면 아랍권 전체가 팔루자가 되어가는 것이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 때보다 더 넓고 깊은 죽음의 늪 한 가운데로 걸어 들어가고 만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미국과 세계 대중들은 부시정권의 선택이 얼마나 미국과 세계에 심각한 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는지 더욱 분명하게 깨닫게 될 것이다. 이와 함께 베트남 전쟁의 결말을 악몽으로 여기는 네오콘에게 팔루자는 그 악몽의 본격적인 시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부시 2기는 이러한 모순과 갈등이 보다 노골적으로 심화되어가는 단계임이 예상된다. 지금까지 방식에서 전격적으로 돌아서지 않으면, 부시 체제는 빠져나오기 힘든 궁지에 몰리고 만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에게 행동반경의 확대 여지가 생겨남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내재하고 있는 도전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부시정권은 그 기조는 변하지 않겠지만, 포장과 스타일은 그때그때 봐가면서 바꿔야 하는 정세에 직면한 것이다. 그 포장의 변화가 주고 있는 틈새를 얼마나 주체적으로 활용해나가는가에 따라 우리민족의 평화는 다른 차원에 놓일 수 있다.

한반도 평화, 국민의 투철한 응집력이 관건

지난 시기 노무현 정부의 대미 관계는 일방적 굴종 관계라 해도 지나침이 없다. 금년도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회의 참석 전, 미국 LA에서 행한 노무현 대통령 발언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중요한 노선선회의 의미를 가진다. 북한 핵포기라는 일방적 압박방식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미국의 선제공격정책 철회를 통해 북한의 핵무장이 필요하지 않은 환경 조성을 우선적으로 강조한 것은 네오콘 논리에 대한 정면반박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정작 정상회담에서는 이러한 우리의 입장과 요구가 구체화되지 못했고 미국의 대응은 수사적 차원에서 그쳤다. 대외정책을 밀고 나가기 위한 우리사회 내부의 통합력과 이를 외교적 역량으로 전환시키는 정치적 지도력, 그리고 정책적 치밀함이 결여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라크 파병 연장안이 걸려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분위기 악화방지 수준의 제스처를 넘어서지 못했다고 하겠다. 그러나 단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마지노선, 즉 한반도 평화 문제에서 물러설 수 없음을 밝힌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지속적으로 주목해야 할 바는 한-미 관계란 미국의 대 중국 포위전략 속에서 미-일 동맹과 고리처럼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이는 일본의 군사 대국화를 인정하고 중국과 잠재적 적대관계가 되는 것을 수용함을 의미한다. 이것이 과연 우리가 원하는 바일까? 이렇게 소위 동맹체제가 유지.확대되는 것은, 우리 자신은 결코 원하지 않는 열강의 군사적 각축과 패권대결의 소용돌이 속에 장래 우리가 겉잡을 수 없이 휘말려 들어갈 수 있음을 예고한다. 북한 핵문제로 인한 군사적 충돌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 사안을 핵심적 관건으로 사고할 필요가 있다. 즉 기존 동맹관계가 우리의 국가적, 민족적 이해를 약화시키거나 자주와 국가적 생명에 침해적 요소로 변화되든지 또는 지역 평화에 중대한 위협요소로 자라나고 있다면 그러한 동맹관계는 성격 변화를 추구하거나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로부터 우리의 평화는 비로소 새로운 차원을 얻게 될 것이다. ‘평화’는 다시 강조하건데 무엇으로도 양보할 수 없는 한반도의 절박한 생명선이다.

결국, 한반도 평화는 부시정권 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정세를 조성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를 가진 우리 자신의 역할과 함께 전쟁을 거부하는 세계인들의 함성이 결합될 때 더 힘 있게 지켜질 것이다. 부시와 네오콘의 세계전체에 대한 군사적 지배의지가 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우리의 자세가 확고할 때 상황은 충분히 달라질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민족의 생명을 수호하려는 우리 모두의 투철한 응집력이다.

김민웅 성공회대학교 교수, 세계체제론과 미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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