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10월 2001-10-01   505

재벌이 본 시민운동-기업 살리는 시민운동을 하라?

삼성전자 임직원 2인이 말하는 한국의 시민운동

국내 기업들은 시민운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공권력이 본 시민운동’에 이어 본지는 ‘재벌이 본 시민운동’을 연재한다. 첫번째로 소액주주운동으로 참여연대와 긴장관계인 삼성전자는 한국 시민운동과 참여연대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지 직접 찾아가 들어보았다. 앞으로 본지는 삼성을 비롯 다른 재벌기업 관계자들을 만나 시민운동에 대한 소회와 기업의 사회참여 문제에 대해 들어볼 예정이다. 편집자 주

“삼성전자입니다. 주민등록번호를 말씀해 주세요.”

삼성전자의 한 간부와 인터뷰하기로 한 날, 삼성측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방문예약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주민등록번호를 알려달라는 것. 사기업의 보안을 위해 개인의 정보를 아무 거리낌없이 요구하는 모습이라…. 역시 삼성은 달랐다. 무엇보다 인터뷰를 하기 위해 관계자들에 접근하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모두들 엔지니어 담당이라 NGO에 대해선 아는 것이 없다는 게 삼성전자 홍보팀의 변명(?)이었다. 인터뷰에 응하기 사전에 그들은 ‘회사의 조직적 결정’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 인터뷰는 삼성전자에 속한 개별 직원들이 말하는 시민운동이 아니라 삼성이 바라보는 시민운동이랄 수 있다.

한국 재계 1위, 세계 브랜드 42위, 한국 전체 매출의 23%를 차지한다는 삼성그룹.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한국 시민운동은 어떤 모습일까? 직접 들어보자.

삼성본관 24층 자금팀에서 만난 박상호 상무. 그는 “‘국민이 잘 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업과 마찬가지로 NGO도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며 말머리를 열었다. 무엇보다 “우리사회의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하는 NGO는 우리사회의 건전한 비판자로서 그 나름대로 국가에 공헌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21세기에는 점차 국가의 역할이 축소되므로 그 부분을 기업과 NGO가 맡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따라서 기업과 NGO는 ‘상호 동반자적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고 하였다.

큰 틀에서 바라보는 것말고 좀더 각론으로 들어가 NGO활동에 대해 묻자, 박 상무는 “기업의 경쟁력과 가치를 떨어뜨리는 비방행위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오히려 기업활동을 위축시키는 불필요한 규제들을 NGO가 나서서 철폐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하기도 한다. 기업의 주장을 대변하는 BONGO(Business -Organized Non Governmental Organization)가 되라? 선뜻 동의할 수 없는 대목이다. 덧붙여 그는 NGO에 대해 평소 생각했던 비판을 제기했다.

“다수 시민의 참여 없이 학자, 종교지도자 등 일부 편향된 소수 전문가들에 의해 의사가 결정된다는 점, 각종 소송과 관련, 사법기관의 판결이 나오기도 전에 언론플레이를 먼저 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들의 주장만 내세우는 점도 문제 아닙니까?”라고 다그쳤다.

부실기업 대상으로 시민운동 하라?

최근 일부 NGO가 기업을 상대로 벌이는 경제관련운동에서 ‘외국인들을 이용’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 아니냐는 주장도 나왔다. 시민단체들은 외국투자가들이 단기투자에만 급급하며 그들에 의해 국부가 유출되는 것까지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라는 단서도 달았다.

자꾸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운동을 의식한 발언을 앞다퉈 쏟아놓고 있는 형국이라, 기자는 에둘러 다른 질문을 던져 보았다. 생태, 여성, 환경, 인권, 주민자치 등 다양한 NGO 활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그러나 그는 동일한 이야기를 반복할 뿐 다른 분야는 잘 모르는 듯했다. 다만 삼성은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다면서 오폐수 정화 등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환경단체의 강연회나 각종 행사에 적극적으로 협찬하고 있단다.

이윽고 기자가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운동으로 말꼬리를 돌리자 박 상무는 바빠지기 시작했다. 삼성그룹과 참여연대 간에 걸린 소송이 무려 11건이나 되는데 이에 대한 실무를 맡아 작년 한 해만도 열아홉 번이나 검찰 조사 및 법원 증인출석으로 불려 나갔다고 말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마치 주문을 외우던 것처럼 그는 참여연대 비판을 늘어놓았다.

우선, 소액주주운동. 기업으로 하여금 소액주주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를 제공한 것은 인정하지만 현재 활동은 오히려 회사와 주주 다수에게 막대한 손실을 야기한단다. 따라서 그는 이익을 남기는 삼성말고 주주들에게 손해를 입히는 부실기업에 더 많이 관여하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는 무엇보다 참여연대가 수년 간 사외이사제도 도입, 감사위원회 설치 등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해 회사 발전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삼성은 소비자에게 값싸고 질 좋은 제품을 공급하고 고용, 수출, 납세 모두를 가장 성실하게 이뤄내는 사랑받는 기업”이라고 목청을 높이는 대목에 이르러, 기자는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보의 재산증여와 관련된 탈세 문제를 꺼냈다. 그러자 그는 “재산증여 문제는 법이 판단할 문제라서 언급할 입장이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이재용 상무보에 대해 그는 “생각도 깊고 스마트한 분”으로 “경영인으로서 충분한 자질이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도를 넘는 발언은 삼가는 모습에서 삼성맨의 현실을 목도할 수 있지 않을까.

“재벌의 기준이 뭡니까? 우리 기업들은 해외기업과 비교해 보면 거의 어린애 수준이에요.”

NGO 활동을 이해하고 싶어 작년 경희대 NGO대학원에 다녔다는 삼성전자 홍보팀 유승규 과장. 그는 삼성을 재벌이라 부르는 것 자체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경제민주화 운동은 정당이 할 일”

그는 NGO에 대한 견해를 밝히길 매우 부담스러워했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 내 사원과 간부 10여 명을 만나 일일이 NGO활동에 대한 의견들을 취합해 인터뷰에 나섰다는 그는 먼저 기업과 NGO 간의 대화를 강조했다. “서로 자신만 옳고 상대방의 얘기를 듣지 않으면 더 큰 사회적 갈등만 생긴다”며 “NGO가 공익활동하는 것에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지만 기업 입장도 충분히 들은 후 행동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그가 보기에, 시민운동이란 본디 환경, 교통질서 등 생활 주변의 일을 해야 하는 것인데 참여연대는 정치개혁, 경제민주화 등 정당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어 아쉽단다. 정당이 제 역할을 한다면 무슨 걱정인가.

그에게 넌지시 삼성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물었다. 그는 “작년 한 해 동안 삼성은 총 1658억 원을 사회복지, 자원봉사, 환경보전 등에 썼다”며 “그 액수는 지난해 회사 순이익의 약 2%를 사회로 환원한 셈”이라고 말했다. 그가 보여준 『삼성 사회공헌활동백서 2000』에는 이웃돕기성금 100억 원 기탁 등 삼성의 사회 활동이 상세히 소개돼 있었다.

유 과장은 마지막으로 “시민운동은 우리 사회의 소중한 하나의 섹터이며 그 역할과 필요성을 과소평가하고 싶지 않다”며 앞으로 “대안 없는 문제제기”보다 “전문성을 갖춘 공정한 활동을 했으면 좋겠다”고 기대를 나타냈다.

수 차례 삼성측 사람들을 만나면서 얻은 정보들은 대체로 ‘삼성이 그동안 시민단체에 대고 쏟아 붓고 싶은 이야기’들이었다. 무엇보다 NGO 전반에 대한 이해가 높다기보다 방어적 차원에서 기업PR을 하려는 것은 아닌가 생각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소중한 만남을 통해 그들은 NGO에 대해 좀더 깊이 이해하고, NGO는 기업측이 시민운동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해들음으로써 서로 조금씩 소통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들이 “시민단체의 권력감시운동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 기업에게는 동등한 감시잣대를 들이대지 말라”는 예외규정 요구에는 좀체 수긍하기 어려웠다. 진정 그들이 NGO와 동반자적 관계를 갖고 싶다면 NGO에 대해 좀더 깊은 이해와 성숙한 파트너십을 가지고 있어야 가능한 게 아닌지….

최경석(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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