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2년 11월 2002-10-30   727

‘대통령 선거가 개그냐’ 술집에서 알바를 하며 민심을 캐다

대선이 50여 일 앞으로 바짝 다가오면서 정치권의 이합집산이 가열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정치권의 상호비방은 유권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다. 조중동을 중심으로 한 기성언론은 이런 정치권을 분석하고 질타하는 보도 대신 흥미위주의 여론조사에 의한 ‘경마식 보도’를 일삼고 있다. 21세기 첫 대통령을 뽑는 2002 대선에 시민은 없다. 본지는 실종된 밑바닥 대선 민심을 듣기 위해 청년들이 자주 찾는 술집, 강남의 찜질방, 서울 각지의 노인들, 정치학회 학자들을 만나 그들의 생생한 육성을 들었다. (편집자 주)

“요즘 국민의 관심이 뭔지 아십니까? 바로 드라마 <야인시대>예요. 그런 영웅을 실제로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죠. 대선을 보면 <용의 눈물>이나 <여인천하> 같은 사극을 보는 것 같아요. 대선이 무슨 코미디입니까?”

서울 대학로에 위치한 한 술집. 자원봉사를 하는 인터넷 카페 회원들과 술을 마시러 왔다는 강명섭 씨(32세)는 대선 이야기를 꺼내자 술이나 한잔하자며 소주잔을 건넸다. 함께 술을 마시러 온 친구들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여기 저기서 “대선 웃긴다. 집안 잔치다”라며 목소리를 높였고 “지금 심정 같으면 투표 절대 안 한다”고 소리쳤다. 군사독재의 원흉 ‘제5공화국의 아들’ 장세동 씨가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김민석 민주당 의원이 정몽준 후보와 손을 잡은 바로 다음날의 풍경이다.

술집 주인 도한수 씨(33세)는 “국민경선 이후 술자리에서 손님들이 대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때로는 밤새워 권영길 후보와 노무현 후보 중 누구를 지지해야 하느냐는 문제로 밤을 세우는 모습도 보였다. 우리 집을 찾는 대부분의 30대 직장인들은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로 결론을 맺고 대학생들은 노무현 후보를 찍는 걸로 토론을 끝내더라”며 평소 술자리에서 나누는 시민들의 대화를 전해줬다.

첫 손님은 놀랍게도 현대직원이었다. 기자라는 사실을 알고 명함을 꺼냈다가 도로 집어넣는다. 그는 “요즘 언론이 현대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괜히 명함 주기 싫다”며 “현대직원들은 절대 정몽준 의원이 후보가 된 걸 환영하지 않는 분위기다. 정주영 회장 때 그렇게 현대가 두들겨 맞았는데 누가 그걸 원하겠냐”며 회사 분위기를 전했다.

숭실대 4학년에 재학중이라는 한 대학생은 “요즘은 차라리 허경영 의원에게 제일 관심이 많다. 『딴지일보』에서 대선출마선언식 기사를 보니 너무 재밌었다. 결혼을 하면 5000만 원 준다고 하지 않는가”라며 웃음을 보이니 함께 술을 마시던 친구들이 호기심을 보였다. 대체복무제 문제부터 미국의 이라크 침공문제까지 폭넓은 대화를 나누던 그들이 유일하게 웃었던 순간이다.

영등포에서 자영업을 한다는 이욱 씨(31세)는 장세동 씨 대선출마 이야기를 나누며 한숨을 지었다. 그는 “기가 막힌다. 이대로 가다간 투표율이 10%도 안 나오는 게 아닌가 걱정이다. 동네 사람들도 회사 사람들도 대선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나라에 큰 타격을 주는 그런 사람까지 쉽게 후보로 나서는 세상이다”며 개탄했다.

회사원 김민지 씨는 “회사에서 일하는 데 전화가 왔더라. 노무현 후보랑 정몽준 후보랑 합하거나 이회창 후보랑 정몽준 후보랑 합하면 누구를 지지하겠냐고. 나는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가 힘을 모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정치를 보니 사람들은 다 똑같은 것 같다. 나는 차라리 호텔지배인을 하다가 후보로 나온 그 할아버지(서상록 씨)가 더 끌린다”고 말한 후 화제를 돌렸다.

술집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대선이란 말만 꺼내도 짜증스런 표정을 지었다. 노무현 후보냐 권영길후 보냐고 고민하던 젊은이들의 고민도 벌써 한물 간 느낌이다. 연일 철새 같은 의원들의 이야기가 뉴스에 나오고 상호비방에 바쁜 민주당과 한나라당을 보면서 대선에는 아예 정이 떨어진 듯 하다. 술자리의 안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게 바로 정치인들의 행보다.

황지희(참여사회 기자)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