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10월 2001-10-01   693

골방정신 버리자

통일운동진영에 던지는 한 통일운동가의 고언

자동차에 브레이크가 있는 것은 더 빨리 달리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평양에서 열린 통일대축전에 참가한 대표단 가운데 일부는 브레이크를 달거나 밟는 것을 자존심 상하는 일로 받아들여 “우리가 언제 언론 눈치 보고 운동했느냐, 군사정권 시절에도 투쟁했는데 뭐가 문제냐, 몇 사람이 감옥가면 된다, 임동원 장관 해임되는 것이 우리하고 무슨 상관 있느냐, 서울에 가서 정면돌파하면 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한민국은 정치·사상의 자유가 완전하게 보장된 고속도로가 아니다. 아직도 ‘다름’과 ‘틀림’도 구분 못하는 돌멩이가 나뒹구는 길이다. 더구나 그 길 끝에 누군가가 함정을 파놓고 사냥감을 기다리고 있는데 브레이크도 없는 상태에서 고속 질주한다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그 결과가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날만 시퍼렇게 갈아 ‘돌격, 앞으로!’만 계속한다면, 차는 목적지에 도달하기도 전에 추락할 것이다. 너무 날카롭게 벼리고 간 칼은 금방 무디어지고 이빨이 빠지게 된다.

남측 대표단 자격에 걸맞는 행동을 해야 한다

사실 평양에서 광란극은 없었다. 광란극의 무대는 서울의 언론과 정치권이었지만 가장 큰 피해자는 통일운동단체였고, 애꿎게도 범민련 관계자들만 구속되었다. 6?5 공동선언 이후 합법화를 위해 애써온 범민련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어버렸고, 범민련과 한총련의 합법화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평양행사 참가자들이 “언론이 침소봉대했다”고 백방으로 호소해도 이미 언론이 며칠동안 광란극으로 대서특필한 상황에서는 버스 지나간 뒤에 손 흔드는 격이 되어버렸다. 절대 다수의 국민들은 통일운동에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중국의 가장 오래된 병서인 『육도삼략(六韜三略)』에는 “뭇 사람들과 더불어 좋아하는 것을 함께 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고, 뭇 사람들과 더불어 나쁜 일을 함께 하면 위태롭지 않은 것이 없다”는 말이 있다. 뭇 사람들이 통일운동에 따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을 못 느끼는 것,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태도는 큰 문제이다.

옛날에 어떤 사회주의 혁명가는 “광범위한 대중이 전위에 대한 직접적 지원 혹은 적어도 동정적 중립의 입장과 적을 지원을 하지 않는 입장, 이 양자의 입장 가운데 어느 하나를 취하기 전에 전위만을 결정적 전투에 몰아넣는 것은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범죄적인 일일 것이다”고 말했다. 많은 국민들이 통일운동을 지지하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통일운동이 주체가 되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답방을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국민들이 통일운동에 대해 불안하게 느끼고 있는 상황을 외면하면서 김 위원장의 답방을 언급하는 것은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범죄적일 수 있다.

진실이 왜곡되었다고 항변하기 이전에 생각해볼 게 있다. 평양 통일대축전에 참가한 일부가 사려 깊지 못한 행동으로 언론에게 빌미를 준다면 그 언론의 커다란 영향력 아래 놓여 있는 국민들에게 미칠 영향이 무엇일까를 생각해봤어야 한다. 적어도 평양에 간 사람들이 대표단의 자격이라면 그에 걸맞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노릇이다. 더구나 거대언론에 비해 자신들의 정당한 입장을 충분히 알릴 만한 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자신들의 행동거지에 대해서 신중한 태도를 취해야 마땅한 것이다.

통일운동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야

대표단의 일부가 평양에서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을 한 것은 통일운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합법적인 공간에서 6.15 공동선언 실천의 한 주체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박차버린 것이다. 통일운동 단체들은 2000년 10월에 조선노동당 창건 55돌 기념행사에 참관한 이후, 올해 6.15 공동선언 발표 1주년기념 민족통일대토론회를 금강산에서 성공적으로 치르면서 꾸준히 활동공간을 확대해왔다. 각계각층에서 광범위한 세력들과 연대하고 연합하려는 노력의 성과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이적단체로 불법시되었던 범민련과 한총련도 비록 다른 단체의 모자를 썼지만 금강산에서 북녘 동포들과 함께 통일을 노래했다. 몇 년 전에는 상상도할 수 없던 변화들이 나타난 것이다.

6.15 공동선언 이후의 통일운동 상황은 그 이전과는 크게 달라졌다. 과거에는 통일을 가로막고 있는 장벽을 돌파하기 위한 투쟁이었다면 이제는 6.15 공동선언의 실질적인 실천을 통해서 통일의 여건을 만드는 운동으로 변화하고 있다. ‘비판’과 ‘반대’에서 ‘6.15 공동선언 실천’이라는 뚜렷한 ‘지향’을 중심으로 통일운동이 진행되었다. 상황을 돌파하려는 굳센 각오로 뭉친 사람들이 중심이 된 운동에서 각계각층의 다양한 세력들과 함께 손을 잡는 운동으로 발전해나갔다. 평양 통일대축전은 이런 통일운동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고, 이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면 통일운동이 대중적으로 널리 확산되는 구체적인 결실을 맺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평양 민족통일대축전에서 나타난 일부의 부적절한 행동은 그 동안 쌓아온 공든 탑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려 버렸다. 말로는 6.15 공동선언의 실천을 외치지만 의식과 행동은 그 이전과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광장에서 대중과 손잡고 6.15 공동선언을 실천하기 위해 대중의 눈높이에서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골방에 갇혀서 주관적으로 정세를 바라보고 자기 만족적인 운동을 하는 것에만 익숙한 ‘골방정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평양에 가서도 통일 의지만 있었지 절제력은 없었기 때문에 고양된 자기 감정에만 충실하게 행동한 것이다. 신새벽 뒷골목에서 남몰래 ‘민주주의’를 쓴 것은 ‘타는 목마름’을 표현하는 유일한 수단이 그 당시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이지, 골방정신 때문은 아니다. 민간통일운동은 정세변화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이를 주도할 수 있는 능력을 과시해야 한다. 민간통일운동이 정세에 맞지 않게 자꾸만 돌출적인 행동을 하여 주목을 받는 것은 전문성 부족에서만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과도한 급진주의와 낙후한 정세인식에서 비롯되는 바가 크다.

물론 운동은 현실의 조건 속에서 끊임없이 전진하기 위한 노력이지만, 이제 다시 대규모로 평양을 방문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은 분명하다. 이번 평양 통일대축전에서도 작년의 노동당 창건행사나 6?5 공동선언 1주년 기념행사에서처럼 절제된 행동을 했다면 그 결과는 지금과는 크게 달랐을 것이다.

실무 차원의 충분한 자성이 필요한 시점

평양 축전은 언론의 부풀리기식 보도에 의해서 잘못 알려졌다. 민간차원에서 각계각층이 대규모로 평양을 방문한 것 자체가 한국전쟁 이후 처음이다. 민간이 남과 북 사이에 드리운 마음의 장벽을 허물고 통일의 한 주체로 실질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독일, 베트남, 예멘 등 통일을 이룬 나라들이 통일 이후 아직까지 마음의 장벽을 허물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비춰 본다면 민간차원에서 각계각층의 다양한 교류를 약속한 것은 우리가 이들 나라들과 다른 방식의 통일을 준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남북대화가 중단된 상황에서 8.15 통일대축전은 남북대화와 협력을 지속시키는 매개가 되어, 제5차 장관급회담을 여는 데 기여하였다.

하지만 이런 의미가 역사적으로 올바로 평가되기 위해서는 당연하게도 올바른 역사를 만들어 나가야 가능하다. 실무적인 차원에서 통일운동을 엄격히 평가하고, 그간의 활동에 대한 충분한 반성이 있어야만 통일대축전의 역사적인 의미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승리적 관점’이나 ‘성과 중심적인 평가’로는 통일운동의 실무적인 오류를 정확하게 극복하지 못한다. ‘아홉 길의 산을 쌓는 데 한 삼태기의 흙이 없으면 이지러진다’는 말처럼 빈틈없이 돌아봐야 통일대축전의 역사적 의미를 바로 살릴 수 있다. 마지막으로 범민련은 이번 통일대축전 파문의 최대 희생자임을 밝힌다.

김창수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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