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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참여사회    since 1995

  • 2001년 11월
  • 2001.11.29
  • 1329
드라마 과
작년까지 텔레비전 드라마 주요 시간대를 도배하다시피 한 것은 ‘야망의 콩쥐팥쥐형’ 드라마였다. ‘야망의 콩쥐팥쥐형’ 이란 이름은 내가 붙인 것이다. 좀 장난스럽게 들리기는 하지만, 착한 여주인공과 악한 여주인공이 일과 사랑의 성공을 위해 야망을 불태우는, 그런 종류의 드라마를 일컫기에는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몇 년 전 <미스터 큐>, <토마토>로 시작하여 작년 봄 <이브의 모든 것>에 이르기까지 기승을 부리던 ‘야망의 콩쥐팥쥐형’ 드라마의 인기가 올들어 가파르게 꺾이면서 트렌디 드라마의 전반적인 하락세를 몰고왔다. 순정만화 같은 줄거리에 뮤직비디오처럼 화려한 화면으로 안방극장을 사로잡아온 트렌디 드라마로는 얼마 전 방영된 <수호천사>만 간신히 시청률을 ‘수호’한 형편이다. 그리고는 “뭬야?”와 “가납하여 주시옵소서!”를 외치는 사극이 안방을 온통 휘어잡고 있다.

생활 담은 멜로물 재등장

맹위를 떨치는 사극 바람에 트렌디 드라마가 마지막 잎새를 떨구는 지금, 그 틈새를 비집고 노련한 작가들이 근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차분한 작품을 들고 돌아왔다. 김정수 작 MBC 주말연속극 <그 여자네 집>, 박정란 작 SBS 일일연속극 <소문난 여자>가 그것들이다. 드라마 팬들은 익히 알다시피 김정수는 <전원일기>, <엄마의 바다>, 박정란은 <울밑에서 선 봉선화>의 작가로 둘다 김수현, 홍승연 등을 잇는 인기 작가들. 인물과 사건을 다루는 데서 묵직한 중견의 풍모를 풍기는 이들이 인기를 회복하면서, 일상적 리얼리티를 담은 멜로물도 다시 돌아온 느낌이다. 하지만 이들의 드라마가 옛날식 그대로인 것은 아니다. 이 작품들 속의 여주인공은, 확실히 이전의 주인공들과는 다르다.

멜로드라마란 게 늘 똑같은 이야기인 것 같아도, 세상이 변하고 대중이 변하는 만큼 조금씩, 그리고 확실히 변화한다. 우선 <그 여자네 집>의 여주인공 영욱. 지금까지 우리나라 멜로드라마 여주인공 중 이렇게 철저한 직업여성을 찾기는 힘들 것이다. 철저한 직업정신이란 늘 남자들의 몫이고, 직업을 가진 여성 인물들은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은 실력 없는 여사장이거나, 업무보다는 옷 잘 입고 폼 잡는 데에만 관심이 있을 듯한 ‘무늬만 캐리어우먼’인 경우가 태반이었다. 조연으로 나오는 여의사니 여교수니 하는 인물들도 배우들이 제대로 그 역을 소화하지 못해 보는 사람을 민망케 했던 게 한두 번이 아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직업여성들은 다들 왜 그렇게 여유롭고 멋진지, 늘 집안을 폭격 맞은 것처럼 해놓고 밖으로 돌아다니는 현실 속의 직업여성들로서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씨받이냐?”

그런데 <그 여자네 집>의 영욱은 다르다. 영욱은 이름부터 남성적인 데다가(그의 남편 이름은 태주이다. 남녀 주인공 이름의 설정부터 의도적으로 보인다) 겉보기에 화려한 패션 디자이너나 앵커우먼이 아닌, 먼지 풀풀 날리는 공사장에서 정신없이 뛰어다녀야 하는 건설회사 직원이다. 직장에 열심인 만큼 집안은 엉망진창이다. 아침밥은 당연히 못해 먹고, 아들의 끼니를 걱정해서 시어머니가 해다 준 음식도 냉장고에서 썩히고, 밤늦게 고주망태가 되어 들어오는 일도 다반사다. 그런데 주목할 만한 것은, 이런 인물이 결코 ‘집안 망칠 며느리’로만 그려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작가가 이렇게 살림을 엉터리로 하는 여자를 감히 주인공으로 설정할 수 있었다는 것은, 이제 이런 인물이 충분히 대중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고 생각했음을 의미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런 삶은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예외가 없진 않겠지만 직업여성들은 대개 영욱처럼 살거나, 아니면 살림하느라 업무에 전념하지 못해 그만두기 일보직전이다. 이런 직업여성의 적나라한 모습이 드디어 드라마에서 꾸밈없이 그려진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텔레비전 드라마란 늘 현실의 변화를 뒤늦게 따라온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직업여성들이 이런 모양으로 산 건 꽤 오래 전부터인데, 드라마에서는 이제서야 이런 모습이 제대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다수 대중을 겨냥한 방송극이란 늘 보수적인 사회의식의 눈치를 보아야 하며, 시청자들도 브라운관에서는 적나라한 현실보다 조금은 ‘이상화된 현실’을 확인하기를 바라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직장에서도 능력 있고 집안일도 전업주부처럼 깔끔하게 처리하는 ‘수퍼우먼’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고, <그 여자네 집>은 바로 그런 변화의 결과이다.

밥 해주기를 바라는 남편, 아들에게 아침 해먹이기를 바라는 시부모와 사사건건 부딪치던 영욱은, 급기야 임신한 채 고된 직장 일을 하다 유산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민감하고 보수적으로 반응하는 부분이 바로 ‘모성’이다. 모범 직장인이 되려다 좋은 아버지가 되지 못한 남자는 동정을 받아도, 직장인이기를 고집하다가 어머니가 되기를 포기한 여자는 아직도 용서받지 못한다. 그러나 드라마 속 영욱은, 자신의 임신 소식에 시어머니와 남편의 불만이 씻은 듯이 가시더니, 유산을 하고 나자 아기 잃은 일만 안타까워해 며느리를 원망하며 시어머니를 보고 “내가 씨받이냐”고 분노한다. 이 드라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민감한 문제에 감히 맞부딪치고 있는 것이다.

현모양처 이데올로기

<소문난 여자>는 이보다는 훨씬 작은 폭이기는 하지만 역시 변화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아씨>와 <여로>를 거쳐 <울 밑에서 선 봉선화>에 이르는, ‘기구한 여자의 일생’ 을 담은 드라마의 흐름을 이어받고 있다. 드라마가 방영되는 때로부터 30∼40년 전의 시대를 배경으로 (60년대 말 <아씨>와 70년대 초 <여로>의 시대적 배경은 일제시대로부터 한국전쟁 이후였고, 90년대 말 작품인 <국희>, <육남매>, <덕이>, <소문난 여자>의 배경은 50년대부터 70년대 즈음이다) 부모 복, 남편 복도 없이 힘든 세상에서 눈물 흘리면서 질기게 살아가는 여자의 이야기인 것이다.

그러나 꼼꼼히 살펴보자. 이전의 여주인공들은, 대개 너무도 착하고 참을성 많은 현모양처형인데다가 자신은 별다른 ‘결함’을 갖고 있지 않은 인물이었다. 단지 친정이 가난한 죄, 망나니 혹은 바보 같은 남편과 못된 시어머니를 만난 죄뿐이다. 이런 여자들은 시청자들의 동정 속에서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 그에 반해, 어찌어찌하여 정조를 잃거나 이혼을 한 여주인공은 그것 때문에 결국 파멸한다(<국희>나 <덕이>는 이와 또 다른, 사업 수완을 지닌 수퍼우먼형 여자들이다). 그런데 <소문난 여자>는 다르다. 주인공 정림의 어머니는 정림의 생부와 이혼하고 지금의 남편과 재혼하여 못된 시어머니의 시집살이를 견뎌내고, 결국은 행복하게 잘 산다. 청상과부가 된 이모도 가게를 잘 꾸리고 산다. 주인공 정림은, 재혼한 여자의 딸이라는 반대에 부딪쳐 첫사랑 우진과의 결혼이 깨어지고 난 후, 정신적 장애인인 사람에게 속아 결혼한 뒤 도망쳐 나오게 된다. 그 뒤 우진의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알고도 이를 받아들인 또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 그러나 시어머니의 온갖 핍박을 받다가 아이의 혈액형 때문에 결국 남편과 헤어진다. 하지만 우진과의 재결합이 암시되면서 드라마가 끝난다. 말하자면, 이 인물은 <아씨>나 <여로>의 주인공과 달리 정조에 흠결이 있는 ‘팔자 드센 여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교사생활을 하면서 살아간다. 이 작품에 나오는, 이혼녀, 과부 등 팔자 드센 ‘소문난 여자’들은, 이전 드라마에서처럼 그 흠결 때문에 완벽하게 무너지거나 인간성이 파괴되지 않는다. 이건 분명한 변화이다.

모성과 정조. 현모양처 이데올로기를 버텨온 두 축이 안방극장에서도 흔들리기 시작하고 있다.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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