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08월 2001-08-01   1575

청와대 앞은 시위 금지구역?

봉쇄당한 청와대 앞 1인시위 손배소 청구할 터

청와대 앞 1인시위가 봉쇄됐다. 집시법(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이 정한 틀을 벗어나지 않고 합법적인 방식으로 의사표현을 해온 1인 시위가 유독 청와대 앞에서만큼은 ‘불법’인 양 취급받는다. 새로운 시위문화의 전형으로 전국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1인 시위. 왜 유독 청와대는 적법한 1인시위를 막는 걸까? 사관 복장을 했기 때문? 글쎄,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무슨 연유인지 일단 사건의 현장 속으로 달려가 보자.

‘대통령 경호’는 법과 인권위에 있다

최초의 청와대 앞 1인 시위는 지난 6월 26일 오전 9시 5분에 벌어졌다. 청와대 정문 20m앞에서 국무회의록 작성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던 필자를 9명의 경호원들이 승합차에 실어 강제 연행해 5분 후 300m 정도 떨어진 통의 파출소 앞에서 풀어 줬다. 필자는 그 자리에서 "사전에 아무런 설명도 없이, 더구나 본인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승합차로 끌고 갔다"며 "이는 명백한 불법연행"이라고 주장했다.

두 번째 청와대 앞 1인시위는 7월 10일 오전 10시에 있었다. 국무회의록 작성을 촉구하는 1인시위를 벌이려던 참여연대 이태호 투명사회국장을 종로경찰서 202기동대 대원들이 둘러싸 진입을 막았다. 세 번째 청와대 앞 1인시위 또한 통행 자체가 금지당했다. 지난 7월 18일 오전 10시, 차량을 이용해 청와대 정문 앞으로 향하던 1인 시위자 참여연대 김기식 정책실장은 정문으로부터 200여m 떨어진 협동청사 앞에서 검문을 받고 하차했고, 이내 청와대 202경비대 소속 10명과 의경 9명이 길을 막고 통행을 금지했다.

현재 청와대 주위 경호는 서울경찰청과 종로경찰서가 맡고 있다. 1인 시위자들을 차로 연행한 202기동대를 지휘하는 서울경찰청은 청와대 앞 1인시위를 대통령 경호상의 이유로 제지할 수 있다고 한다.

청와대 경비의 또 다른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정광섭 종로서장. 그는 "변형된 1인시위는 집회" 라며 헌법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는 ‘첨단 법리’를 설파한 적이 있는 ‘이론가’다.

그는 "청와대 근접한 곳에서는 가급적 시위를 자제하도록 하겠다. 청와대 앞 1인시위는 기본적인 상식과 양식에 위배된다고 생각한다. 장기적으로는 국민적 합의 절차를 거쳐 1인시위의 적절한 장소를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 장유식 변호사는 "1인시위가 벌어진 장소는 평소 일반 차량의 소통이 허용된 곳일 뿐 아니라 관광객들도 자유로이 드나드는 공개된 장소이다. 이처럼 일반인의 출입이 자유롭게 통용된 곳에서 벌어진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이 대통령 경호에 어떤 위협을 주겠는가"라고 말했다. 즉, 표현의 자유와 같은 자유민주주의의 중핵적 기본권은 ‘이를 허용할 경우 사회질서를 해한다는 현존하고 명백한 위험이 있어야만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입장인데 청와대 앞의 평화로운 1인시위는 이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으므로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집회시간 어겼다고 잡아가두는 나라가 인권국인가?

경호상의 이유라면 수많은 국가들과 적대관계에 있는 미국의 백악관 앞에서 탱크가 상주해야 할 것 아닌가. 그러나 백악관 앞 1인시위는 보장되고 있다. ‘몸에 지닌 선전물이 떨어져서는 안 되며, 제자리에 서거나, 앉아서도 안 된다’는 제한 규정이 있을 뿐, 25인 미만인 경우는 집회 신고조차 아예 하지 않아도 된다.

지난 5월 10일 대한민국의 경찰은 ‘미사일 방어(MD)체제 저지와 평화실현 공동대책위’ 관계자 30여 명이 20m 간격으로 미국대사관을 에워싸자 이를 ‘변형된 1인시위’라 판단해 해산시킨 바 있다. 그러나 정작 미국의 수도 워싱턴의 한복판 백악관 앞에서 ‘미국의 MD정책 철회와 미 학살만행 사죄와 배상’을 주장한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의 1인 시위는 허용된 바 있다. 지난 7월 1일 정선옥 씨(연세대학교 총학생회 소속)는 백악관 정문 앞에서 미국 경찰의 어떠한 제지도 받지 않은 채 1인 시위를 마쳤다.

헌법 제21조 1항에는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명시되어 있고, 2항에는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적혀있어 집회·결사가 마땅한 국민의 권리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뿐인가? 집시법 제1조에는 "(목적) 이 법은 적법한 집회 및 시위를 최대한 보장하고 위법한 시위로부터 국민을 보호함으로써 집회 및 시위의 권리 보장과 공공의 안녕 질서가 적절히 조화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해 1인시위의 적법성을 보장하고 있다.

더구나 1998년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 기념식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인권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인권은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를 각성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주장하고 용기있게 싸워나가는 사람과 사회에게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권신장을 위한 적극적인 동참을 바라마지 않습니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실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법’과 ‘인권신장을 위해 동참을 촉구하는 대통령’을 비웃고 있다. 신고된 시간보다 25분을 넘겼다는 이유로 전교조 교사가 구속되고 신고된 인원보다 30명이 더 참여했다는 이유로 시위대를 가로막는 경찰을 규탄하자 집회 참가자들을 대거 연행하기도 했다. 검찰 내에선 집회 참석자의 숫자를 법조문으로 제한하겠다는 발상까지 서슴없이 튀어나오는 실정이 아닌가.

집회 ·시위는 가난한 이들의 마지막 보루

세계적인 사회학자 하버마스는 "민주주의 없는 법치는 관료주의로 귀결된다"며 "철의 관료주의는 생기차고 역동하는 시민사회의 숨을 가로막아 민주주의를 질식시킨다"고 주장했다. 사실,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기 위해 하버마스의 말까지 인용할 필요가 무엇이 있는가? 인권운동가 서준식은 "집회·시위에 의한 의사표현은 ‘가난한’ 이들의 마지막 보루이다. 빼앗기고 무시당하고 외면받은 사람들의 유일한 타종 수단을 박탈하려 하는가? 우리 사회의 병폐와 처방을 얘기할 수 있는 ‘공공의 광장’을 폐쇄하려 하는가?"라는 말로써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참여연대는 청와대 앞 1인시위가 허용될 때까지 매주 지속하기로 했다(인터넷을 통한 시민참여도 가능하다). 한편 1인 시위를 봉쇄하는 공권력을 상대로 불법행위를 이유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벌이기로 했다.

최한수 참여연대 맑은사회만들기본부 간사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