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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참여사회    since 1995

  • 2001년 11월
  • 2001.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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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미국에서 일어난 테러참사는 세계인의 공분과 비탄을 자아냈다. 그러나 이를 응징하기 위한 미국과 영국의 아프가니스탄 군사공격은 많은 논란과 우려를 빚고 있다. 이러한 인명살상과 전쟁은 무엇보다 인간 존중과 세계평화 달성을 사명으로 하는 국제법의 존립기반과 타당성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국제법의 잣대로 이번 사태를 살펴보면, 첫째 군사대응을 가져온 살상행위를 법적으로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가 떠오른다. 대규모 인명피해를 일으킬 목적으로 민간항공기를 납치하고 건물을 폭파시켜 살상과 재산파괴를 저질렀다. 하지만 아직까지 아무도 폭파에 대한 책임을 주장하지 않고 있으며 직접적인 정치적 메시지를 읽을 수 없는 상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테러리즘이란 규정은 사태 인식과 대응방식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테러리즘은 절대악이며 이를 제거하기 위한 모든 수단은 정당하다는 의미를 그 속에 담고 있다. 또한 이러한 전쟁 속에 감추어진 것은 테러진압을 명분으로 한 국가통제와 감시체제의 강화 및 이로 인한 민주주의와 인권의 후퇴다.

미국 군사행동 기준의 이중성

테러리즘을 어떻게 정의할지에 대한 국제적인 합의가 쉽지 않은 상태이지만 테러라는 수단과 방법에 의존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비난받고 있다. 국제법은 무차별공격과 같은 공포심을 일으키는 행위나 항공기 납치와 폭파 등을 하나씩 금지하기에 이르렀다. 테러진압과 예방을 위한 국제조약들은 명확한 증거를 갖고 있는 국가가 테러 혐의를 받는 사람이 속해 있는 국가에 혐의자를 넘겨줄 것을 요구하고 공정한 재판을 거쳐 처벌할 수 있게끔 하였다. 또한 국제사회의 불의, 부조리, 빈곤 등 테러리즘의 원인을 제거하는 구조적인 노력도 충분하진 않지만 계속 기울여 왔다.

이러한 사정에서 미국이 테러공격의 책임자를 색출하여 처벌하려는 것은 일단 범죄의 진압을 위해 행하는 국가의 당연한 권리행사로 볼 수 있다. 미국은 이미 1998년 케냐, 탄자니아 등지에서 발생한 자국에 대한 테러 배후자로 오사마 빈 라덴을 지목하고 그를 넘겨줄 것을 탈레반정권에 요청했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도 그의 인도를 명령하고 각종 제재를 통해 압력을 가하고 있던 형편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미국이 그동안 효율성을 의심받아오긴 하였지만, 어렵게 만들어진 테러에 관한 국제법과 제도에 따라 좀더 끈기 있게 수사협조와 인도요구를 하지 않은 것은 ‘테러와의 전쟁’이 지닌 정당성에 심각한 의문을 던진다. 또 아일랜드혁명군(IRA)의 폭탄테러에 대한 응징이 북아일랜드의 폭격으로 이어지지 않았듯이 빈 라덴이나 그가 이끄는 알 카에다 조직이 영국에서 발각되지 않고 활동했을 경우에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 한 것과 똑같은 행동을 했을 것인가라는 가정적 질문은 미국이 보이는 행동기준의 이중성을 잘 드러내준다. 이는 또 미국의 오만을 지적하면서 문명의 충돌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말해준다. 1988년 영국 로커비 상공에서 일어난 팬암기 폭파사건을 둘러싼 영·미와 리비아의 갈등이 비군사적인 방법으로 10여 년 만에 해결된 사례는 좋은 참고가 된다. 테러리즘이 아무리 엄청난 피해를 가져왔다 할 지라도 이를 푸는 방법은 참을성 없이 벌이는 전쟁이 아니라 평화적이고 이성적인 길이어야 할 것이다.

도를 넘는 무제한적 폭력

둘째, 이러한 폭력을 누가 행사하였고, 누가 책임져야 하느냐의 문제이다. 국제법에 따르면 개인의 행위를 어느 국가의 책임이라고 비난하기 위해서는 행위와 그 국가와의 관련이 필요하다. 구체적 사실확정이 없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대응은 맹목적이며 합리성이 없다. 그뿐 아니라 중세의 마녀재판을 극복하고 증거재판주의와 집단이 아닌 개인책임의 원칙을 확립한 근대법질서의 근간을 송두리째 흔드는 것이 아닐까? 범죄의 전모와 탈레반정권의 관여를 밝혀주는 명확한 증거가 제시되지 않는 한, 미국의 군사행동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주권침해이자 불법적인 무력사용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우며 오히려 테러진압이라는 원래의 목적을 배반할 가능성이 더 커진다.

더욱이 탈레반정권은 국제사회에서 아프간을 대표하는 공식정부로 인정받지 못한 상태다. 탈레반정권은 아프간 내전상황에서 정권다툼을 벌이고 있는 여러 세력중 하나이며, 즉 국가가 아닌 실체일 따름이다. 미국이 이러한 국내 정치세력의 축출을 겨냥하고 있다면 이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불법적인 내정간섭이다. 1986년 국제사법재판소는 미국의 니카라과 콘트라 반군에 대한 지원을 국내문제 불간섭의 의무를 위반한 행위로 판결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셋째, 더 핵심적으로는 테러진압과 예방을 위해 다른 나라에 무력을 행사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다. 유엔헌장과 국제법은 국제관계에서 무력행사를 일반적으로 금지하고 예외적으로 안전보장이사회에 의해 권한을 위임받은 경우와 무력공격에 대한 자위권 행사의 경우에 한해 무력사용을 허용하고 있다. 전쟁 없는 국제사회 건설은 여전히 유토피아적 꿈에 불과할지라도 이러한 규범은 이번 전쟁에서도 타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문제는 사실관계가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건물 폭파행위를 미국에 대한 침략 내지 무력공격으로 보는 데는 법리적으로 무리가 따르며 이에 관한 국제적 합의도 없다는 데에 있다. 게릴라작전 또는 테러리즘이라고 불리는 팔레스타인의 공격에 대한 이스라엘의 군사적 대응을 놓고 국제사회는 불법적인 보복이라고 비난해왔다. 평상시에는 테러와 같은 불법에 대응하기 위해 불법행위와 수단을 사용할 경우, 자산동결 같은 비폭력적인 방법을 제외한 군사력의 사용은 허용되지 않는다. 덧붙여 정당한 무력행사인지가 확실하지 않은 가운데 이를 전제한 상호방위조약을 서둘러 발동하려는 것은 도리어 이 땅의 평화를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설사 자위권이 인정되더라도 무제한적인 폭력까지 용인하는 것은 아니다. 이 경우에도 무력행사는 자기방어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한도에서 원래의 침해에 비례하는 수준에 그쳐야 한다. 이번 테러로 목숨을 잃은 사람에 버금가는 정도의 인명을 빼앗아 복수하려는 것이 이 전쟁의 목적이 아니라면 빈 라덴 체포를 내걸고 현재 진행되는 장기간의 대규모 공중폭격은 이러한 기준에 맞지 않는다.

반테러 명분으로 모든 법망에서 벗어나려는 미국

미국이 자국의 무력행사에 관해 유엔의 승인을 얻으려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군사행동을 취한 것도 문제이다. 안전보장이사회는 모호하게 미국의 자위권을 언급하고 자산동결조치를 취했을 뿐 명확한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미국이 당할 경우 누구도 왈가왈부할 수 없다는 것인지, 안보리는 강자의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또 국제사회를 테러와 반테러 진영으로 나눠, 줄 세우는 듯한 태도는 무력행사를 둘러싼 민주적 논의와 자주적인 국가정책 수립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다른 나라들의 주권을 심각하게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제2차 대전의 승전국인 미국이 주도한 유엔체제와 이에 바탕한 국제법은 이번 전쟁으로 미국의 손에 의해 파괴되었다. 우리는 반테러란 명분만으로 강대국을 모든 법의 족쇄로부터 해방시켜주는 새로운 국제질서의 등장을 바라보고 있는가? 새로운 국제질서를 무엇이라고 부르든지 간에 정의는커녕 예측가능하거나 안정적인 행위기준을 제시할 수 없는 것은 전제적이고 폭압적인 또 다른 무질서이자 혼동일 따름이다. 성급한 권리 주장과 이를 정당화하려는 견강부회는 법을 몰락시키고 만인을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로 몰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조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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