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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참여사회    since 1995

  • 2001년 11월
  • 2001.11.29
  • 721
소설가 이문열 씨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잘 팔리는’ 작가이자, ‘문제적’ 작가이다. 그가 ‘문제적’이라는 것은, 문학적 성취를 염두에 둔 표현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순수예술’을 누구보다 강하게 부르짖는 그가, 언제나 한국 사회 ‘정치논쟁’의 한가운데 서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가 최근 펴낸 중·단편집 『술단지와 잔을 끌어당기며』(아침나라)도 이런 점에서 ‘문제적’이다. 특히 언론사 세무조사 국면에서 시민단체 및 추미애 의원(민주당) 등과 부딪쳤던 작가 자신의 경험과 그에 대한 생각을 담고 있어 『현대문학』 10월호에 발표할 때부터 논란이 되었던 표제작이 그렇다. 이를테면 “선의왕(선거로 뽑은 왕=대통령)이 세리(稅吏)를 시켜 이 시대의 언관(言官)들을 굴비두름 얽듯 얽어 넣었는데”(159쪽), “선의왕의 충신이 된 한 여류는 저 사람을 구법당 비밀당원으로 잘못 알고 난데없이 곡학아세로 몰아세우더니”(160쪽), “언제든 홍위병이 되어 거리를 내달릴 준비가 되어 있는 그들…”, “저 사람의 책을 반품하자며 때아닌 분서갱유 운동을 벌인 한심한 것들”(162쪽)…, 따위를 읽다보면 대번에 떠오르는 게 있다.

당연하게도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는데, 답변이 걸작이다. “정말로 소설로 썼습니다. 소설에는 갈등구조가 들어 있게 마련이고, 이 작품에서는 주인공이 세상과 불화하게 된 구체적인 계기가 필요했습니다. 가장 좋기로는 새롭게 이야기를 꾸미는 것이겠지만, 귀찮기도 하고 가까운 직접 경험도 있고 해서 지난 여름의 논란을 그냥 가져다 쓴 것입니다”(『한겨레』 10월 11일치 35면). 그러면서 그는 “어디까지나 소설로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그가 “소설쓰고 앉았네”라는 저자거리의 비아냥과 자신의 소설관이 상통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너무 옹졸한 해석일까.

소설(문학으로 바꿔 불러도 무방하다)과 현실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고,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일쑤로 입에 올리는 ‘시대와의 불화’란 도대체 무엇일까.

어수선한 심정으로 20년 만에 다시 나온 최하림 시인의 『김수영 평전』(실천문학사) 증보판을 읽었다. 김수영이 누구인가. 그의 시집 제목처럼 한국 근현대시의 ‘거대한 뿌리’이고 ‘영원한 젊은 시인’이다. 꼭 문학청년을 꿈꾸지 않았더라도 80년대 젊은 시절을 보낸 많은 이들이 『김수영 전집』(민음사, 1982년 펴냄)을 읽었을 터이다. 그리고 ‘풀’과 산문 ‘詩여, 침을 뱉어라’를 기억할 것이다.

'시대와의 불화’를 보여준 김수영
평전을 읽으며 ‘인간 김수영’에 대해선 평가가 참 많이 엇갈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범속하기 그지없는 내가 김수영의 가족이었다면 그를 좋아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그러나 ‘시대와의 불화’가 문학의 본령에 해당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이문열보다는 김수영 같은 이에게 어울리는 말이라는 생각은 했다. ‘시대와의 불화’에도 진정성이 문제가 된다면 말이다.

가령 이런 명제는 어떠한가. “모든 전위문학은 불온하다. 그리고 모든 살아 있는 문화는 본질적으로 불온한 것이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문화의 본질이 꿈을 추구하는 것이고 불가능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실험적인 문학과 정치적 자유’ 중에서)이 명제의 탄생 배경은 이렇다. 김수영은 1968년 『사상계』 1월호에 ‘지식인의 사회참여’라는 글을 발표했다. 연전에 이어령이 『조선일보』에 문화시론으로 발표한 ‘애비가 지배하는 문화’를 공격한 것이다. 최하림에 따르면, “김수영은 이어령의 ‘애비론’이 동백림공작단사건의 직후에 ‘문화시론’으로 발표되었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런 때에 정치권력의 유상무상의 압력을 말하지 않고 ‘애비’라는 막연한 두려움, 그것이 가져오는 허약성과 비겁성을 말한다는 것은 창작의 자유를 외면하는 처사에 다름아니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1968년 2월 28일부터 3월 28일까지 『조선일보』 지상을 통해 5차례에 걸쳐 논전이 있었다. 그런데 뒤끝이 우울하다. 논쟁이 치열해지자, 이어령은 ‘서랍 속에 있는 불온시의 정체가 뭐냐’고 물고 늘어졌고, 조선인민군에 징집됐다가 거제포로수용소에 갇혔던 기억을 떨치지 못한 김수영은 ‘불온성은 모든 문학의 본질에 속한다’며 꼬리를 내렸다. 그로부터 열흘 뒤 ‘사복’들이 김수영을 연행해갔다.

불가능을 꿈꾼 바유인

김수영은 표현의 자유에 민감했던 사람이다. 그가 세상을 뜬 지 33년이 흘렀건만 이와 관련한 그의 발언은 여전히 살아 숨쉰다.

아직도 세상이 그의 시대에서 그리 멀리 나아가지 못한 탓이리라.

“나는 아직도 글을 쓸 때면 무슨 38선 같은 선이 눈앞을 알찐거린다. …우리는 무슨 소리를 해도 반 토막 소리 밖에는 못하고 있다는 강박관념. …이북보다 이쪽이 ‘비교적’ 자유가 있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민주주의사회는 말대답을 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리가 있는 사회다. 그런데 이 지대에서는 아직까지도 이 ‘절대적인’ 권리에 ‘조건’을 붙인다.”(‘히프레스 문학론’ 중에서). “창작의 자유는 백 퍼센트의 언론자유가 없이는 도저히 되지 않는다. 창작에 있어서는 1퍼센트가 결한 자유는 언론자유가 없다는 말과 마찬가지다.”(‘창작자유의 조건’ 중에서). “정치적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개인의 자유도 인정하지 않는다. ‘내용’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형식’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詩여, 침을 뱉어라’ 중에서) 김수영은 ‘절대자유’, 즉 ‘불가능’을 꿈꿨다. 그러나 그는 누구처럼 허공에서 꿈을 꾸거나 불화할 대상을 엉뚱한 곳에서 찾지는 않았다. “우리나라에 지식인이 없지는 않은데 그 존재가 지극히 미약하다. 지식인의 존재가 미약하다는 것은 그들의 발언이 민중의 귀에 닿지 않는다는 말이다.…우리나라의 소위 4대 신문의 사설이란 것이 이런 왜곡된 가짜 여론을 조석으로 제조해내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씌어지고 있다. 이것을 진정한 여론이라고, 민주주의사회의 여론이라고 생각하는 지식인들이 더도 말고 우리나라의 문학하는 사람들 중에서만도 허다하게 있는 것을 알고 있는데 이런 사람들이 내가 말하는 지식인이 아닌 것은 물론이다.”(‘모기와 개미’ 중에서) 그는 (민중의)생활과 분리되는 것은, 곧 ‘시인의 죽음’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가족 부양의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가족의 짐’이었으면서도, 닭 기르기에 열심이었고, “역시 내 머리 속에는 내가 글 쓰는 사람이라는 선입견이 뿌리깊이 들어 있는 모양이다. 아직도 나는 이 정도로 허영이 있고 속물”(‘시작 노우트7’ 중에서)이라고 토로했을 것이다. 이런 말도 했다. “우리들의 실생활이나 문화의 밑바닥의 정밀경으로 보면 민족주의는 문화에는 적용되어서는 아니된다. 언어의 변화는 생활의 변화요, 그 생활은 민중의 생활을 말하는 것이다. 민중의 생활이 바뀌면 자연히 언어가 바뀐다. 전자가 主요, 후자가 從이다.”(‘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 중에서) “시작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詩여, 침을 뱉어라’ 중에서) 때문에 “그는 ‘나’를 넘어선 ‘우리’에로 넘어가지 못”했다는 평가(최하림)가 가능하더라도, 그의 ‘풀’은 오래도록 널리 읽힐 것이다.

“풀이 눕는다/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풀은 눕고/드디어 울었다/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다시 누웠다//풀이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발목까지/발 밑까지 눕는다/바람보다 늦게 누워도/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이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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