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09월 2001-09-01   1292

이석연 경실련 사무총장 발언파문의 진실찾기

이석연 경실련 사무총장 발언파문의 진실찾기

“시민단체의 정치참여는 도덕성과 순수성을 바탕으로 한 시민운동의 정치적 중립성을 해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현재 시민운동은 초법화 경향, 시민단체 및 운동가의 관료화, 권력기관화, 연대를 통한 획일주의화와 센세이셔널리즘, 무오류 등의 자만에 빠져 있다. …시민단체가 특정정당이나 정파, 세력을 지지하고 이들과 연계돼 활동하는 것은 시민운동에 대한 배신행위나 마찬가지며 운동가의 자질과 양식의 문제다. …시민운동의 상징은 다양성과 자율성이며, 언론사 세무조사처럼 하나의 사안에 대해 시민단체와 정치권이 극단적인 대립을 보이는 것은 거부감을 줄뿐 아니라 침묵하는 다수인의 비판적, 중립적 세력을 포용하지 못해 시민단체가 시민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지난 8월 7일자 『문화일보』 31면에 실린 이석연 경실련 사무총장(47세)의 시민운동 비판중 일부다. 이 기사에 따르면 이석연 총장은 8월 7일 오전 경기도 용인 경찰대에서 경찰 고위간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 시민운동의 과제와 방향’이란 제목의 특강에서 이같이 밝혔다고 한다.

『문화일보』의 보도 이후 8월 8일과 9일 양일간 조중동(『조선』·『중앙』·『동아』)은 사회면과 사설을 통해 앞다퉈 시민운동에 대한 이석연 총장의 비판과 우려를 전달했다. 8월 8일자 『조선일보』 27면에는 「시민단체의 특정정파 지지·연계 활동 시민운동에 대한 배신」이라는 제하의 기사가 걸렸고, 8월 10일자 시론에서는 류석춘 연세대 교수가 “시민운동이 정치에 참여해서 권력을 잡겠다는 발상은 시민운동이 경제활동에 참여해서 돈벌이를 하겠다는 발상만큼이나 자가당착적인 행동”이라고 힐난했다.

조중동 임의편집 실제내용보다 기사 키워

지난 8월 9일, 환경연합(사무총장 최열)은 일파만파 번져가는 이석연 총장의 발언 중 “환경연합을 직접 거론하며 지방선거참여 등을 비판한 부분에 대해 항의”하며 비공개 공식질의서를 경실련에 전달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특정정당 정파와 연계돼 있다고 비판했는데 그 근거는 무엇인가, 둘째, 환경연합은 95년과 98년 두 번의 지방선거에 후보자를 냈는데 이를 계기로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됐다면 그 사례를 적시해달라, 셋째,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공동대표 강영안) 등 시민운동진영 내부에도 시민운동을 비판할 수 있는 논의구조가 있는데 이에 앞서 언론에 밝히는 것이 우선시 된 이유는 무엇인가, 넷째, 시민단체의 초법화, 관료화, 권력기구화, 센세이셔널리즘화 등을 우려했는데 그 구체적 근거는 무엇인가.”월간 『경실련』 장영권 부국장에 따르면 경실련은 이에 대해 8월말 이전에 공식 답변서를 작성해 환경연합으로 보낼 방침인데 구체적 답변내용은 아직 논의되지 않았다고 한다. 경실련 정책실 김한기 부장은 “최근 이석연 총장 발언에 대해 조중동이 임의로 편집해 실제 발언내용보다 기사를 키운 대목이 있다”며 “최근 경실련에 대한 언론의 임의적 보도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지난 7월 5일자(제291호) 『주간동아』에도 경실련과 관련해 일부 사실과 다른 점이 보도돼 반론권을 요청한 상태라고.

한편, 이 총장의 발언파문에 대해 여성민우회 김상희 공동대표는 “최근 시민운동에 대해 왜곡하거나 폄하하려는 움직임이 많은 가운데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의 주요직책자가 여러 논의의 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은 채 경찰들 앞에서 시민운동의 문제점을 설파했다는 점은 납득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환경연합측은 “NGO가 비판받아야 할 대목이 있다면 비판받아야겠지만 어느 대목에서 비판받을 대목이 있는 것인지 일반사람들이 이해할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발언해야 하는데 이 총장은 그 구체적 근거를 결여해 기존 정치권과 무엇이 다른지 의문을 품게 했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신철영 부천경실련 집행위원장도 “이석연 총장의 시민운동 비판발언 중 일부는 시민단체 내부에 전혀 없는 문제라고 볼 수 없지만 ‘연대를 통한 획일주의’는 현재 시민운동진영 내부를 충분히 돌아보지 않은 무리한 발언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경실련운동 반성에서 비롯된 비판

지난 8월 14일 오후 2시 경실련 강당에서는 경실련 평간사협의회(회장 김건호)가 제안한 이석연 사무총장과의 간담회 자리가 마련됐다. 1시간 30분간 전체 경실련 상근진의 2/3 가량이 참여한 가운데 진행된 약 질의응답 속에서 이석연 총장은 “자신의 발언을 언론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도록 왜곡되게 포장한 대목이 있다”며 “원래 발언의 의미가 다르게 전달돼 유감”이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김건호 평간사협의회 회장에 따르면, “이석연 총장은 자신이 지적한 시민단체의 관료화, 권력기구화, 센세이셔널리즘화 등은 기본적으로 경실련운동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 발언인데 마치 다른 단체를 공격하는 것처럼 보도돼 언짢다”며 “외부단체들과의 오해는 자신이 스스로 나서 풀어갈 것”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김 회장은 이날 간담회를 통해 ‘시민운동에 대한 내부 공론화 과정의 활성화, 평간사협의회와 사무총장간의 간담회 자리 활성’ 등을 결론으로 도출해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최근 언론들은 이석연 총장의 ‘시민단체 정치참여 반대’ 발언파문 이후 시민단체의 지방선거참여문제를 둘러싼 찬반논쟁을 싣고 있다. 따라서 이미 지면을 통해 몇몇 시민운동가들은 지방선거참여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 시작했으며, 앞으로 이에 대한 논의는 시민운동진영 내에서도 가속화 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시민운동진영은 지난 91년 지방선거를 비롯 95년, 98년 세 번의 지방선거를 치르는 동안 지방선거참여에 대한 내부 논의를 상당부분 이룬 바 있다. 지방정치분야는 생활정치의 연장으로 시민의 삶과 밀접히 연관돼 있기 때문에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참여하는 것은 상당히 긍정적이라는 것. 따라서 지난 91년 지방선거에는 ‘자치연대’를 통해 경실련의 일부 볼룬티어 멤버들이 직접 지방선거에 참여했고, 95년 지방선거에는 여성연합이 수도권에서만 광역의회 4명, 기초의회 10명을 당선시키기도 했다. 이뿐 아니라 참여와 자치를 위한 청년캠프는 전국적으로 50여 명의 지방의원을 배출했으며 경실련, YMCA, 환경연합 등은 대규모로 후보를 내 사회적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생활정치의 연장으로 지방정치에 시민운동가들이 진출하는 것은 상당히 긍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무엇보다 시민의 삶과 직접 연관된 활동을 하기 때문이죠. 그 길에 경실련도 함께 했고요. 하지만 경실련 조직 자체가 선거에 직접 참여하거나 특정후보를 지지 혹은 반대하는 일은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또한 지방선거참여에 대한 경실련의 공식 입장은 아직 논의된 바 없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박병옥 경실련 기획조정실장의 말이다.

선거참여 찬반양론 상호존중 돼야

하지만 여전히 시민운동진영 내부에는 시민단체의 지방정치참여에 대해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시민운동 자체가 권력화 할 수 있다는 걱정 때문. 환경연합 녹색자치위원회 박재석 국장의 말을 들어보자.

“환경과 자치는 풀뿌리민주주의의 기초입니다. 여기에 시민운동가들이 결합하는 건 시민운동의 연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지방선거참여에 대해 찬성할 수도 있고 반대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찬성입장은 지방선거도 시민운동의 연장선으로 해석하며 환경과 자치의 입장에서 지역의 갖가지 현안을 주민들과 해결해나가자는 취지인 것이고, 반대입장은 시민운동이 그 순수성을 훼손할 수 있는 정치세력화의 전초기지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모두 논리적 근거가 있다고 생각해요. 따라서 그런 양측의 입장이 상호존중 돼야 한다고 봅니다. 선거시기에 낙선운동, 당선운동, 공명선거감시운동 등 다양한 활동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따라서 다양성과 자율성이 존중된 상태에서 이런 모든 운동이 가능하도록 시민사회가 먼저 노력했으면 합니다.”

한 시민운동가의 발언 이후 불거진 시민운동 비판과 지방정치참여논쟁은 ‘또 다른 불씨가’ 되어 8월의 무더위와 함께 후끈 달아올랐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발언내용의 진의가 신문지면을 통해 왜곡됐다고 주장하고 있고, 이를 구미에 맞게 적절히 활용한 언론들은 수수방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무수한 시민단체들은 진의와 관계없이 다중으로부터 관료화되고 권력집단화 됐다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그 시시비비를 어디서부터 가려야 하는지 진지한 논의를 시작할 때다.

장윤선(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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