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11월 2001-11-29   687

시민행동리뷰 국민혈세 천억을 돌려드렸습니다

함께하는시민행동의 ‘밑빠진독’상에서 ‘밑빠진독 막는 두꺼비 프로젝트’까지

현재 정부 재정을 비롯한 공공재정은 400조 원을 넘는다. 이것은 국내 4대 그룹의 매출액을 합한 것보다 훨씬 많은 액수이다. 따라서 이 공공재정을 어떻게 운영하느냐 하는 것은 국가경제의 중요 변수 중 하나다. ‘밑빠진독’상은 예산감시운동을 펴오던 ‘함께하는시민행동(이하 시민행동)’이 정부 예산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를 시민들에게 구체적이고 지속적으로 알릴 수 있는 수단이 절실하게 필요함을 느껴 머리를 짜낸 고심의 산물이다. 예산감시위원회(위원장 윤영진)를 비롯한 상근활동가들이 여러 달에 걸쳐 이름을 짓고 구상을 잡아나갔다. 처음에는 매달 계속할 수 있을지와 상과 관련된 후속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을지가 걱정됐다. 하지만 하나의 ‘브랜드’를 만들자면 정기적으로 해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예산감시운동의 발전을 위해서는 어떤 성과가 있어야 할 때라고 여겨 이 일에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이런 부담 때문에 석달치의 수상 후보를 미리 준비하고 시작했으며 1회 때는 관련 자료가 수천 쪽이나 됐다.

막상 뚜껑을 열고 나니 예상외로 호응이 높았다. 이것은 기획과 준비과정의 철저함도 한 이유이지만 ‘밑빠진독’상이라는 이름이 주는 효과도 컸다. 이미지가 지배하는 시대에는 그 운동의 상징을 정확하게 찾아내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이 다시 한번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또한 여기서 짚어볼 점은 운동하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오류인 “내용이 충실하면 얼마든지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생각이다. 수많은 정보와 이미지가 쏟아지는 시대에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이미지’를 생산해 내는 마지막 손질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처음에는 ‘밑빠진독’상이라는 이름이 가볍다는 의견이 많아 실무자가 불안감을 느낄 정도였다. 그러나 우리와는 문화적 차이가 있지만 미국이나 유럽에도 이와 비슷한 상들이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이름도 ‘꿀꿀이상’, ‘황금양털상’ 등으로 다양하다. 다른 점이라면 이들은 곧 중단됐거나 한번의 ‘조롱거리’로 끝났다는 것이다.

살얼음 위를 걷는 듯한 수상자 선정

‘밑빠진독’상은 공신력을 밑바탕으로 한다. 모든 것을 공인된 서류에 바탕하며 철저한 사실 확인을 거친다. 그러다 보니 예산낭비의 심증은 분명 있는데 근거가 부족해 참고철로 넘길 수밖에 없었던 사례들도 많이 있었다. ‘밑빠진독’상을 뽑는 과정은 자료수집이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사실 예산낭비와 관련한 일반 시민들의 생각에는 구체성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그것은 예산이라는 것이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기는 하지만 구체적 정보에 접근하기가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요즘은 인터넷에서 기본적인 사실확인을 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아졌지만 일반인이 접근하기에는 여전히 애로점이 많다.

수상자 결정의 첫번째 과정은 후보 찾기다. 시민의 제보를 포함하여 언론보도, 정부나 의회의 각종 보고서, 예산감시 네트워크를 포함한 시민단체들의 조사결과를 최대한 수집한다. 현재 이 네트워크의 사이트(www.0098.or.kr)에는 2000여 건에 가까운 언론보도가 올라와 있다. 여기에는 시, 군 단위의 언론까지 포함돼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500명이 넘는 인적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다. 감사원을 제외하고는 예산낭비에 대해 늘상 신경쓰고 있는 곳이 거의 없기 때문에 필요에 의해 자연스럽게 네트워크가 형성된 것이다.

둘째, 선정과정이다. 내용을 분석하고 선정하는 작업은 ‘선정위원회’가 맡고 있다. 회의를 하고 전자우편을 주고받으면서 후보를 압축해나간다. 이에 따라 보고서는 계속 수정되고 바로 전날까지 일이 진행된다. 물론 제보자나 관련자들도 끊임없이 이 과정에 참여한다.

셋째, 상을 주는 과정이다. 자료수집과정에서 후보로 오른 대상기관에 통고를 한다. 또 최대한의 반론문을 요구하고 수상대상으로 결정되었음을 알리는 공문을 보낸다. 시상도 시민과 함께 할 수 있는 방식을 찾고 언론을 최대한 활용한다. 최근 들어 시민단체가 소송을 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 때 제출하는 보고서에도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

‘밑빠진독’상, 천억 원의 예산낭비 막다

이러한 과정에서 큰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은 40여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예산감시 네트워크’이다. 각기 다른 지역과 분야에서 일상적으로 예산감시활동을 수행하는 네트워크 단체들은 ‘밑빠진독’상의 공동시상을 통해 주요 이슈를 해결해 나가고 있으며, 그것은 물론 서로에게 시너지 효과를 가져온다.

‘밑빠진독’상의 진가는 예산낭비 방지 효과에 있다. 제1회 수상자가 된 하남 환경박람회측은 올해 예정된 제2회 환경박람회를 열지 못했다. 지역단체인 하남민주연대가 시민행동과 함께 상을 제정한 후 266명의 하남시민의 이름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납세자소송’을 제기하고 지속적인 활동을 펴 박람회 재개최를 사실상 무산시킨 것이다. 제4회 수상대상인 ‘천년의 문’에 대해서는 70명의 건축가를 포함한 550여 명의 문화계 및 학계 인사들의 반대 서명 등을 통해 지난 4월 대통령이 사업을 중단하게 만들었다. 이 두 가지를 통해 1024억 원의 예산낭비를 막았다. 이외에도 행정자치부의 무궁화사업, 전주 신공항사업 등에 대해서도 낭비 요인을 없애거나 사업자체를 막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이런 결과는 ‘밑빠진독’상이 계속되면서 그만큼 인지도와 영향력이 커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상을 주기 위해 해당기관을 방문하면 대부분의 공무원들이 알아보고 억울하다고 항변한다. 자료수집을 위해 전화를 걸면 즉각 시민행동 사무실까지 찾아와서 해명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한계도 많이 느낀다. 언론, 특히 TV의 보도 여부에 따라 영향력면에서 큰 차가 난다. 관련 공무원들이 자료 제공을 미루거나 아예 하지 않아 상을 주지 못할 때도 있다. 일반시민들이 아직까지 예산낭비를 ‘비리’로만 보는 경향도 안타깝다. 이 때문에 문화나 환경문제같이 ‘가치’의 문제가 개입될 경우에는 ‘낭비’라고 판단하면서도 순수하게 재정적인 측면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어 어쩔 수 없이 수상대상에서 제외시키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앞으로 예산감시운동의 발전과 함께 풀어나가야 할 과제이다.

밑빠진독 막는 두꺼비 프로젝트 추진

가장 큰 한계는 시민 참여의 부족이다. ‘천년의 문’이나 하남국제환경박람회의 경우에는 시민 참여가 돋보였지만 항상 그랬던건 아니었다. 운동의 성과를 ‘사람’이라고 볼 때, 이 부분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그리하여 시민행동에서는 ‘시민프로젝트’라는 새로운 운동을 구상하고 있다. 시민들이 참여하여 ‘밑빠진독’을 선정하고 예산낭비 방지 활동을 펴나가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취지에 맞게 이름도 민담 콩쥐팥쥐전에 나오는 ‘밑빠진독’을 막는 두꺼비에서 따와서 ‘밑빠진독 막는 두꺼비 프로젝트’로 하였다. ‘천 명의 두꺼비가 천억 원의 예산낭비를 막는다’는 우리의 목표가 현실로 나타날 때 시민운동의 또 하나의 전형이 만들어질 것이다.

정창수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