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06월 2001-06-01   1530

비정규직도 근로기준법 덕 좀 봅시다!

비정규 노동자를 위한 ‘노동법’ 강좌

“파견근로자로 한 사업장에서 사무직으로 일하고 있다. 하는 일은 문서수발과 근태관리, 경리업무이다. 곧 파견기간 2년이 만료되는데, 이후에 어떻게 되는가? 또 그동안 연차, 월차, 생리휴가를 한번도 쓰지 못했다.”

“시립병원 방사선과에서 임시직으로 3년 10개월째 근무해 왔다. 그런데 회사에서 갑자기 5월 말까지만 다니라고 한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내가 하고 있던 일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이처럼 비정규노동자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 중 하나는 제때 임금을 못 받았을 때 달라고 할 수 있는지, 유급주휴나 연·월차 휴가를 쓸 수 있는지, 별다른 이유 없이 그만두라고 할 때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지 등 ‘근로기준법상 각종 보호를 받을 수 있는가’이다.

현행 법제도 아래에서도 임시직·계약직·촉탁직 등 기간제 노동자나 파트타임, 일용노동자 등도 임금지급 원칙이나 근로시간 제한, 초과근로수당, 연월차 휴가, 퇴직금, 해고, 재해보상 등 근로기준법 상 일부 조항의 적용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기본적인 법 조항도 잘 모를 뿐더러 자신이 정규직 신분이 아니기 때문에 함부로 얘기했다가 그나마 받던 임금도 못 받고 직장까지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섣불리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흔히 알려진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인 만큼 느낀다”는 말을 바꿔 보면 “아는 만큼 싸울 수 있고, 싸운 만큼 얻는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소장 박승흡)나 노동부에 접수된 비정규 관련된 각종 상담내용을 토대로 비정규직과 노동자들의 법적 권리에 대해 살펴보자.

●비정규직도 임금·퇴직금을 요구할 수 있나?

가장 많이 상담하는 사안이다. 인천 서구 가좌동 ㅊ씨는 서울 종로구 소재 M업체에서 9개월 동안 계약사원으로 근무했으나 임금 89만 원을 받지 못했고, 부천에 사는 ㅈ씨는 경기 안성시 소재 아파트 건축현장에서 일용직으로 한 달여 넘게 일했으나 동료 2명과 함께 임금 350만 원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노동부에 진정을 제기해 전액을 받을 수 있었다. 계약직, 파트타임, 일용직 노동자들에게도 근로자가 퇴직한 이후 14일 이내에 임금 등을 지급해야 한다는 근로기준법 제36조(금품청산)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로, 1년 단위 반복계약으로 5년 동안 H주택관리업체에서 근무한 ㄱ씨는 퇴직금 417만 원과 사용하지 않은 연차휴가 수당 57만 원을 받지 못했다. 또한 다른 ㄱ씨는 인천 남동구 소재 S업체에서 ‘하루 5시간 30분씩, 한 달 15일 출근’하는 식으로 3년 동안 청소업무를 해 왔으나 역시 퇴직금 150만 원을 받지 못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에서는 계약기간을 어떻게 정했든 계약연장이나 재계약 등으로 실제로 1년 이상을 계속 일했을 때에는 퇴직금, 연차유급휴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고, 파트타임 노동자라도 주 소정근로시간이 15시간 이상이고, 계속근로기간이 1년을 초과할 경우 퇴직금 지급대상으로 보기 때문에 이들 역시 노동부에 진정을 제기해 전액 지급받을 수 있었다.

●해고당하면?

앞서 언급했던 시립병원 방사선과 임시직의 경우와 같이 특별한 사유가 없거나, 계약기간이 끝나기 전에 해고당하는 경우도 있다. 3년 10개월 근무한 이 임시직 노동자의 경우, 근로계약이 수년간 지속되어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정당한 사유 없는 해고는 부당해고가 된다. 또한 계약기간 내에 해고하고자 할 때에는 30일 전에 해고 예고를 해야 한다. 인천국제공항 건설현장에서 D업체 소속으로 현장 일용근로자로 일해 온 ㅎ씨는 1년 3개월이 넘게 근무하다 예고 없이 해고를 당했다. 결국 D업체는 퇴직금 170만 원과 해고예고수당으로 130만 원 전액을 지급해야 했다.

●정규직에게만 휴일·휴가가 있는 것인가?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 ㅇ씨는 또 이런 질문을 해 왔다. “아르바이트생도 주휴수당 및 월차수당을 받을 수 있는지 궁금하다.” 아르바이트생도 주 소정근로일수를 만근하면 1일의 유급휴일, 월 소정근로일수를 일하면 1일의 유급휴가를 받을 수 있다. 이는 아르바이트직이나 일용직이나, 임시직에 관계없이 마찬가지이다. 또한 1년 이상 계속 근로하면서 소정근로일수를 채웠을 때 다음 해부터 연차휴가를 쓸 수 있다.

아셈회의장 건설현장에서 월 25일씩 1년 6개월을 일해 온 한 일용노동자는 주휴와 월차휴가를 한번도 받지 못했다고 상담을 해 왔다. 쓰지 않은 주휴와 월차에 대해서는 수당으로 지급 받을 수 있다. 또한 한 파견직 여사원은 이런 고민을 털어놓는다. “결혼한 뒤 출산 전까지만 다니고 아이를 낳을 때가 되면 다들 그만둔다. 파견직에게는 출산휴가를 안 준다고 한다. 이런 회사 방침이 법적으로 잘못된 것 아닌가?” 물론 잘못된 것이다. 출산휴가(산전·산후휴가) 60일은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유급휴가로 사용자 마음대로 주거나 주지 않거나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생리휴가도 마찬가지다. 정부기관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는 한 여성노동자는 “공무원인 기능직 임산부들은 생리휴가로 하루 쉬고 있는데, 일용직인 우리는 연차나 월차를 쓰라면서 생리휴가를 주지 않는데 불법 아니냐”고 물어 왔다. 역시 불법이다. 생리휴가는 모성보호 차원에서 모든 여성노동자에게 유급으로 한 달에 1일로 주어지는 휴가이다. 일용직, 아르바이트직, 임시직 등 고용형태를 불문하고 주어져야 하는 것이다.

●일하다 다쳤을 때 재해보상은?

일용직으로 일하는 아버지를 대신한 아들의 상담도 있었다. “아버지가 막노동을 하시는데 현장에서 사고로 오른손 엄지, 검지, 중지가 잘렸다. 방광뼈도 부러져서 핀을 박아둔 상태다. 보상을 받을 수 있나?” 당연히 산재인정을 받을 수 있다.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인정신청을 하고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면 요양급여(치료비), 휴업급여(요양기간 동안의 급여), 장해급여(치료종결 후 남는 장해)를 지급받을 수 있다.

이처럼 법에 규정된 내용조차 이해당사자의 인식 부족 등으로 위반 사례가 많이 발생하자 노동부는 5월부터 두 달 동안 비정규 노동자가 많은 호텔, 백화점, 건설현장 등 전국 1220개 사업장에 대해 집중적인 근로감독에 들어갔다. 노동부는 위법사항이 적발되면 시정 지시하고, 이에 따르지 않을 때에는 사법처리 할 방침이며, 이 기간을 ‘비정형근로자 신고사건 집중 처리기간’ 동안 정해 접수된 민원에 대해서는 우선적인 피해구제가 이뤄지도록 할 요량이다.

이 같은 사용자에 대한 정부 차원의 계도와 함께 비정규노동자 당사자의 권리의식 제고도 절실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근로조건에 대해 노사간 오해와 다툼의 소지가 많은 점을 감안해 채용시 구두계약보다는 반드시 문서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할 것과 불합리한 일을 당했을 때 노동부에 진정을 제기하거나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는 방법 등으로 스스로 법적 권리들을 찾아 나서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이정희 한국비정규노동센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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