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4년 09월 2004-09-01   869

‘제국’과 ‘전쟁’은 그들의 삶 자체

김동춘 교수가 바라본 미국인의 소비행태


지난 1년 안식년을 맞아 미국에 다녀온 김동춘 교수로부터 직접 보고 느낀 미국 사회에 대해 들어봤다. 편집자주

내가 미국이라는 나라에 가서 보고 느낀 것 중 지금까지 가장 강하게 남아있는 생각은 이라크 전쟁은 미국인들의 물질주의, 소비주의에 의해 부추겨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미국의 전쟁 지지자들은 자기들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다른 나라 사람 죽는 것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점이었다.

사실은 미국 사람들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 즉 국가 공동체라는 정치단위가 국민들에게 마치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물질주의 가치가 국가 운영의 기본 동력인 오늘날의 세계 모든 나라의 국민들은 자국의 군대가 다른 나라의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더라도 일반 국민들은 자신의 복리를 위해서 그것을 모르는 채 하거나 암묵적으로 지지할 가능성이 높다. 소비문화라는 것은 흔히 포스트 모던한 현상으로 설명되지만, 사실 미국에게 그것은 잔혹한 전쟁 위에서 구가되는 악마의 축복이었다. 물론 돈이 있다면 자기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소비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오늘의 한국인들 역시 잠재적인 전쟁 지지자들이다.

풍요를 위해 침략전쟁을 지지하는 사람들

각종 자료들을 통해 확인해 본 결과 1950년대 매카시즘의 광기에 대해 미국인들이 암묵적으로 동의를 보낸 것도 단순히 파시즘적 정치 분위기에 대한 공포 때문만은 아니었고, 한국전쟁 후의 유례없는 물질적 풍요가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사회가 물질적 성공을 추구하는 하나의 전쟁터라면, 바로 그런 미국인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과 벌이는 전쟁 역시 돈, 즉 물질적 풍요를 위한 전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자명하다.

부시의 이라크 전쟁을 지지한 70% 의 미국인들 중 상당수에게는 이러한 관심(interest), 즉 이해관계(interest)가 깔려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작년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 일부 부시 비판자들이 “우리가 이라크를 침략한 것은 결국 석유자원 확보하자는 것이다”라는 주장을 제기해도 진행자가 이에 대해 별로 토를 달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를 많이 보았는데, “군인과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한 것은 안타까우나 결국 우리에게 이득이 오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이 이들의 마음속에 상당히 깔려 있는 듯이 보였다.

작년 언젠가 2003년 민주당 대선 후보 중에서 가장 진보적인 입장을 취한 쿠니시치가 ‘시스팬(C-Span)’ 초대손님으로 나와서 “미군을 당장 이라크에서 불러와야 한다”고 주장하자, 어떤 시청자가 곧바로 전화를 해서 “그러면 당신이 대통령이 되면 앞으로 우리가 필요로 하는 석유자원은 어떻게 확보할 예정이냐”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 것을 본 적이 있다. 즉 부시를 지지하는 일부 미국인들은 설사 후세인이 9.11과 관계없고, 대량살상 무기가 없더라도, 만약 미군의 희생이 크지 않다면(물론 이것을 수치로 정확히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라크의 석유자원을 확실하게 미국의 손아귀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라크 전쟁 중이나 전쟁 후의 수많은 여론조사 결과들을 종합해 보면 미국인들 중 “우리가 잘 살자고 우리의 말단 군인들이나 이라크의 무고한 인명을 희생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약 25% 정도의 일관된 전쟁반대파와 독재자 후세인 추방한 것은 잘된 일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는 약 30%의 일관된 부시 지지 세력을 제외하고 중간지대의 사람들은, 만약 미국이 전쟁에서 승리를 하고 장차 중동을 안정시키면 미국사람들이 더 안전하고 또 부유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은연 중 갖고 있는 듯이 보였다.

부시를 비롯하여 전쟁을 지지하는 미국의 각료들, 정치가들은 언제나 ‘미국 불패의 신화’를 강조하면서 미국은 이라크 전투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는데, 그들이 그러한 말 속에는 “우리가 이기면 반드시 일정한 물질적인 대가가 있을 것이다. 즉 미국사람들이 더 잘살게 되고 더 좋은 집과 차를 살 수 있고 일자리가 생긴다”는 뜻이 담겨있다.

사실 총을 든 전쟁과 잘먹고 잘 살기 위한 전쟁은 닮은꼴이다. 총을 든 전쟁이 그러하듯이 ‘잘 살기 위한 전쟁’에도 심각한 후유증이 있다. 그것을 미국인들을 어플루엔자(Affluenza)라고 말한다. 어플루엔자란 더 많은 물질, 더 많은 소비를 추구하다가 생겨난 불안, 부담감, 빚, 낭비 등등의 사회적 병리를 말한다. 그 증세는 만성적인 스트레스, 과도한 상업주의, 가정파괴, 쓰레기 배출과 지구오염, 지구적 전염성 등등의 증후군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즉 어플루엔자는 미국인들의 정신건강, 미국 사회 자체만 병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전 세계를 병들게 하는 치유하기 어려운 무서운 질병이라는 이야기다.

모두가 미국인의 풍요를 누리려면 지구 6개가 필요

미국에서 살다보면 학교, 공공기관 어디를 가도 물건을 아낀다는 관념 자체가 없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에너지 소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석유가 마치 물처럼 무한대로 생산될 것처럼 생활하고 있다. 어디에 가든지 미국인들은 마음대로 먹고, 마시고, 소비한다.

현재 미국인들 중 31%가 과체중이라고 한다. 과체중은 미국사회의 사회적 질병이 되고 있다. 그래서 지금 어린이들부터는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후세대가 전 세대보다 수명이 짧게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초등학교 점심 배식 풍경을 보면 아이들은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모두 버리고 새로 타서 먹기도 한다.

어떤 아이는 피자를 타서 한 입 먹고서는 곧바로 쓰레기통에 버리기도 한다. 패스트푸드점에는 모두 음식 찌꺼기를 담는 여러 개의 쓰레기통이 있고, 그 쓰레기통에는 먹지 않는 음식들이 가득 차 있다. 큰 잡지 여러 권 분량이 될 신문이 매일 집으로 배달되며, 그것들은 대부분 그대로 버려진다. 현재 미국인들이 소유하고 있는 물건은 1958년도의 두 배라고 한다. 그리고 평균해서 미국인들은 현재 다른 나라사람의 두 배 이상의 쓰레기를 배출하고 있다.

만약 전 세계 사람들이 미국인들만큼 소비한다면 지구 6개 정도가 필요하다고 한다. 만약 풍요와 소비가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라면, 아메리칸 드림의 추구는 미국 밖의 사람들에는 오히려 쓰레기 더미에 묻히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지금 수억 명이 굶주리고 있는 지구촌에서 미국인들이 보여주는 이러한 행태는 인류에게 저지르는 일종의 범죄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미국인들의 소비수준과 풍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미국 다국적기업이 남미의 열대우림을 황무지로 만들어야 하고, 나이키가 인도네시아 저임 노동자들을 착취해야 하며, 미군이 이라크 사람을 희생시켜서라도 이라크를 장악해야 한다. 이러한 소비수준을 지탱해 주기 위해 미국의 정치가들이 이라크 전쟁이라는 ‘악역’을 맡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노조 지도자들은 미국의 군사비 지출과 정부예산 삭감이 실업과 빈곤을 가져온다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미국의 조직 노조는 언제나 암묵적으로 전쟁을 지지했으며, 군비강화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표명해 왔다.

사실상 미국인들은 20세기 이후 지금까지 언제나 미국이 벌이는 전쟁을 묵인 혹은 지지해왔다. 그 전쟁에 자신에게 일자리와 물질적인 풍요를 가져줄 것이라는 확인이 있는 한 그들은 자기나라 군대가 외국에 가서 어떤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 애써 모른 채 했다.

한국의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미국의 베트남전 반대운동을 기억하면서 존슨 대통령 당시에는 상당수의 미국인들이 그 전쟁을 반대했던 것으로 잘못 알고 있으나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진 이후 미국에서 반전데모가 심하게 일어날 때도 일반인은 물론 학생들의 대다수도 전쟁을 지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아버지 부시가 걸프전 개입 결정을 내리고 ‘산뜻한 폭격(smart bomb)’의 영상이 마치 전자오락 게임처럼 미국전역에 방영될 때 미국인들의 90%가 그 전쟁을 환호하였다.

필연적으로 제3세계 수탈 부르는 경제적 팽창주의

일찍이 영국의 식민지였던 버마(미얀마) 에서 생활한 적이 있었던 조지 오웰은 제국주의와 식민지 지배 문제에 대해 영국의 어떤 지식인들보다도 솔직한 태도를 갖고 있었다. 그는 영국 중간층이 자신이 누리고자 하는 생활을 유지하는 한, 그것은 국가의 식민지 정복과 착취를 불가피하게 만든다는 것을 날카롭게 지적한 바 있다.

지난 세기 초부터 미국 내에서도 미국식 생활방식의 문제점을 미국의 팽창, 식민지 경영과 직결시켰던 사람이 바로 스콧 니어링, 그리고 수정주의 역사학자 윌리암스 등이었다. ‘제국’을 미국인들에게는 하나의 ‘생활방식’이라고까지 지적한(Empire as a Way of Life) 윌리암스는 미국인들은 자신의 복리를 위해 경제적 팽창주의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고 보았으며, 이러한 미국식 생활방식 즉 물질적 풍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제3세계 국가의 희생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오늘 미국에서 이들 과거 양심적 지식인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들은 미국사회의 이방인들이다. 이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추구하는 것은 전쟁을 하자는 것이다”라는 공리를 알고 있었던 소수의 사람들이다.

이라크 전쟁이야말로 풍요를 병적으로 추구한 미국인들의 일상적 태도가 밖으로 드러난 것이다. 소수의 미국 사람들의 희생 위에서 다수의 미국인들이 더 부자가 되고 마음껏 소비하고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갖게 된다면 전쟁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쟁은 지독한 이기주의이며, 전쟁의 주체인 국가야말로 인간을 이기적으로 만드는 장본인이다. 그리고 물질주의에 인도되는 강대국의 이기주의야말로 약소국의 민족주의, 국가주의보다 훨씬 더 파괴적이고 무서운 것이다.

김동춘 참여연대 집행위 부위원장,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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