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09월 2001-09-01   872

시민행동리뷰②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라!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 뒤집어보기

여성의 외모를 규격화된 수치로 평가하는 미스코리아대회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그대로의 여성의 모습을 존중해야 한다는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는 행사,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 초등학생부터 여든의 할머니, 장애여성까지 연령, 몸무게, 직업 등에 관계없이 모든 여성들이 참여할 수 있는 명실상부한 여성의 축제인 안티미스코리아 대회에 쏟아진 사회적 관심은 놀랄 만하다. 메이저 방송과 신문은 물론이고 약 100여 개의 매체가 안티 행사를 집중 보도했다. 각 대학의 신문, 방송사에서도 안티 행사에 대해 폭발적인 관심을 보엿고, 행사가 끝난 뒤에도 안티 행사의 기록 영상물은 대학가의 주요 축제에 빠짐없이 등장하고 있다.

직업의 경계를 넘어’라는 주제로 열린 제3회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의 티켓은 예매한 지 사흘 만에 매진됐으며, 행사당일 입석까지 모두 동이 나, 행사장을 찾은 수백여 명의 관객들이 아쉽게 발길을 돌려야 했을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1회 행사가 ‘IF YOU ARE FREE’라는 주제로 미인대회 자체에, 2회 행사가 ‘IF YOU ARE FREE SIZE’라는 주제로 수치로 대변되는 여성들의 몸매에 ‘딴지’를 걸었다면, 3회 행사는 일과 일터에 있어서 남녀 직업에 대한 고정관념 허물어뜨리기를 시도했다. 여성이라는 사회적 성과 한계를 뛰어넘고, 남성들만의 영역으로 여겨지는 분야에 도전한 여성들, 그리고 여성들의 경험에 기반해 새로운 직업 영역을 개척하는 여성들, 그들의 삶을 퍼포먼스와 뮤지컬과 모노드라마 등 다양한 공연형식을 통해 보여주고 그들을 통해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여성이미지를 만들어보자는 것이 올 행사의 취지였다.

사실 1, 2회 안티 행사를 보고, 3회 행사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캐치프레이즈의 뜬금 없는 변신에 어리둥절해하는 이도 있었다. 더군다나 공영방송인 MBC가 내년부터 미스코리아대회의 생방송을 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직후여서 더욱 그랬다. 열렬한 안티 행사의 지지자들 중에는 미스코리아대회의 전국방송을 막은 안티 행사의 성과를 대대적으로 알리자는 취지에서 3회 행사의 캐치프레이즈를 ‘마지막회’로 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리곤 4회 때부턴 페미니스트 페스티벌로 바꾸고. 오, 굿 아이디어! 언젠가 안티행사는 그렇게 멋지게 변신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게 3회 안티 행사를 준비하는 스탭들의 일치된 의견이었다. 안티행사를 통해 여성들이 하고 싶은 말이 아직도 많기 때문이다.

1, 2회 안티행사가 여성의 외모에 대한 차별과 억압의 문제를 제기했던 것은 그러한 편견이 우리 여성들로 하여금 일과 일터에서 자리매김을 하는데 장애가 되고 있어서였다. 우리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우리가 서 있는 자리에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당당하게 자리매김하는 것 바로 그것이지 않은가. 그래서 3회 안티 행사는 여성들의 일과 일터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3회 행사의 스탭들은 그렇게 중지를 모았다. 남성들도 예외는 아니다. 남녀의 성별역할에서 벗어나 새로운 영역의 일과 일터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남성들 다수가 이번 행사에 동참했다. 기획팀으로서는 출전자 공모가 보도릴리스 되고, 오디션을 거칠 때까지 직업이라는 주제로 얼마나 많은 참가자가 모일까,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기우였다. 무려 100여 명의 여성 그리고 남성들이 3회 안티행사에 참여의사를 밝혔고, 그 중 오디션을 거친 정예요원 70 여명이 이번 무대에 서게 됐다. 그들의 선전에 파이팅!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순 없다

“섹시하고 여성스러운 미스코리아 춤을 깨는 새로운 개념의 춤”을 보여준 연세대학교 여성주의 힙합공동체 I WILL의 ‘불타는 하이힐을 던져라’, “가부장제는 가라/남성에서 여성까지/향기로운 인류애만 남고/그 모든 차별주의는 가라”는 시극으로 여성과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고발한 언어장애인 예옥주 씨와 일곱 살짜리 딸 김낙영의 공연은 관객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리고 성별 직업의 금지구역을 넘어서는 데 남자도 예외가 아니라고 선언한 남자 간호대생 이송로(삼육간호보건대)의 ‘나이팅게일의 반란’, 패션모델 이대학의 성별의 경계를 넘어선 패션쇼, 유치원 교사를 꿈꾸고 있는 유아교육학과 대학생 김대욱(중앙대)의 구연동화는 이번 행사를 더욱 뜻깊게 만든 공연이었다.

종교 내 성차별을 꼬집고, 패러디한 극단 해반드르의 풍자뮤지컬 ‘시스터 액트’, 억압받는 남성들을 위해 ‘남성할당제’를 실시하겠다는 공약을 내걸며 여성대통령 통치의 ‘성전복’사회를 풍자적으로 그린 ‘엎어(upper)’팀의 공연, 그리고 프로 축구선수를 희망하는 신창중학교 여자 축구선수팀의 꿈과 의지를 담은 축구시범 등은 경쾌, 발랄, 코믹한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의 진수를 맛보게 해준 공연이었다. 또한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의 모임이 준비한 ‘흥부처(妻) 호적계 습격사건’은 현행 호주제의 문제를 신랄하게 꼬집고, 호주제 폐지의 정당성을 탄탄한 대본과 연기를 통해 설득력 있게 호소해 관객들의 커다란 지지를 이끌어 냈다. 이밖에도 영화특수분장사 윤예령 씨의 축하무대인 특수분장의 세계, 서울시 경찰청 소속 여경특공대의 무술시범쇼 등이 이번 행사를 더욱 빛내 주었다.

유명 해외인사들의 축하영상도 주목을 끌었다. 미국의 『미즈』지를 창간한 글로리아 스테이넘과 그의 파트너, 독일의 『엠마』 편집장인 알리스 슈바르처, 미국의 레즈비언 영화감독인 바바라 해머 등이 안티 행사에 격려와 축하인사말을 보내와 국경의 장벽을 넘어서는 끈끈한 자매애를 느끼게 해주었다.

MBC가 내년부터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생방송을 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이후 마침내 우리사회에 미인대회 수난시대가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스코리아 기준에 맞춰 뼈를 깎는 고통을 겪으며 얼굴을 만드는 끔찍한 사태를 미연에 막기 위해서라도 남성 위주로 여성의 아름다움을 재는 구태의연한 미인대회를 과감히 떨쳐 버려야 한다는 의식이 사회 곳곳에 뿌리내리고 있는 것이다.

미인대회 수난시대 왔다

무엇보다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은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기준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인위적인 미, 엄격한 기준, 엄선된 소수의 미인이 선정되는 미스코리아선발대회가 사라지고 대신 창의적인 생각, 자유로운 무대, 다양한 미의 기준으로 여성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이 새로운 대안문화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은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를 비롯한 각종 미인대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를 폐지하고자 하는 정치적 목적으로 시작했지만, 이제 더 멀리 나가고 있다. 진정 여성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페미니스트들의 축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여성들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며, 즐거워 할 수 있는 축제의 한마당으로서,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은 미인대회가 사라진 그 곳에 새롭게 둥지를 틀 것이다.

황오금희 페미니스트 저널『이프』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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