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10월 2001-10-01   663

김종필 줄타기, 그 끝은?

김종필 줄타기, 그 끝은?

8.15 방북단 파동으로 야기되었던 임동원 통일부장관의 해임 문제를 둘러싸고 DJP공조체제는 일단 파기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뿐 아니라 이로 인해 내각 및 여당의 개편이 불가피했는데, 민주당 대표 인선을 둘러싸고 당 내부 갈등이 불거져 나왔다. DJP공조 파기로 인한 일련의 사건들을 계기로 우리 정치 흐름의 ‘물살’은 갑작스럽게 빨라지고 있다. 최근 이 같은 상황의 전개는 특히 2002년 대통령선거를 앞둔 현재의 정치적 상황에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와 관련, 다음과 같은 문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하나는 이제는 분명하게 소수정권이 된 김대중정부가 레임덕이 예상되는 향후 정국에서 그 레임덕을 방지하는 국정 운영, 특히 당 운영을 어떻게 도모해나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다음으로 내년 말로 다가온 대선을 앞두고 각 정당 또는 정치세력이 경쟁·대립하는 정치지형이 어떤 식으로 재편되고 구축되어 나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DJP공조의 ‘조기’ 파기

그러나 이 같은 문제들을 살펴보기에 앞서, 우리는 DJP공조 파기의 과정을 재검토하고 이를 좀더 면밀히 독해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DJP공조 파기가 구조적으로는 필연적이었지만, 우연적 요소로 인해 그 시기가 예상보다 빨리 앞당겨졌고, 이로 인해 내년 대선을 겨냥한 전초전, 특히 민주당 내의 전초전이 예상보다 빨리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DJP공조 파기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필연적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것은 ‘JP의 자민련’이 소수의 지분으로 집권여당과 제1야당 사이를 넘나들며 캐스팅보트를 행사하는 것이 유일한 생존책이자 대선 전략이라는 점에서,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재집권이 분명치 않은 김대중정부와 운명을 끝까지 같이할 이유는 없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JP와 DJ의 결별은 시간 문제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렇다면 JP는 그 적절한 타이밍을 제대로 포착한 것일까?

이와 관련해, 이번 DJP공조 파기의 타이밍은 우연적 요소에 의해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임동원 장관 해임 문제가 8·15 방북단의 예상치 못했던 파동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야기되었고, 따라서 DJP공조 파기 역시 갑작스럽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실상 그 내막을 자세히 살펴보면 JP는 이번 상황에서 공조 파기가 아니라 자신의 ‘주가’를 한껏 올리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JP의 이 같은 ‘과도한’ 행동은 햇볕정책에 대한 강한 자부심과 집념을 가진 DJ의 반발과 그로 인한 결별 선택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비유컨대, 협의이혼을 앞둔 부인이 자기 몫을 챙기려다 그 욕심이 지나쳐 남편에게 이혼당한 셈이라고나 할까. 결국 결별은 예상된 것이었지만, 우연적인 요소로 인해 예상보다 일찍 일어났다는 점에서 그것은 DJP공조의 ‘조기’ 파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DJ의 레임덕 방지와 민주당의 내분

적어도 금년 말까지는 지속될 것으로 보였던 DJP공조가 이처럼 의외로 조기 파기됨에 따라, DJ는 국정운영의 새로운 진용을 짜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에 이루어진 당·정·청와대의 새로운 진용 구축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주로 레임덕 방지를 위한 DJ의 이러한 조치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민주당 내에서, 특히 대선주자들에게는 매우 민감하고도 이해가 충돌할 수 있는 문제였다.

우선 임기 말 레임덕 방지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는 DJ의 국정운영 기조와 이를 위한 동교동 중심의 친정체제 구축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이미 당 내외에서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한 대선 예비주자들, 특히 지금쯤 대선 경쟁의 당내 교두보 확보의 필요성이 절박한 대선 주자들의 이해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한광옥 대표체제에 강력히 반대했던 김근태 최고의원의 반발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즉 아래로부터의 대선주자가 등장할 통로가 억압되고 막혀 있는 현재의 당내 민주주의 현실에서, 그는 특정 계파 중심의 대통령 친정체제가 가지고 있는 위로부터의 억압성과 비민주성에 대해 강력히 반발했던 것이다.

다음으로 DJ의 이 같은 레임덕 방지의 기조 속에서 이루어졌던 당 대표의 선정 문제는 민주당 내 각 대선주자들의 이해와 부딪치고 있는 만큼, 그 갈등의 파장이 드러나지 않을 수 없었다. 당 대표의 신분을 유지한 채 구로을 지역구 보선 출마를 원했으나 거부된 김중권 전 대표의 당무거부 사태와, 대선주자의 한 사람인 한화갑 최고위원의 대선출마 포기 조건의 당 대표 기용 문제를 둘러싼 당내 파동이 그 사례들이다. 즉, 특정 대선주자의 당 대표 유임 또는 선정은 그로 인한 경쟁의 증대와 대선주자간의 힘의 불균형 상태로 초래되는 조기 레임덕 현상에 대한 우려 때문에 거부되었던 것이다. DJ의 친정체제 속에서 비대선주자 당 대표 기용은 바로 그러한 우려의 산물이었다.

한편, DJP공조 파기는 기존의 정치지형을 바꾸어 놓았다. DJP공조의 과거 정치지형이 그대로 유지되었다면, 그것은 DJP공조 대 한나라당이라는 2각체제의 대립구도가 그 기본적인 틀이 된다. 그러나 DJP공조 파기가 이루어진 지금, 그 정치지형은 일단 민주당 대 자민련 대 한나라당이라는 3각구도로 바뀌지 않을 수 없었다. 3각구도의 이 같은 정치지형은 DJP공조가 다시 도모되지 않는 한, 또는 한나라당과 자민련 사이의 강력한 야당 공조체제가 새롭게 구축되지 않는 한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3각구도의 대선 전초 구도

그러나 이 같은 3각구도의 정치지형은 단기적으로 여야 영수회담 등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협조 속에서 자민련의 배제로 이어질 수도있고, 한나라당과 자민련이 보조를 맞춰 민주당을 압박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향후 대통령 선거와 관련한 보다 중장기적인 견지에서 본다면 이 같은 3각구도 속에서 그 생존과 세력 확장이 가장 어려운 당은 자민련이라 예상된다. 내세울만한 대선주자도 없이, 가장 작은 규모와 가장 낡은 정치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그들로서는 민주당 또는 한나라당 그 어느 쪽과 연대하지 않는 한, 그 지위와 역할은 약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자민련은 YS 또는 한나라당 박근혜 부총재에게 접근을 모색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공할 가능성이 있는 것도 아니며, 성공했다 할지라도 JP에게 무엇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점에서 ‘JP의 자민련’이 DJP공조를 파기한 것은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그들의 생존보다는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최근 전개되었던 정치권의 상황 전개는 정치권 내부 또는 당내의 정치역학 게임에 의한 것으로서, 아래로부터의 국민적·시민적 요구와는 상관없는 것이다. 오히려 일반 시민들은 어지럽게 배제된 채, 대선 전초전의 정쟁무대에서 호기심 어린 관객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과연 이것이 주권재민에 근거한 민주주의의 모습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면, 이미 그 전초전이 시작될 내년 대선이라는 정치무대의 개막에 즈음하여 우리 시민들이 수행해야 할 역할은 무엇인가? 보스 중심의 정치권만의 무대를 시민의 감시와 요구 및 지지에 의해 이합집산하는 시민적 참여의 무대로 바꾸는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정해구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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