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09월 2001-09-01   2168

법 위에 선 레미콘협회 뒷배경이 수상하다

생존위기 몰린 레미콘노동자들 당산철교 아래 6개월째 농성

고요한 한강을 좇아 시선을 돌려보니 국회의사당이 침묵하고 있었고 맞은 편 교각 아래로는 쓸쓸한 천막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천막 위에 꽂혀 있는 ‘민주노총 건설운송노동조합’ 깃발만 바람에 펄럭일 뿐. 레미콘노동자 130명이 당산철교 아래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상황실로 사용되는 천막에서 박정두 상황실장과 레미콘 노동자들을 만났다. 박 실장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답답합니다 법대로 하자는 건데 사업주가 억지를 부리고 있으니까요. 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찾는 투쟁이 반년 가까이나 지속된 상황이지요.”

레미콘 노동자들은 형식상으론 자기 레미콘차를 가진 독립 ‘사업자’들이다. 그러나 이들과 회사의 지위는 결코 대등하지 않다. 레미콘노동자들이 차를 운행하는 형태는 크게 세 가지. 도급과 불하, 그리고 지입이다. 도급이란 회사소유 차량에 임대료를 내고 운행하는 것이다. 불하란 회사에서 차를 운전자에게 시중가보다 1000만∼1500만 원 비싸게 파는 것. 차가 운전자 소유가 되면 기름값, 수리비, 각종 세금 등은 모두 운전자 부담이다. 지입이란 개인이 차를 산 뒤 입사하는 경우다. 이 때 구입한 차는 다른 회사에서 운행하던 차량이 대부분이며 이 차량 소유자 역시 모든 비용을 자기가 부담한다. 레미콘 노동자들이 한 달에 버는 돈은 300만 원 정도인데 이 중 100만 원은 기름값, 100만 원은 세금 및 유지관리비로 들어가고 손에 쥐는 건 겨우 100만 원 정도다. 게다가 이들에게는 건강보험, 산재보험, 고용보험 혜택도 없고 퇴직금도 없다. 레미콘 노동자들은 사실상 개인사업자가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다.

법원도, 노동부도 인정한 합법노조, 그러나

레미콘 노동자들이 ‘노비문서’라 부르는 ‘레미콘 운반 불하계약서’에는 “운송기사는 원거리 소량 운반 또는 조기출근, 근무시간 연장 등을 이유로 회사의 배차 지시에 불응해서는 안 되며, 불응시 회사의 제재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고 못박고 있다. 나아가 “회사의 운행지시를 어겼을 때” 계약을 해지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지난 해 9월 경기도 지역에서 일하던 레미콘 노동자들은 이같은 열악한 근무여건과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건설운송노조 설립에 나서 같은 해 11월 민주노총 건설연맹과 함께 건설운송노조를 만들었다. 3∼4개월만에 노조에 가입한 레미콘 노동자들은 2800여 명이나 됐다.

그러나 유진레미콘을 중심으로 한 한국레미콘공업협동조합연합회(회장 유재필, 유진레미콘 업주)는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고 이들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레미콘 사업주들은 노동자들의 노조설립인정투쟁이 시작되자 업계에 행동지침을 돌렸다. 이 지침에 따라 노조에 가입한 노동자들에게는 배차가 끊겼으며 각종 징계가 잇따랐다. 또한 계약서에 명시된 사항이라며 계약위반에 따른 범칙금을 청구했다. 노동자들이 범칙금을 내지 않자 레미콘 업주들은 가압류에 들어갔다. 제일레미콘은 레미콘노동자들의 임금인 운반비까지 가압류했다.

더 나아가 레미콘공업협회측은 ‘레미콘 노동자들은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주’라며 노조를 인정할 수 없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지난 4월 법원과 지방노동위원회는 노조의 적법성을 인정했다. 서울 영등포구청은 노조설립필증을 교부했으며 지난 6월에는 노동부도 레미콘 사업주의 부당노동행위를 검찰에 고발했다. 노동부는 검찰에 무려 50여 건의 부당노동행위를 고발했지만 검찰은 계속 묵묵부답이다.

레미콘 사업주와 산자부의 밀월관계?

노동자들은 집단 삭발식, 알몸 시위, 자전거 전국순회 등을 벌였다. 그러나 이들에게 돌아온 것은 경찰의 도끼와 쇠몽둥이뿐이었다.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레미콘 차량을 앞세우고 농성을 벌이던 레미콘 노동자들은 지난 6월 경찰에 강제진압 당했다.

급기야 건설운송노동조합 고문 변호사인 김칠준 참여연대 작은권리찾기운동본부장은 국회의사당 앞에서 “법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했다”며 16일간 단식투쟁을 벌였다. 김 변호사의 단식투쟁은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의 단식농성으로 이어졌다. 지난 7월 27일 ‘레미콘노동자 기본권실현과 유재필 구속을 위한 100인위원회’가 구성돼 릴레이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수배 중이던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이 지난 8월 2일 자진출두하자 검찰은 레미콘 사업주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 8월 3일 유재필 회장은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레미콘 노동자들은 사업주들의 부당노동행위 뿐 아니라 불량레미콘 사용 등 사업주들이 저지르고 있는 또 다른 비리에 대해서도 수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사업주들이 물 탄 레미콘 등을 사용해 부당이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불법행위는 사업주들이 레미콘 KS인증권과 관급물량 수급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레미콘 노동자들은 사업주들의 이익단체인 한국레미콘공업협동조합연합회가 KS 인증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위법”이라고 주장한다.

현행 산업표준화법에 따르면 한국표준협회가 품목별 KS인증권을 위임할 수 있는 곳은 소비자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비영리법인에만 가능하다. 그러나 레미콘공업협동조합연합회는 자신들의 홈페이지에서도 밝혔듯이 레미콘 사업주들의 이익을 도모하는 단체다.

한편 레미콘 사업자에 대한 검찰 수사가 늦어진 데에는 여권 실세가 유재필 회장과 밀착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의혹도 불거져나왔다. 우연의 일치일까? 시민단체가 유 회장 비호 세력으로 지목한 동교동계 거물급 인사가 외유를 떠나자마자 검찰은 유씨를 소환했다. 검찰조사는 시작됐지만 레미콘 노동자들은 투쟁을 멈출 수가 없다. 사측은 여전히 ‘대법원 판결이 나와야 한다’며 협상에 응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건설운송노동조합 유진레미콘 광주지부장 장병권 씨는 “회사가 조합원들에게 가압류 신청을 해둔 것이 많다”며 장기 파업으로 겪고 있는 고통을 말했다.

“경매 들어간 집, 이혼한 집, 전기나 가스 끊긴 조합원들도 있습니다. 카드는 죄다 연체된 상태고 더 빌려다 쓸 돈도 없습니다. 저희 사업장은 파업에 들어간 지 6개월이 넘었는데 희망이 안 보입니다.”

회사마다 작은 차이는 있지만 상황은 비슷했다. 레미콘 노동자들은 회사에 피해를 끼쳤다는 이유로 업무방해죄로 고발되어 각종 가압류에 걸려 있다. 나이 지긋한 한 조합원은 이런 과정에서 이혼까지 겪었고, 또 다른 조합원은 대학원생, 대학생인 자녀들이 모두 휴학했다는 것이다. 부인을 식당에 내보내 생계를 꾸려가거나 조합원들이 건설현장에 나가 막노동을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싫으나 좋으나 장기전입니다. 장기전에 맞는 전략으로 가야지요. 형사들이 길어야 일주일이라고 쓴 보고서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벌써 반 년째거든요. 비결이요? 아마 살아온 관록이 있어서겠지요. 자식들 대학 보내고 며느리까지 본 사람들은 한 번 마음 정하면 오래 가는 사람들이지요. 싸우면서 보니까 50, 60대가 투쟁력이 더 셉니다. 소신도 강하고.”

담담하게 말을 이어가던 박정두 실장이 환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결론은 이겁니다. 어차피 하는 투쟁, 웃으면서 하자!”

비는 개였어도 바람이 더 거세졌다. 검찰에서 수사중이니 내일부터는 그리로 가야겠다는 얘기도 나오고, 시원찮으면 가만있지 말자는 말도 들린다. 매운탕은 보글보글 끓고 종이컵은 바삐 돌아간다. 투쟁기금으로 산 것이라며 한 방울도 남기지 말고 마시라고 한다. 바람 탓인가, 천막 너머 민주노총 건설운송노동조합 깃발은 더 힘차게 펄럭이고 있었다.

레미콘 노동자들이 말하는 불량레미콘 유통실태

물 타기 환경파괴 강도조정 불법매립…관행화된 범죄

지난 5월 15일 레미콘노조의 기자회견을 계기로 불량레미콘 문제가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알려졌다.

과거 삼풍백화점에 레미콘을 타설(콘크리트 배출)하기도 했다는 배순철 씨는 “회사에서 돈을 아끼려고 불량레미콘을 계속 팔았다”고 증언한다. 위한석 씨도 “감리가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출하된 지 2시간이 넘은 레미콘은 사용할 수 없지만 사업주들은 굳은 레미콘에 물을 타 다시 사용한다. 노조가 갖고 있는 불량레미콘 납품 현황표를 보면 지하철 공사현장에 물 탄 레미콘을 사용한 기록도 즐비하다. 원래 역사나 학교, 관청, 아파트 등의 공공시설에 들어가는 레미콘은 시멘트가 더 들어간 고강도 레미콘이어야 한다. 그러나 비용 때문에 강도나 배합은 문제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 쓰고 남은 레미콘에 새 레미콘을 섞어 보내기도 한다는 것. 더 어처구니없는 경우도 있다. 레미콘 발차를 증명해주는 문서를 ‘송장’이라고 하는데 실제 떠난 차량은 없는데도 송장뭉치만 발행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거래된 물품은 없고 거래된 기록만 있는 ‘허위송장’. 이때 지급된 레미콘 대금은 송장을 발행하고 접수한 측들이 나눠 갖는다. 제일레미콘 사장은 바로 이러한 사기행각으로 구속됐다. 현재 레미콘업체들은 상수도보호를 위한 정화시설도 갖추지 않은 채 차를 닦아 레미콘이 들어간 물이 하천, 하수도로 그대로 흘러 들어간다. 남은 레미콘을 불법매립하고 있다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배순철 씨는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부풀려진 비용은 그대로 아파트 입주자들, 즉 국민의 부담이 된다”고 말한다. 싸고 튼튼한 집을 지어야 하는 건설업이 더 비싸면서 더 엉성한 집을 짓고 있다는 말이다. 이에 대해 유진레미콘 최종성 이사는 “레미콘 노조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이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고자 하는 시나리오”라고 반박한다. 그는 물타기, 환경파괴, 강도조정, 불법매립 등의 불법사항들에 대해 정부 해당부처나 시·도 행정기관이 모두 현장에 와서 확인했지만 문제가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레미콘 노동자들은 “구조적이고 관행화 된 불법, 탈법 건설범죄를 감시하고 규제할 수 있는 대안”이 필요다고 강조한다.

조진호 본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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