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2년 10월 2002-10-24   4182

영국 계급사회와 한국 사회귀족

몇 년 전 영국 노동당 정부가 들어서고 당시 부총리였던 존 프레스코트가 그의 부친과 다툰 사건이 세간에 오르내렸다. 아버지는 자신의 집안을 노동계급(working class)이라 주장하고 아들은 중산층(middle class)이라고 한 데서 불화가 발생한 것이었다. 교통부장관직을 맡기도 한 프레스코트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한 발언을 두고 그의 부친이 노발대발한 것이다.

장관의 아버지는 ‘조부가 광부였고 아비가 철도노동자였고 한때 유람선에서 웨이터 일을 한 놈이 노동계급이 아니면 누가 노동계급이냐?’며 아들을 꾸짖었다. 아들은 ‘노동계급으로 태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 월급도 많이 받고 사는 것도 괜찮으니 중산층이라 할 만하다’고 했지만 ‘한번 노동계급이면 영원한 노동계급’이라는 부친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전통적으로 영국사회의 계급은 왕실과 귀족계급, 중산계급, 노동계급 순으로 된다. 귀족계급은 수가 아주 적어 일반적인 계급구분에 포함되지 않아 사람들은 주로 중산계급과 노동계급으로 분류한다. 최근 조사에 의하면 영국 사람들의 60%가 자신들을 노동계급으로 여기고 있다 한다.

흔히 화이트칼라들도 기꺼이 노동계급으로 분류되고자 하는 경향이 높다. 스스로를 노동계급으로 칭하는 이들이 자기 계급의 전형으로 꼽는 인물 셰리 부스를 보더라도 그렇다. 법관인 셰리 부스는 토니 블레어 수상의 부인이다.

리버풀의 가난한 집안에서 맏딸로 태어난 그는 일찌감치 집을 나가버린 아버지 때문에 더욱 억척으로 공부하며 살았던 배경을 가지고 있다. 네 아이의 엄마이며 수상 부인이면서도 여전히 자기 직업에 충실한 그에 대해 사람들은 강한 동질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존 메이저 전 총리도 버스 차장으로 일한 적이 있는 노동계급 출신으로 자신의 전력을 떳떳하게 드러내고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억만장자이자 언론재벌이었던 로버트 맥스웰도 언제나 노동계급임을 자랑스럽게 내세웠다. 원래 말투도 바꾸려 하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누구나 ‘노동자’의 신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 같다. 물질적인 계급과 문화적인 정체성이 함께 가는 연유이다.

최근 ‘사회귀족’이라는 낯선 용어가 등장했다. 이들은 학벌, 가문, 경제적 능력 등등 어느 한부분 나무랄 데 없는 집단을 말하는 것이다. ‘명품’을 사용하고 ‘명가’의 전통을 잇는다고도 한다. 문제는 그들이 ‘그렇게’ 사는 데 있지 않다. 그들의 존재가 다른 사회구성원들에게 주는 괴리감이다. 젊은이들 중에는 자신도 ‘할 수만 있다면 그 부류로 들어가기를 원한다’고 드러내놓고 부러워하는 이가 많다.

최근 우리는 두 명의 총리서리 청문회를 통해 우리 사회의 상류층이 어떻게 사는지 상세히 엿볼 기회를 가졌다. 그 과정에서 적당주의, 편의주의, 아전인수격의 법 해석으로 무장한 그들의 의식구조를 유리알처럼 들여다보았다.

사회귀족이 존재한다면, 그들은 우선 자신들만의 ‘클럽’운영 방식에 골몰하기보다는 귀족의 책무부터 익혀야 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귀족은 의무는 없고 권리만 누리는 얌체족속이다.

사실 이들에게 ‘고귀한 족속’이라는 용어 자체가 가당치 않다. 건강한 양심의 소유자라면 그들을 보면서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고 부러워할 게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그릇된 도덕관을 비판하고 정상적이고 보다 평등한 사회를 만들 힘을 기를 일이다. 계급은 객관적으로 측정되겠지만 자신의 계급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그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은 우리 스스로의 몫이다.

권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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