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2년 11월 2002-10-30   1204

‘내 아들 죽여놓고 자살이라고?’ 의문사법 개정 노숙농성에 한나라당 묵묵부답

아무리 단단히 옷깃을 여며도 10월의 새벽바람을 다 막을 수는 없다. 천막은커녕 바람막이도 온전하게 두르지 못해 차디찬 공기를 온몸으로 맞으며 기댈 것이라곤 함께 있는 이들의 온기뿐이다. 얇은 깔개를 뚫고 올라오는 시멘트 블록의 한기는 뼛속까지 스민다.

“내가 춥다고 해도 그 녀석보다 춥겠어? 힘들다고 그 녀석보다 힘들겠어? 그 험한 곳에서 군 생활 했을 아들녀석 생각하면 힘들다는 생각도 안 들어.”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의문사 지회장 허영춘 씨(63세)는 16일 새벽, 8일째 접어든 노숙농성으로 무척 지친 표정이었지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손사래를 친다.

유가족 등 의문사법개정 위해 무기한 노숙농성 돌입

지난 10월 10일, 의문사 유가족들과 추모연대를 비롯한 사회단체들은 의문사진상규명특별법 개정을 위해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사 앞에서 무기한 노숙농성에 들어갔다. 애초 유가족들은 당사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하려 했으나 저지하는 경찰에게 천막과 깔개 등을 빼앗기고 , 집회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농성에 참가했던 이들 중 25명이 연행되었다. 연행되었던 이들은 곧 풀려났으나 계속되는 경찰의 방해로 천막은 고사하고, 바람막이 하나 온전하게 설치하지 못한 채 천막농성계획을 노숙농성으로 바꿀 수 밖에 없었다.

9월 16일로 조사기간이 끝나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은 사실상 정지되었다. 위원회에 진정접수된 사건 중 19건만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국가공권력에 의해 죽음을 당한 것으로 인정되었고 33건은 기각, 30건은 판단불능으로 남겨졌다. 인정된 사건의 경우에도 대부분 가해자는 밝혀지지 않았다. 의문사에 대한 한 점 의혹 없는 규명을 원했던 유가족들은 이번이 마지막이란 절박한 심정으로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

농성이 시작된 뒤 경찰의 방해와 물품 철거, 강제연행은 계속되고 있다. 첫날 천막 설치 도중 천막이 압수되고 25명의 유가족과 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연행된 이후, 같은 날 밤 경찰은 또다시 농성장에 들이닥쳐 7명을 연행했다. 많은 비가 내렸던 13일에는 농성자들이 비와 바람을 막기 위해 비닐을 쳤으나 이마저도 경찰이 철거했다. 14일에는 법 개정 촉구 집회를 준비하는 이들을 경찰이 덮쳐 집회물품을 압수하고, 8명을 연행해갔다.

“군대간 아들이 보고 싶다”

16일, 연행되었던 농성자들은 48시간 만에 풀려나 돌아와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비닐을 뒤집어 쓰고 그 위에 테이프로 글귀를 새겨 넣은 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허영춘 씨의 가슴에도 “군대간 아들이 보고 싶다”는 글귀가 씌어있었다. 천막도, 깔개도, 피켓도 없이 버스 정류장 벤치에 앉아있는 농성자들은 멀리서 봐서는 버스를 기다리는 시민들과 구별이 힘들 정도였다. 가까이 이르러서야 얼굴에 깊이 패인 주름살과 피곤한 기색이 농성자임을 말해주었다.

“처음 군대에서 상구가 자살했다고 했을 때는 곧대로 믿었어. 약 먹고 자살했다는 사람의 목에 손으로 조른 자국이 선명하고, 사타구니에 발로 채인 멍이 들어있었지만 설마 군에서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어. 하지만 점점 자살로 믿기에는 이상한 점들이 발견되면서 지금까지 죽음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서 노력했어.”

87년 군에서 의문사한 박상구 씨의 어머니 우정학 씨(69세)는 10년이 훨씬 지난 일임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마지막 모습과 당시의 상황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여기 이렇게 앉아 있다가, 승합차에 들어가 쉬다가 그렇게 일주일을 지냈어. 때론 이곳에서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유가협에서 서울 동대문구에 마련한 집에 들어가 잠을 청하기도 하고. 피곤한지는 잘 모르겠어. 예전에 허리를 다쳐 아프기는 한데 별로 신경쓰지 않아.”

대우중공업에서 노조활동을 하다 87년 의문사한 정경식 씨의 어머니 김을선 씨(69세) 역시 내일 다시 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집을 나선 뒤 반년 뒤 유골로 발견된 아들의 죽음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매일 농성장을 찾는다.

권한 강화 없는 기간 연장은 무의미

의문사법 개정에 대한 여론이 확산되고 언론도 연일 개정의 필요성을 보도하고 있지만 정쟁에 휩싸인 국회에서는 논의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총무가 의문사법개정에 대해 원칙적으로 합의를 했지만 위원회의 권한 강화 없이 기간만 연장하는 수준에서 그칠 가능성이 크다.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는 농성에 들어가면서 “조사 권한의 강화 없이 단순히 기간만 연장하는 법 개정을 단호히 거부한다”고 분명히 밝혔다. 유가족들의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실 점거농성 등을 통해 그동안 두차례에 걸쳐 법개정이 있었지만 총 6개월의 기간연장과 결정에서의 판단불능을 추가하는 법개정이 있었을뿐 조사권의 강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유가족 뿐 아니라 16일 농성장을 방문한 위원회 조사관들 역시 권한 강화 없는 기간연장은 무의미하다고 입을 모았다. 조사1과 조현조 조사관은 “의문사의 경우 과거 안기부를 비롯한 국정원, 검찰 등 국가권력기관이 개입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들이 조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진상규명은 불가능하다. 검찰이 가진 조사권에 준하는 권한을 위원회가 가져야만 실체적 진실에 접근할 수 있다”며 압수수색, 강제구인, 계좌추적, 감청권 등이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사실 위원회법 개정을 위한 활동을 위원회가 해야 하는데, 위원회에 참가한 민간조사관 등의 밥그릇 싸움으로 잘못 비칠 우려가 있어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위원회로부터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국가기관으로부터 부당한 죽음을 당했다고 인정된 최종길 교수의 아들 최광희 서울대 법대 교수도 16일 농성장을 찾았다. 그는 “아버님의 죽음 역시 국가공권력에 의한 타살이라는 점은 확인이 되었지만 타살한 주체나 구체적인 사실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태”라며 “유가족들의 한결같은 소망은 위원회에 의한 인정이나 보상이 아니라 죽음에 대해 철저히 규명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민주화와 관련된 의문사가 아니더라도 국가권력에 의한 반인륜적 범죄로 희생된 이들이 밝혀지고 사망자 뿐 아니라 부상자에 대한 진실 규명과 배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권은 말이 없다

17일 새벽 2시, 여의도 고층건물의 불빛들이 하나 둘 꺼진 가운데 유가족들은 한나라당사 앞 버스정류장에 등 하나 밝힌 채 새우잠을 청하고 있었다. 선잠을 자다 일어난 최봉규 씨(72세)는 아들의 죽음으로 풍비박산된 가족 이야기를 한다.

“우혁이가 학생운동을 못하게 하려고 애 엄마가 우혁이 몰래 자원서를 내고 군대에 보냈어. 그런데 87년 9월에 우혁이가 쓰레기 소각장에서 휘발유를 몸에 붓고 분신자살 했다고 연락이 온 거야. 위원회 조사 결과 우혁이가 보호관심사병 명단에 올라 있었다는 게 밝혀졌어. 애 어미는 자기가 억지로 군대 보내서 우혁이를 죽였다고 자책하면서 우울증에 실어증까지 걸려 고생하다가 91년 음력 정월에 한강에 투신했어.”

겹겹이 껴 입은 파카와 우비로도 시멘트 바닥에서 올라오는 새벽의 한기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유가협 부모님들의 건강을 염려한 추모연대의 젊은 활동가들이 승합차에 잠자리를 마련하고 차로 옮길 것을 청했다.

그러나 노인들은 “88년에는 기독교 회관에서 133일 농성을 벌였고, 97년부터 98년까지는 저기 국민은행 앞에서 422일간 천막 농성을 벌였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라며 젊은 사람들을 차로 떠민다.

농성이 계속되는 동안에도 한나라당은 묵묵부답이다. 김문수 의원이 한차례 찾아 불법점거를 중단하라고 권고했을 뿐이다. 정형근 의원 등 몇 몇 의원이 피의자 조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한나라당이 조사권 강화 요구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유가족들의 비극은 과거완료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이다.

한태욱(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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