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11월 2001-11-29   794

일본 생활자정치의 광맥 캐기

관객에서 주인으로

‘도쿠시마시(德島市) 주민투표의 모임’ 공동대표 중 하나인 히메노(姬野) 씨. 그는 도쿠시마 시내에서 사법서사 사무실을 운영하는 평범한 주민이었다. 그의 취미는 요시노(吉野)강에서 낚시를 즐기는 것. 낚시꾼이었던 그가 요시노강에 가동식 댐이 건설된다는 소식을 알게 된 것은 1992년이었다. 250년 간 홍수의 원인이 된 적도 없었고, 주민들이 개축을 요구한 적도 없었는데 건설성이 왜 가동식 둑을 건설하려는지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히메노 씨는 요시노강의 홍수대책에 대해 건설성과 대화를 거듭하는 동안 가동식 둑의 건설이 허점투성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후 그는 이 문제에 대해 자신이 속한 낚시동우회 멤버들과 논의하게 됐다. 훗날 일본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주민투표의 모임’의 주요멤버들은 바로 이 낚시동우회 회원이었던 것이다. 낚시동우회 멤버들이 주민투표를 생각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96년에 실시된 마키 마을(卷町)과 오키나와현(沖繩縣)의 주민투표였다.

98년 9월 낚시동우회를 중심으로 ‘주민투표의 모임’이 발족되었고, 정당 및 노조와 같은 조직단위의 가입은 금지하였다. 주민투표운동이 당파적 성격을 띠게 되는 경우, 좀더 많은 주민들의 자연스러운 참가를 이끌어내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이 모임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주민이 요시노강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간주하고 스스로 참가하는 운동체를 만드는 주민자치의 원칙을 관철한 모임이기 때문이다.

주민이 변하면 도시가 바뀐다

이같은 원칙은 운동과정중에 성공적으로 지켜졌다. 약 1만 명이 서명운동에 참여했고, 250여 곳의 가게들이 서명장소를 제공해주었다. 그 결과, 주민투표조례의 직접 청구에 필요한 서명조건, 즉 주민 2%의 서명을 훨씬 뛰어넘는 49%(유권자총수 약 20만8000명 중에서 10만1535명)의 서명을 받아낼 수 있었다. 또한 운동자금으로 1600만 엔이 모금되었으며, 다양한 직업을 가진 개인들의 참여가 있었기에 1억 엔 이상이 소요됐을 법한 활동도 가능했다. 자민당 중심의 ‘주민투표 보이콧운동’이 벌어졌지만, 운동의 열기는 전혀 식지 않았다. 오히려 마을축제와 같은 분위기였다. 젊은이들로 하여금 주민투표에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해 수차례의 콘서트가 열렸고, 거리에는 투표율이 50%를 넘으면 반액 세일을 한다는 글귀를 써 붙인 약국, 꽃집, 라면가게 등이 무려 126곳이 있을 정도였다. 이와 같은 참여열기는 ‘내가 변하면 세상이 변화될 수 있다’는 희망을 만들어 냈다.

2000년 1월 23일 주민투표는 실시되었고, 주민투표 보이콧 운동에도 불구하고 투표율은 55%에 달했으며, 투표결과 가동식 둑의 건설문제는 백지화되었다. ‘주민투표의 모임’ 공동대표였던 히메노 씨의 말이다.

“주민들이 도쿠시마시가 변화될 가능성이 있는가 없는가라는 평론가적 입장을 견지했다면 변화에 대한 희망을 만들어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희들은 변화에 대한 희망을 만들기 전에, 주민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데 더 힘을 들였습니다. 그 이유는 주민들 자신이 변화하지 않는 한, 변화에 대한 희망을 만들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주민투표운동은 필연적으로 정보공개운동으로 연결된다. 왜냐하면, 주민투표운동이 주민들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자치운동이 되기 위해서는 주민들 상호간의 토론과 이해를 신장시키는 정보공개가 우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철저한 정보공개를 요구하는 것은 ‘주민자치’를 실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주민투표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한 필요조건인 셈이다. 히메노 씨의 생각이다.

“가동식 둑의 건설과 관련된 정보공개를 철저히 요구했습니다. 저희들은 강과 함께 자랐습니다. 강은 저희들의 놀이터였습니다. 둑에서 부는 바람을 쐬고 나면 마음이 씻겨지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그 강을 중앙정부가 제멋대로 처리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럴 생각이 있다면, 가동식 둑의 장점과 단점을 포함한 모든 정보를 철저히 공개한 상태에서 주민들이 납득해 가는 과정이 필요한 것 아닙니까. 우리들을 키워준 요시노강의 운명이 우리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결정된다는 것에 대해 참을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시민 모두의 힘으로 강의 운명을 결정하고 싶었습니다.”

주민들의 의사로 결정되는 도쿠시마시정

‘주민투표의 모임’의 목적은, 주민들에게 요시노강의 문제를 자신의 삶의 양식 문제로 사고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데 있었다. 그러한 기회를 통해, 주민들이 자신의 삶과 공동체 및 정치와의 관계에 관해 스스로 성찰하는 시간을 갖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즉, “주민투표를 통한 지역주민 이해의 총화가 도쿠시마시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와 관련해 히메노 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주민 개개인이 주민투표의 필요성에 대해 스스로 자각하는 게 중요합니다. 주민들과 강의 관계문제는 ‘누가 시장이 되고 어느 정당이 세를 더 확장하게 되었는가’라는 문제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죠. 저희들은 주민투표운동을 벌임으로써 자신들의 젖줄과 다름없는 강과 개인의 관계를 통해 스스로 삶의 양식을 되돌아보게 하고 싶었습니다.”

주민투표운동을 통해 가능해진 정보의 공유는 주민들이 지역사회 공공의 이슈를 일상생활과 연관시켜 사고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대한 소규모 학습모임이 수십 차례 열렸고, 크고 작은 토론회와 강연회가 개최되었다. 이와 같은 주민참여의 열기에 따라 지역 매스컴도 연일 찬반논의를 싣게 되었고, 그 결과 주민들은 지역사회의 다른 공공문제에 대해서까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주민들은 자신들이 공공사업의 수익자가 아니라 피해자일 수 있으며, 더 나아가 후세대의 관점에서 본다면 자신들이 가해자일 수도 있다는 공동체적 인식에 도달하게 되었다.

한편 주민투표운동의 한계 중 하나로 지적되는 것이 투표의 결과가 법적 구속력을 갖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는 일면 타당하다. 그러나 이는 주민투표운동의 성과를 ‘주민자치 운동’이라는 역동적인 과정으로 바라보지 못한 평가에 지나지 않는다. 운동의 지향점이 명백하지 못한 사람들은 항상 수동적이다. 이 운동은 이런 한계가 있기 때문에 다른 운동을 모색해야 한다는 소극적인 발상에 사로잡히기 쉽다. 따라서 그러한 운동은 설사 다른 운동방식을 시도하더라도 주민들의 자치능력을 축적시키는 메커니즘을 구축하는 데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다. 그러나 주민자치의 지향점이 명백한 운동은 한계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한계를 극복하려는 주민들의 자치의지가 있기 때문에 주민자치운동이 존재하는 근거가 마련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운동의 중점은 한계를 과제로 설정하고 해결하는 능력의 축적 메커니즘을 작동시키는 데 있다. 자치운동가들이 적극적이면서 초조하지 않는 자세를 보이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바로 그와 같은 적극적인 자세와 여유가 있었기에, 도쿠시마시의 주민투표는 법적 구속력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개혁운동으로서도 소기의 성과를 거두어 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주민투표가 정치인을 변화시킬 수 있다

“법적 구속력이 있었다면 주민들이 이렇게 성장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민투표가 위로부터 주어진 것이었다면, 주민들의 자발적인 의사가 그렇게 발휘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민투표 이후, 주민들의 투표행동 패턴은 변화했습니다. 후보자 선택의 기준이 변화한 것입니다. 주민들이 정치인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습니다. 주민들이 정치인들을 키우는 관계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주민투표의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 20대 초반의 청년이 던진 말이다. 그의 얘기를 되새기며 ‘공육(共育)’이라는 단어를 떠올려본다. 주민들과 정치인들이 상호 성장하는 ‘관계’ 만들기, 바로 이것이 도쿠시마 주민투표운동의 정치적 지향점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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