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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참여사회    since 1995

  • 2001년 11월
  • 2001.11.29
  • 592
“아빠, 우리는 왜 자가용이 없어?” 큰딸이 이 질문을 던진 것은 5년 전쯤이다. 자기 또래 친구들 집에 반드시 한 대 이상 있는 승용차, 그 흔한 물건이 우리 집에만 없는 것이 어느 날 갑자기 의아하게 여겨진 모양이다. 그리고 주말마다 가족이 자동차를 타고 교외로 멀리 놀러 나가는 모습도 부러웠을 것이다. 나는 짓궂은 농담을 섞어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아빠는 자가용이 별로 필요 없거든. 지수(딸 이름)가 자가용을 꼭 갖고 싶으면 나 대신 다른 집 아빠로 바꿔줄까?” 나로서는 모험이기도 했다. 만일 그렇게 해달라고 한다면 아빠로서 내 자리는 형편없이 무너져 버리는 셈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딸아이는 아니라고 했다. 자가용이 없어도 좋으니 아빠와 함께 살겠다고. 그 뒤로도 이따금 자가용 타령을 하기는 하지만 그 때문에 불행하다고 느끼지는 않는 듯하다.

내가 자가용을 사지 않는 까닭은 간단하다. 걷는 것을 좋아해서다. 물론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것은 적지않은 고역이다. 출근 시간에 지하철에 타게 되면 그 과밀 공간은 그 자체로 억압적이다. 좌석버스의 경우 보통 버스보다 2배 이상 비싼 요금을 내면서도 자리에 앉아 가지 못하기가 일쑤다. 게다가 아침 시간에는 교통체증으로 배차 간격이 일정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정류장에서 오래 기다려야 하는데, 여름이나 겨울에는 무척 힘들다. 이처럼 대중교통은 몸만 고단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짐짝처럼 취급받는 상황에서 인격의 존엄성은 사라진다.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하고, 타고 나서도 승객이 자리에 앉기 전에 버스가 서둘러 출발하기 때문에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이렇듯 자신의 몸과 이를 둘러싼 공간을 스스로 통제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사람들은 초라한 객체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나는 대중교통 이용이 훨씬 득이 된다고 생각한다. 우선 걷는 것 자체로 많은 운동이 되기 때문에 몸에 좋고, 자가용 유지비용이 절감된다. 그뿐 아니라 시간도 많이 번다. 나는 걸어다니면서 라디오나 테이프를 꼭 듣기 때문에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버스나 지하철에서는 집중이 잘 되기 때문에 책을 많이 읽게 된다(여기에는 나의 타고난 시력이 뒷받침해주고 있다. 나는 아직까지 눈의 피로라는 것을 거의 느껴보지 못했다). 또한 길이 막히면 언제든지 다른 교통수단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다. 자동차를 타는 것에 비해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것은 여러 가지 점에서 유쾌하다. 걷는 사람의 몸과 그 주변 환경 사이의 인터페이스는 날씨나 계절에 따라 다채롭다. 사람의 걸음걸이에는 저마다 독특한 운치와 율동이 내재되어 있다. 영화 속 장면을 보더라도 사람들이 걸어가는 모습은 다양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데 비해 자동차를 타고 가는 것은 매우 단조롭다. 단지 겉보기에만 그런 것이 아니다. 걸어가면서 길 위에서 마주치는 사람이나 주변 사물과의 생생한 상호작용, 함께 걷는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신체·공간적인 변주(가족이 걸어갈 때 아이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장난치는 풍경을 보라!) 등을 자동차에서는 맛볼 수 없다. 나는 이러한 산보의 미학을 포기할 수 없다.

걷는 시간은 내게 풍부한 사색의 기회를 준다. 비록 많이 오염되기는 했지만 하늘로 열린 대기를 호흡하면서 그리고 땅의 기운을 끌어올리면서 생활의 동력을 북돋을 수 있는 수련이다. 또한 캠퍼스를 오르내리면서 많은 학생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는 반가움은 얼마나 큰가. 그렇듯 거리에서 만들어내고 확인하는 존재의 기쁨을 포기하고 싶지 않기에 아직까지 자가용은 나와는 인연이 아닌 것 같다.

김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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