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2년 11월 2002-10-30   1359

‘KT노동자, 신상품 출시가 두렵다’ 맞춤형 정액제 강제할당으로 부당가입 양산

지난 9월 10일 KT(구 한국통신)는 시내·외 전화 평균 사용료에 1000∼5000원만 더 내면 무제한으로 전화를 사용할 수 있는 맞춤형 정액제 상품을 내놓았다. 하지만 출시 직후부터 KT는 가입자의 동의도 얻지 않은 채 맞춤형 정액제로 전환시킨 사례가 드러나 물의를 빚고 있다. 피해 사례가 늘어나고 이들의 항의가 거세어지자 10월 10일 YMCA는 KT의 맞춤형 정액제 무단 전환에 대한 고발을 받기 시작하였고, 참여연대는 KT의 정액요금제 무단가입 및 고객 개인정보누설에 관해 법적으로 대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같은 물의는 KT가 직원들에게 상품판매를 강제할당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실적 채우기에 급급한 직원들이 가입자의 동의를 받지 않고 아는 사람들을 총동원해 할당량을 채우는가 하면 심지어는 각종 경로를 통해 입수한 전화번호를 무단 가입시키는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다.

가입비 전환에서 맞춤형 정액제까지 계속되는 강제할당

KT가 직원들에게 상품 판매를 강제 할당한 것은 맞춤형 정액제 뿐만이 아니다. 설비비형 전화가입자를 가입비형으로 전환하는 것부터 시작된 강제할당은 지능망영업상품인 월드패스판매, PCS 판매, 초고속통신망(ADSL)모집 등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었다.

KT의 한 직원은 “신상품이 출시될 때마다 회사는 직원들에게 상품판매를 강요해왔으며 판매 실적을 게시판에 공개하고, 인사에 반영하기 때문에 직원들로서는 거부할 수도 없다”고 털어놓았다. PCS등은 좀 무리를 하면 자기 부담으로 할당량을 떠안을 수도 있었지만 맞춤형 정액제는 그마저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직원들이 특히 애를 먹는다는 것이다. 그가 소속된 부서의 경우 근무시간이 끝난 후에도 오후 8시까지는 아무도 퇴근하지 않고 맞춤형 정액제 판매를 위한 전화 마케팅에 매달리고, 일요일에도 사무실에 나와 상품판매에 매달렸다고 한다. KT 홈페이지에 공개된, 서울의 한 지사가 직원에게 할당한 개인 판매목표는 다음과 같다.

1. 맞춤형 정액제 1인당 300건,

2. KT빌프라자 멤버쉽 – 현대카드 1인당 100건

3. ADSL 1인당 30건

4. PCS 1인당 20건

5. 가입비전환 1인당 30건

6. CID 1인당 20건

그러나 이러한 강제 할당은 비영업직 사원에 대한 자사상품판매 강요를 금지한 공정거래법에 위반될 뿐 아니라 맞춤형 정액제의 경우 가입자 정보의 무단 유출 가능성도 커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직원들에 가입자 정보 접근 가능케 해 개인정보 유출 우려

KT가 맞춤형 정액제를 출시하면서 자세한 고객정보를 알 수 있는 ICIS망에 비영업직 직원들도 접근할 수 있게 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됐다. ICIS망은 상품 요금, 주민등록번호, 결제계좌번호 등 가입자의 개인정보가 담겨있는 통합 전산망이다.

KT의 한 간부는 “ICIS망은 절대로 일반직원들은 열람할 수 없고, 접근해서도 안 되는 정보망인데 맞춤형 정액제를 출시하면서 부서별로 4∼5개씩 접근권이 있는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나누어 줬다”고 인정했다. 이를 통해 직원들이 자신이 가입시킨 가입자의 개인정보를 조회하거나 전화번호를 입력해 개인정보를 알아내서 무단으로 가입시키기도 했다는 것이다.

강제할당량을 채워야 한다는 압박감이 원체 크다 보니 KT 직원들 사이에서는 가입자 전화번호 거래까지 성행하고 있다. 한 직원은 “개인당 100건에서 300건까지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모든 인맥을 동원하지만 그러고도 모자랄 때는 가입자의 전화번호를 많이 확보하고 있는 직원에게서 건당 1000원에서 2000원을 주고 전화번호를 사기도 한다”고 밝혔다.

한 직원은 사내 게시판을 통해 “맞춤형 정액제 강제할당 문제는 근시안적인 매출증대만을 노리는 경영진과 한국통신 민영화가 가져온 필연적인 결과”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조합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데 힘써야 할 KT 노조는 회사측의 이러한 횡포를 수수방관하고 있어 노조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노조가 직원들에 대한 강제할당 묵인, 동조

상품 강제할당에 대한 직원들의 불만이 커지자 주식회사 KT와 KT노동조합은 9월 11일 노사합의서를 통해 “회사는 상품판매 목표 부여시 상품(서비스)판매 전담반을 운용하는 기관별로 목표를 부여하고 개인별 목표는 부여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합의를 했다. 하지만 이 합의서에 “조합은 회사의 매출증대 방안에 적극 협력하고 전사적 상품(서비스) 판매의 필요성을 조합과 회사가 공동으로 인식할 시 노사 공동으로 판매 활동을 실시한다”는 조항을 달아 결과적으로 노조는 회사측의 강제할당을 정당화해 주었다.

KT노조는 10월 5일, 합의시점 이후 별도합의 시까지 비영업부서의 상품판매 중단, 10월 말까지 비영업부서 직원도 맞춤형 정액제 판매, 11월 이후 비영업부서의 맞춤형 정액제 판매 중단에 합의함으로써 회사측의 맞춤형 정액제 강제할당 요구를 받아준 어용노조라는 노조원들의 비난을 사고 있다.

최근에는 이동걸 KT 노조 위원장의 입장이라며 이상은 은평지사 영업팀장이 직원들에게 보낸 메일이 공개되어 한차례 물의를 빚었다. 이 메일에는 “유선시장 매출을 일정부분 유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맞춤형 정액제 판매뿐이며, 3개월 시한의 한정적인 제도인 만큼 전사원이 노력하여 고용을 유지하는 또다른 방안으로 판단된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전직 노조 간부였던 한국통신 민주동지회 박 모씨는 “이동걸 위원장은 114 분사 때 단식농성에 들어가기도 했으나 강제할당에 대한 미온적인 대처에서 드러나듯 이후 회사측의 요구를 잘 들어주는 친경영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노조는 경영이 어려운 때 사원들이 자기 회사 상품을 팔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가입자가 동의하지 않은 맞춤형 정액제 무단가입문제가 불거지고, 가입자들의 비난이 거세지자 KT는 “10월 10일 이후 발생하는 고객불만 등에 대해서는 판매자와 직상급자에 대한 인사조치 등 강경한 대응책을 마련, 무단 가입을 원칙적으로 차단하겠다”고 지난 10월 11일 밝혔다. 이에 대해 KT직원들은 “회사에서 상품판매를 강제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책임을 판매자에게 묻겠다는 것인가?”라며 거세게 항의했다.

한편, 이 발표에 대해 앞으로는 회사의 상품강제할당요구가 줄어들지 않겠느냐는 기대심리도 존재한다고 KT직원은 전했다.

한태욱(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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