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02월 2001-02-01   1066

농산물은 보호대상이어야 합니다

정광훈 전농의장 인터뷰

“농사꾼도 국민이다!”

지난 1월 10일 전국농민회총연맹(이하 전농) 사무실에서 만난 정광훈 의장(63세)은 이 문구를 보자마자 “국민? 에이 무슨, 우린 기타 국민이지”라며 씁쓸하게 웃는다. 국민의 범주에도 못 들어간다며 자조적으로 웃는 그는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붙이고 긴 연기를 피워 올렸다.

지난 11월 21일과 12월 7일, 전국의 농민들은 농가부채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전국 동시다발 투쟁을 벌였다. 이른바 고속도로 점거시위. 온갖 매스컴은 농민이 들판을 떠나 아스팔트 위에 선 사실을 호들갑스럽게 보도했다. 그러나 정작 빚 얻어 농사짓느니 차라리 구멍가게 장사라도 하는 게 훨씬 생존에 도움 되는 농촌의 현실을 그들은 알까. 특히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이 논의되는 상황에서 또 한번 벼랑 끝 위기에 몰린 농민이 숫제 수면제를 한 움큼 움켜쥐고 볏단에 불을 놓고 뛰어드는 심경을 우리는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개발독재의 상흔이 여전한 대한민국 ‘이등국민’ 농민과 농촌, 농업의 문제들…. 정광훈 의장을 만나 숙의해 본다.

현재 우리 농민이 처한 현실이 어느 정도인지부터 말씀해주십시오. 여러 문제가 겹쳐 최악의 상황인 것으로 아는데요.

“큰 줄기부터 말할 수밖에 없겠군요. 지금 우리 농민들에겐 농가부채 해결이 당면과제입니다. 이와 함께 농산물 가격문제와 농민의 이익을 담보하는 협동조합 개혁이 절절이 요구되는 현실이죠. 상황을 단적으로 설명하면 수입개방 때문에 농산물 가격이 곤두박질치고 있어요. 이 문제가 제일 심각하고, 또 농가부채는 사실상 박정희 시대부터 내려온 구조적인 역사를 안고 있습니다. 박정희가 추진한 고도산업화가 다국적 자본과 기술에 의해 진행되는 과정에서 저임금, 저곡가 정책을 실현시킨 것입니다. 기업가가 초과이윤을 달성하기 위해 그리고 수출주도형정책을 이끌려는 정부로서는 일관성 있는 정책이었죠. 결국 저농산물 가격정책이 지금까지 내려온 것이고요.”

구체적으로 어떤 예가 있습니까?

“전에 소 파동이 있었어요. 외국 소를 싸게 파니까 다들 사서 들여와 키운 다음, 좀 비싸게 팔려고 하니까 소 값이 똥값이 되었어요. 당시 정부가 나서서 소 사육을 권장했습니다. 종자 자체를 외국에 의존했고, 사료도 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돼지·닭 파동도 마찬가지 악순환을 겪었던 것이고요. 이건 무엇을 의미하냐면 우리 시장은 한정돼 있는데 정부가 권하면 너도나도 과잉생산하게 된다는 겁니다. 제값을 못 받아 부채를 질 수밖에 없는 구조란 말이죠. 원예업을 봅시다. 정부는 시설 원예 자금 같은 것은 지원을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가격지지 정책은 없다는 거예요. 토마토·오이·수박·딸기 등 비닐하우스로 재배하는 원예업이 다 그래요. 또 농산물을 사먹는 도시인의 식생활 패턴이 바뀐 것도 원인 중 하나예요. 외국의 다국적 상품인 피자·햄버거·라면·즉석 수제비까지 사먹음으로써 우리 농산물은 소비가 안 되고 있잖아요. 과일류도 마찬가지죠. 오렌지 수입으로 귤 농사가 망했고, 사과·복숭아·포도 모두 거덜났어요.”

심각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런 변화에 따라 농촌도 바뀌고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농사를 지어서 얻는 결과가 있어야 농촌에 희망이 있습니다. 일부 도시인들이 귀농자금을 얻어 상록수의 꿈을 실현하려 했지만 하는 농사마다 잘 안 되고, 빚만 지게 되니 결국에는 도시에서 가져온 돈마저 다 써버려 또다시 이농하는 암울한 현실이지요. 정부의 귀농 정책은 실패했습니다. 그나마 남아 있던 젊은 농민들이 꿈과 희망을 잃었습니다. 허탈할 뿐이죠. 농사지어 나온 농산물로 부채이자 갚느라 허덕여야 하니… 이거야말로 부도난 기업 아니겠어요? 하지만 농민 입장에서 보면 우리는 밑지지 않을 수준에서 생산비만 보장돼도 농사를 계속 지어요. 그런데, 농산물 가격이 원가 이하로 밑도니 도리가 없단 말이에요. 이러니 전망이 없어요. 일은 고되고, 전망은 불투명하고, 누가 우리 농촌을 지키고 이끌겠습니까. 결국 꼬부랑 할머니만 남는 현실이 되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결국 노령화된 이들이 토지를 도시에 나간 자식에게 물려줘야 되는데 이것도 어려우니까 정부는 대경영, 즉 기업농 형태로 자꾸 농촌을 바꾸려 하고 있어요. 부재지주의 땅이나 노령화된 사람들의 땅을 농지구입자금으로 젊은 농민에게 줘서 대경영을 하게 하는 거죠.”

우리와 같은 소규모 영농에서 대규모 기업농으로의 전환은 향후 우리 농업의 발전 방향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농업발전은 대경영 방식으로 가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기업농인데, 즉 정주영처럼 넓은 땅을 사서 비행기나 수십 대의 트랙터로 씨뿌리고 농약을 치는 방법이 있는데 이는 전혀 농민적 진화발전이 아닙니다. 다른 하나로 협업화의 길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농민의 올바른 발전방향입니다. 그런데 정부는 이걸 시도도 하지 않을 뿐더러 그런 길로 가는 것 자체를 막고 있습니다. 봉건사회에서는 부채를 많이 지면 마누라나 딸을 종으로 데려갔는데 지금은 법정관리로 땅을 빼앗아 갑니다. 이것을 다시 사가는 이들이 기업농이죠. 정부가 이를 유도하는 것입니다.”

그 또한 하나의 유토피아를 꿈꾼다. 농민의 삶이 비록 가난하지만 협업과 상생을 이루는 아름다운 공동체로서 아직 그 의미가 퇴색하지 않았음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구잡이식 기업농이 늘어 가는 농촌에서 농민들이 함께 할 수 있는 문화는 안타깝지만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이젠 그들조차 1·2차는 호프집에서, 3차는 노래방으로 마무리짓는다. 이런 현실을 토로하며 그는 ‘미국식 퇴폐문화’가 없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드높이기도 했다.

11월 21일 1차 궐기에 이어 12월 7일 2차 궐기가 있었습니다. 언론에도 보도되었듯이 농민들의 분노는 대단했습니다. 집중투쟁의 성과는 어느 정도나 거두셨습니까?

“현재 농민의 심정은 이자만 갚을 수 있어도 생산을 지속 하고 싶다는 겁니다. 그러나 현재로는 원금은커녕 이자조차 갚을 길이 없습니다. 이자누적은 구조적인 것이에요. 따라서 1차적으로는 부채탕감투쟁을 벌인 겁니다. 이것은 정부의 잘못된 시책에서 비롯된 부채는 원칙적으로 탕감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죠. 이 속에서 정책자금·상환유예·보조금 지급 문제가 동시에 해결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장기저리로 대출을 해주고, 연대보증 고리를 끊어달라는 요구를 한 것입니다. 남아 있는 농민들이 농사만이라도 지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자기 빚 갚기도 힘든데 남이 진 이자와 원금을 갚으라고 하는 건 농민을 노예와 다름없이 취급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연대보증 고리를 잘라달라는 것이죠. 김성훈 장관은 형식적으로만 이 문제를 다뤘을 뿐 부채 경감정책은 소홀히 하더군요. 그래서 우리 농민단체들이 이 문제들을 한데 묶어서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동시다발 투쟁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이었습니까?

“우리가 전국 동시다발투쟁을 할 땐 다 이유가 있습니다. 서울에 몇 차례씩 모여 집회해서 뭔가 시원하게 해결된 적이 없으니까요. 그리고 11월 21일의 1차 투쟁은 농가부채 특별법을 제정하라는 요구의 신호탄이었습니다.

내가 장관, 정치인, 대통령이라면 이 법을 공약으로 하고 꼭 제정할텐데, 참. 자기자랑이고 역사에 남을 만한 일이고, 농민들에게 계속해서 지지를 얻게 될 텐데 말이죠. 농민을 포함해서 모두 좋은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걸 안 해요. 2차투쟁까지 정부가 법을 만들 계기를 마련해 주었으나 결국 못했습니다. 농가부채는 금융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전농의 입장은 지금 있는 농가의 부채를 완전탕감하든지 장기저리융자 구조를 만들든지 하라는 것입니다.”

농가부채투쟁 이후엔 어떤 투쟁을 벌일 계획입니까?

“농산물가격투쟁으로 갈 것입니다. 부채가 계속 쌓이는 이유는 바로 정부가 농산물에 대한 가격지지정책을 펴지 않기 때문입니다. 농산물을 시장에 맡긴다는 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쌀도 그렇고 농산물 전체에 최저가격보장제를 시행하라는 것입니다. 정부는 직접지불제정책 등으로 흉내만 내고 있는 실정이에요.”

경남 진주시에서 열린 농민궐기대회에서는 유리온실에 화훼를 재배해 오다 4∼5억 원의 부채를 진 농민 한 명이 차량에 설치된 단상에 올라 할복자살을 기도하다 미수에 그치기도 했다. 전남에서는 맨몸의 농민 2,000명이 호남고속도로 비아인터체인지에서 연좌투쟁을, 전주 남원간 국도에는 농민 200여 명이 농기계 40여 대, 트럭 20여 대로 차도를 점거한 채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사실 정광훈 의장은 ‘으스스한 투쟁’은 하고 싶지 않단다. 국민들의 이해를 얻을 수 있는 좀더 대중적인 투쟁을 전개하고 싶지만, 현실은 그들을 계속 극한으로 몰아가 결국 거리로 뛰쳐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까지 밀어가고 있다고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올해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개방농정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인지요.

“세계 농업구조는 개방농정이고 미국 중심입니다. 캐나다,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등의 대농경영을 기반으로 곡물재벌들이 GATT에서부터 시작해서 WTO로 자유무역시장을 좌지우지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공산품을 팔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농산물은 절대 부족분만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농업은 빈 껍데기뿐입니다. 씨앗도 외국 것으로 달러로 사와야 합니다. 비료·기계도 그렇죠. 우리 기술과 자본이 아닙니다. 결국 모든 걸 외국 달러에 의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국이 자유무역하자는 것 아닌가요? 한·칠레 자유무역협정도 그렇습니다. 그게 되면 우리 포도 농사는 끝나요. 그리고 칠레 포도는 칠레 농민의 것도 아닙니다. 철저하게 미국 소유의 다국적 농장을 통해 재배된 것입니다. 미국은 필리핀의 사탕수수, 브라질 커피농장 등 식민지 시절의 플랜테이션을 그대로 유지하고 이를 기업화했습니다. 이런 농산물이 싸고 맛도 좋다고 해요. 이런 것들이 들어오면 우리의 귤, 포도 농사는 망합니다. 그러므로 다국적 농산물을 규제해야 합니다. 정 부족한 양만큼만 사먹도록 하면 되는 것이죠. 농산물은 분명 보호대상입니다.”

농민들 간의 계급분화도 심각해지고 있다. 예전 지주-소작 관계가 재현되기도 하고 그야말로 20%의 부농과 80%의 빈농이 생겨나고 있기도 하다. 과연 정광훈 의장은 이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농촌 내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점점 심해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소작료율이 50%나 됩니다. 부재지주 땅의 소작료만이라도 없애야 합니다. 농토는 ‘사회적 생산물’이 아니고 ‘자연적 소산물’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서 농사를 짓는 농민의 입장에서는 소작료를 낼 수 없는 것입니다. 우선 이게 해결돼야 합니다. 또한 현재의 농업구조 아래에서는 농사를 제대로 짓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다 보니 부채가 생기고 이를 갚기 위해 땅을 팔게 되어 대경영, 즉 기업농으로 흡수가 됩니다. 그러면 기업농 사이에서도 경쟁이 붙고 농지 값이 오르게 됩니다. 정부는 일부 전업농에게 농지구입금을 지원함으로써 이를 부추깁니다. 순수하게 농사를 지어서 논과 밭을 사야 되는데 이런 돈이 들어오므로 자연히 농민 내부의 양극화 현상이 일어나게 됩니다. 매우 심각한 상태가 맞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협업화로 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농업의 관점에서 문제를 풀어야 할 것입니다. 그 지역에서 생산된 작물이 재배에서 생산, 판매까지 모두 협동조합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그러면 그 지역 농민들이 스스로 계획을 세울 수 있어서 과잉은 자르고 필요한 만큼만 생산하게 되므로 조절도 가능할 것입니다.”

필리핀 여성이 농촌으로 시집가는 등 또다시 농촌총각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데요.

“농촌총각 문제는 심각합니다. 장가도 못 가고… 예전엔도시생활에 찌든 사람들이 결혼하러 왔었는데 이것마저 없어졌어요. 멋모르는 도시 아가씨들도 이젠 결혼상대로 농민을 정하지 않습니다. 전농 차원에서 한때 결혼대책위원회를 만들어 70쌍 정도가 도시처녀와 결혼하여 잘 살게 된 적도 있습니다. 지금은 잘 되지 않고 있어요. 연변 사기꾼이 끼어드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한편, 연변에서 온 처녀들은 사회주의 체제에서 살다가 다른 체제로 와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들은 그 체제에서 배운 대로 사람대접 받기를 원하는데 우리 사회가 그렇지 못해 실패로 돌아가는 경우도 많았어요. 통일교에서 다국적 결혼을 하는 경우도 농촌에서 봤습니다. 필리핀 여성과의 결혼도 사실입니다. 간혹 잘 산다는 얘기를 듣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농촌총각 문제는 해결이 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현재 농촌총각은 심지어 40∼50대도 있어요.”

한 시간 내내 진지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친 그는 현재 우리나라의 자본주의를 ‘놀부자본’이라고 평한다. 내 것은 내 것이고 네 것도 내 것이라는 놀부 심보. 전남 해남의 YMCA에서 한때 일하기도 한 그는 시민단체가 이런 봉건적 잔재를 깨는 일을 계속해서 해주었으면 한다고 부탁했다. 운동이란 것은 사회변혁을 목적으로 하는 것. 부패한 정치권력이 민중의 삶을 옭죄고 있고, 그 힘 관계가 변화할 수 없는 고착상태로 굳어지기 전에 그 구조를 원천적으로 바꿔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 원칙 속에서 그가 현재 농민운동을 이끄는 방향이 숨어 있다. 그것은 민족경제의 사수와 통일농업의 기초를 닦는 것이다.

농촌문제를 해결할 희망의 근거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통일농업에서 그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즉, 북에 희망을 거는 겁니다. 우리에게 과잉생산물이 생기면 이를 북에 보내주고 그쪽에서는 건초, 사료, 감자 혹은 원종자를 주는 교류를 하면 됩니다. 우리는 종자조차 거의 외국 것이지만 북에는 남아 있어요. 이건 매우 귀한 겁니다. 인력교류도 가능한데 추운 북에서 먼저 추수를 할 때 남에서 올라가 도와주고 남이 추수를 할 때 북의 농민이 내려와 도와주면 얼마나 좋습니까. 서로 일손이 부족하니까요. 또한 이는 냉전시대에서 통일시대로 가는 길목을 더 넓힐 것입니다. 비료도 부족하다는데 남쪽의 축산폐수를 그대로 보내든가 퇴비로 바꾸거나 하면 될 것이고 북에는 무공해 짚이 있으니까 또한 교류가 가능합니다. 남은 못자리도 잘 되니까 올해 북에 못자리를 위한 비닐보내기운동을 할 예정이에요. 이런 활동들은 단지 북이 불쌍하기 때문에 도와주는 것이 아니고 민족애와 통일을 전망하는 차원에서 생각한 것입니다.”

최경석(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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