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2년 01월 2002-01-01   736

주권혁명의 시대

1987년 6월 민주항쟁은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민주화’의 구체적인 출발점이 되었다. 그 항쟁의 한 주역으로 참여했던 전직 김영삼 대통령과 현직 김대중 대통령이 그후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를 출범시켰다. 그러나 6월 민주항쟁이 제대로 된 민주화를 가져온 것일까. 학계에서는 우리의 민주화를 ‘제한적 민주화’로 규정하는데, 그것은 국민주권의 제한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작년에 총선연대가 낙천·낙선운동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86명의 낙선대상자 중 59명이 낙선했다. 총선연대가 역량을 집중했던 집중 낙선대상자 22명 중 15명이 낙선했다. 특히 지역감정의 영향을 적게 받는 수도권에서는 20명 중 19명이 낙선하여 국민의 힘, 시민의 힘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낙선운동이 과연 얼마나 국민들을 주인의 위치로 끌어올렸을까.

최근 민주당의 정당쇄신 움직임이 주목받고 있다. 대통령의 총재직 사퇴 이후 상향식 공천, 총재직 폐지, 원내정당화 등의 개혁안이 정당정치에 새로운 흐름을 제공하고 있다. 총재직을 폐지하고, 공천권을 지구당으로 돌리고, 정당의 원내 역할을 강화하는 것 등은 총재의 전횡을 차단하고 정당을 민주화하는 조치들이다. 그러나 국회의원의 역할은 강조하면서도 국민인 당원들의 권한에 대한 논의는 미흡하기 짝이 없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정말로 민주공화국일까? 위장된 입헌군주국이거나 아니면 타락한 부패공화국은 아닐까?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선언은 어느 정도의 진실을 담고 있는 것이며, 우리는 과연 하루도 쉬지 않고 주권자로서의 권력을 정당하게 행사하고 있는 것일까?.

선거를 통해서 정기적으로 대통령과 국회의원, 단체장과 지방의원을 선출한다는 점에서는 그럴듯하지만 실상은 정반대이다. 프랑스 사상가 루소는 “국민들은 5년에 하루만 자유롭다”고 선거의 허구성을 통렬하게 질타했지만, 우리는 그 하루마저도 자유롭지 못한 실정이다. 국가가 주도하는 선거에 참여하고 정당이 공천한 후보들 중에서 선택한다고 해서 주권재민은 아니다.

우리 국민들은 선거에 아무런 권한이 없다. 국민의 대표자를 선출하는 과정은 공천, 선거, 투표의 3단계로 구성된다. 우선 우리 국민들은 가장 본질적인 공천에 대해 의견을 제출할 수 없다. 선거과정에 의견을 개진하겠다고 선거법 개정을 추진했지만, 국회에서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런 조건에서 시민사회단체들이 전개한 낙선운동에 대해 ‘실정법 위반’ 운운하는 실정이다. 국민에게 허용되는 것은 ‘충량한 신민’으로서의 투표참여뿐이다. 이것이 헌법에 명시된 국민주권론의 실체이다.

다시 권력교체기가 돌아왔다. 이제 대통령과 정당만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과 무관하게 작동하는 국가와 의회와 정당을 국민주권 아래 재배치하는 그러한 교체여야 한다. 모든 국민이 존엄한 주권자라는 자각이 현실화되지 않는 한, 국가와 정당과 의회의 운영이 주권자의 권리를 중심으로 재배치되지 않는 한, 그리하여 이들이 국민과 시민사회에 의해 민주적으로 통제되지 않는 한 민주주의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정치가, 공무원, 법조인, 군인, 재벌, 언론인들이 국민주권의 개념을 잊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국민주권만이 민주주의의 진정한 정신이다. 한국의 21세기는 주권혁명의 시기이다.

정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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