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2년 11월 2002-10-30   1416

소수자 인권 시리즈 2 ‘새싹들에게 문맹을 강요하시렵니까’ 몽골 이주 노동자 자녀들의 교육권

침침한 반지하 단칸방. 부엌을 겸한 세면장엔 빨래집게가 하얀 양말 서너 짝을 물고 있다. 2평 남짓 될까. 작은 방엔 침대와 텔레비전이 정물화처럼 놓여 있다. 낡은 도배지가 발라져 있는 벽엔 몽골 국기와 유아 한글교재 ‘가나다라’가 붙어 있다. 서울시 중랑구 면목동에 살고 있는 몽골 소년 나쉬카(13세)의 집엔 몽골과 한국이 이렇게 공존하고 있었다.

몽골에서 경찰이었던 나쉬카의 아버지 알탕 수크 씨(37세)는 5년 전 한국에 왔다. 한국에 가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무작정 건너온 것이다. 그는 지금 서울의 한 영세가공업체에서 나염 일을 하고 있고, 부인 어유나 씨(34세)는 컴퓨터자수공장에 다닌다. 부부가 하루 12시간씩 일해 버는 돈은 한 달 175만 원. 몽골에서 받던 100∼300달러에 비하면 엄청난 액수다.

“(89년 소련의 개혁개방 이후) 러시아 회사들이 몽골에서 빠져나가면서 많은 공장들이 문을 닫았어요. 몽골은 실업문제가 너무 심각하고, 정말 살기 힘들어요. 서울 오기 전에 경찰공무원이었는데도 살림이 넉넉지 않았으니까.”

그는 몽골 형편이 좋지 않아 한국에 와 지하 단칸방에 살고 있지만 칭기즈칸 후예의 기개는 버리지 않았다고 자부했다. 서울생활이 고되고 힘들지만 그래도 희망은 있다고 말했다. 사막과 초원이 국토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몽골과 달리 서울은 생활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돈도 많이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고민이 하나 있다면 바로 나쉬카의 교육문제다.

“우리 부부는 아침 8시에 나가 저녁 8시, 야근을 하면 더 늦게 들어와요. 나쉬카는 하루종일 혼자 있죠. 걱정돼서 핸드폰을 두고 나가고, 가끔 그걸로 연락해요. 나쉬카 뭐해? 그럼 나쉬카는 한국말 몰라서 밖에 나가 아이들과 놀 수 없어요, 식사도 혼자, 공부도 혼자… 모두 혼자 해요, 심심해요, 답답해요 그렇게 말하죠. 열세 살이니까 학교 다녀야 하는데 학교에서는 한국말 못하니까 아직 오지 말래요. 그래서 학원에 보냈는데, 학원에서도 한국말 모르니까 가르칠 수 없다고 돌려보냈어요. TV 보고, 몽골말로 된 책 읽는 게 나쉬카 생활의 전부예요.”

한창 뛰어 놀 나이인 나쉬카는 어른들 이야기를 얌전히 앉아 듣고 있었다. 부모가 돈 벌러 나가면 집에 남아 빨래하고, 청소하며, 식사준비도 해놓는다. 힘겹게 일하는 부모를 위한 배려이자 유일한 ‘놀이’가 살림인 셈. 나쉬카에게 몽골 친구들이 보고 싶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눈을 끔뻑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몽골로 돌아가고 싶으냐는 물음에는 입을 꽉 다물고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나쉬카가 막내아들인데, 몽골에서 엄마 아빠 보고 싶어서 병났어요. 그래서 브로커에게 4000달러 주고 데려왔어요. 하루종일 혼자 지내도 부모와 함께 있어 좋은가봐요.”

수크 씨는 나쉬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흐뭇해 한다. 그에겐 아들이 넷 있다. 셋은 몽골의 부모님께 맡겨두고 왔다. 그들을 위해 수크 씨는 정기적으로 돈을 보낸다.

“마음 같아서는 한국에서 온가족이 함께 살고 싶지만 교육문제 때문에 어떻게 할까 생각 중이에요. 초등학교는 다닐 수 있지만, 중학교부터는 비자가 있어야 된대요. 몽골에서 아주 공부를 잘하던 아이인데 여기 와서 바보 되면 안 되잖아요.”

거리를 방황하는 아이들

서울시 광진구 광장중학교 뒷문 앞에는 주택을 개조한 학교가 하나 있다. 한국외국인근로자선교회가 세운 몽골초등학교다. 담벼락을 허물고 흙을 덮어 운동장을 만들었고, 방에는 책걸상을 놓아 교실로 만들었다. 아이들은 태권도수업과 영어수업을 받고 있었다.

정혜승 교무처장은 “길거리를 방황하던 몽골인 이주노동자 자녀들을 교육하기 위해 이 학교를 설립했다”며 “몽골초등학교의 교사들은 모두 자원봉사자이고, 교육부로부터 정식인가를 받지 않았지만 이 학교로 몰려드는 몽골 어린이와 청소년이 꽤 된다”고 말했다.

그는 동남아 이주노동자들과 달리 가족이주가 많은 몽골 노동자들은 수도권에만도 1만 7000여 명이 살고 있고, 이중 어린이와 청소년은 1500명 정도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 이들이 어디에서 어떤 교육을 받고 있는지는 파악하기 어렵다. 교육부 학교정책과에 따르면 “지난해 3월부터 정부는 불법체류자 자녀들이 UN아동보호협약에 따라 학교장과 교육감 재량으로 초등교육을 받도록 했으나 구체적인 통계는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부터 수도권을 중심으로 이주노동자 자녀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사례가 늘어났지만 아직 미미한 수준으로 알려지고 있다.

학교장 재량으로 이주노동자의 자녀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됐다고는 하지만 실제 현장에 가보면 학교장이 입학을 거부하는 사례도 드물지 않다. ‘몽골이주노동자자녀 학교보내기운동’을 펼치고 있는 높은뜻 숭의교회의 전희삼 전도사는 “승진에 연연하는 교감이나 교장들은 불법체류자를 학교에 받아주었다가 무슨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지레 겁먹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입학시켜 주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초등교육은 의무교육이기 때문에 여권이 있는 어린이는 비교적 입학이 쉽지만 여권이 없거나 남의 이름으로 변조된 여권을 갖고 있는 경우에는 좀체 입학이 허가되지 않는다. 전희삼 전도사는 “신분이 불확실해도 인권 차원에서 교육권은 보장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중학교에 입학해야 하는 나이인데도 학교측이 받아주지 않아 방치되는 청소년들의 문제 또한 심각하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여권만 있으면 입학허가를 주었는데 최근에는 외국인등록증을 가져오라고 해요. 그건 유학을 목적으로 입국한 경우가 아니면 받기 어려운 증명입니다. 이것 때문에 이주노동자 자녀들이 중학교에 진학하는 길이 막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지요.”

몽골초등학교에는 초등학생 나이를 훌쩍 넘긴 청소년들도 더러 눈에 띄었다. 올해 열다섯 살인 멘카는 1년 전 엄마를 따라 한국에 왔다. 어머니는 미용실, 아버지는 공장에서 일한다. 한국에서 계속 살고 싶지만 언제 몽골로 돌아가게 될 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다. 미용사가 꿈인 멘카는 내년 3월 불법체류자에 대한 강제출국 유예조치가 끝나고 단속이 강화되면 몽골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정혜승 처장에 따르면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청소년은 주유소, 식당 등을 전전하며 아르바이트를 한다. 학교에서 공부할 수 없기 때문에 아이들은 어린 나이에 취업전선에 서게 되는 것이다.

한국말이 원활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한국 아이들의 학대도 심각하다. 마그나(13세)는 얼마 전 하교 길에 한국 중학생 세 명에게 집단폭행 당했다. 이들은 “몽골 애들 멍청이! 가난한 몽골 애들 집에 가라”고 욕을 퍼부으면서 마구 때렸다. 마그나가 맞고 있을 때 지나가던 어른들이 하나도 말리지 않았다는 점에 마그나는 치를 떨었다.

그래도 몽골초등학교 아이들은 대부분 한국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올해 열두 살인 콜랑도, 열한 살인 어르길볼트도, 어쳐도 모두 이곳에 남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학교에 들어가야 하는 때가 오면 그들의 부모는 어쩔 수 없이 다른 선택을 할 지 모른다.

교육부 학교정책과 윤석주 연구사는 “세금 한 푼 내지 않는 불법체류자의 자녀들에게 국내 청소년들에게도 주지 않는 중학교육 혜택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전희삼 전도사는 “인도적 차원에서 초등교육을 받게 한 것이라면 당연히 중등교육도 받게 해야 한다”고 일침을 놓았다.

러시아 모스크바대학에서 의상디자인을 전공한 잉케 씨(36세). 그에게는 세살배기 아들 이트게네가 있다. 의류공장에서 스프레이 작업을 하는 그에겐 아직 교육문제가 절박하게 다가오지 않지만 내국인과 외국인을 지나치게 차별하는 한국의 교육·의료시스템은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용직 노동자 바틈 씨(33세)는 여덟 살 난 다시카를 키우고 있다. 다시카 역시 학교에서 받아주지 않아 미술학원에 다닌다. 그 비용이 만만치 않고, 교육내용도 시원치 않은 것 같아 고민하던 바틈 씨는 내년 3월 몽골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한국에 살던 아이들을 위한 학교가 몽골에 세워져 다시카를 그리로 보낼 생각이다. 그것은 한국과의 인연을 놓지 않으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코리안드림 자녀교육 때문에 꺾이나

대개 보증금 100만∼300만 원에 월세 10만∼30만 원을 내고 지하 단칸방에서 살아가는 그들에게 한국은 여전히 ‘꿈의 나라’지만 차별과 편견은 견디기 어려울 만큼 혹독하다.

“불법체류자에게도 인권이 있습니다. 아이나 어른이나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하고, 교육은 받아야 합니다.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문맹을 강요하는 건 가혹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몽골에서 의사였던 미라 씨의 말이다.

열한 살 난 간지구르를 데리고 한국에서 6년째 파출부, 미싱 보조 등으로 일해온 어어기 씨(40세)도 간지구르의 교육문제가 걱정이다. 한국 아이들처럼 학원을 몇 개 씩 보내지는 못할지라도 사람 구실 하고 살려면 어느 정도 교육은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내가 집에 너무 늦게 들어오니까 간지구르는 매일 컴퓨터 게임만 해요. 공부 잘 안 해서 걱정이에요. 혼자 있으면 심심하니까 더 그런 것 같아요.”

외국인노동자인권센터 양혜우 소장은 “방과후학교 등을 운영해 집안에서 방치되는 아이들이 없도록 시민사회가 나서야 한다”며 “더 나아가 주거지가 일정하다면 어디서든 사회복지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그는 “한국인이 이주노동자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함께 사는 이웃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많은 문제가 쉽게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화의 바람으로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돈을 벌기 위해 타국을 전전한다. 초국적기업에 의해 숱한 인권탄압을 받으면서도 생존을 위해 유랑하는 경우가 많다.

이금연 안양전진상복지관장은 “세계가 자본 때문에 미쳐가고 있다”며 가족해체현상을 걱정했다.

기실 많은 이주노동자들은 돈벌이를 위해 가족과 떨어져 살며 이국의 밤을 보내고 있다. 그들에게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건네지 못할망정 최소한의 교육 혜택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

장윤선(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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