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09월 2001-09-01   852

기득권의 추악한 음모, 시민단체 죽이기

기득권의 추악한 음모, 시민단체 죽이기

최근 우리 사회 일각에서 시민운동진영을 ‘정권의 홍위병’, ‘초법적 권력집단’ 등으로 공격하는 이들이 있다. 물론 시민운동도 감시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일부 지식인들이 수구언론을 통해 시민운동을 공격하는 내용을 뜯어보면 애정어린 비판이라기보다는 반개혁 세력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한 억지주장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총선연대 활동 때 처음 제기되어 시민운동을 공격할 때마다 심심찮게 등장하는 `‘홍위병론’을 보자. `‘홍위병론’의 요지는 “①권력화 또는 관변화된 시민단체가 특정 정치세력의 사주를 받아 ②초법적 활동을 일삼으면서 ③비판적 지식인에게 재갈을 물리고 특정언론과 정치세력을 반개혁 세력으로 몰아붙이는 통에 ④자유주의적 시장질서와 법치주의가 왜곡 실종되고 있다”는 것. 시민운동의 일선에서 밤낮 없이 뛰고 있는 활동가들로서는 말할 수없이 억울한 비난이다. 이제 시민운동 진영에서도 시민운동의 정체성과 정당성에 대한 명확한 응답 또는 이런 류의 비난에 대한 응전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국민 대다수가 지지하고 참여한 낙선운동

시민단체 홍위병론이 처음 제기된 것은 총선연대 활동이 한창이던 2000년 1월경. 시민단체의 공천반대운동에 대해 자민련이 홍위병론을 제기했고, 한나라당 역시 음모론, 유착설 등을 흘리면서 이를 확산시켰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민주당은 낙선운동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는 집권 이후 약속한 개혁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것은 물론, 옷로비 사건 등으로 도덕적 명분조차 상실한 집권 민주당이 총선전략 차원에서 낙선운동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등에 업고자 한 것이었다. 그러나 낙선운동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 한 것이 어디 민주당뿐이었겠는가?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 진영은 총선연대의 공천반대자 명단을 당내 친위세력 강화와 다른 계보 숙청에 활용했다. 한나라당 내 비이회창 계보의 입장에서 보면 총선연대 활동은 이회창 진영의 홍위병이었던 셈이다. 또 실제 선거결과를 보더라도 낙선운동은 결코 집권여당에게 유리하지 않았다. 사실, 정세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유권자들의 행동을 각 정당들이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해 정략적으로 이용하려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낙선대상 정치인을 대규모로 낙선시킨 유권자운동의 역사적 의미가 훼손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 대다수가 지지하고 참여한 낙선운동을 특정 정치세력의 사주로 폄훼하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지극히 정략적인 비난에 지나지 않는다.

총선연대 이후에도 홍위병론의 또 다른 변종은 계속 나타나고 있다. 류석춘 연세대 교수는 최근 『조선일보』에 기고한 한 시론에서 아예 ‘시민단체 관변화론’을 들고 나왔다. 그는 “민주화 이후 정·관계의 요직으로 진출한 운동권 인사의 비중은 아마도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정·관계의 요직으로 진출한 육군사관학교 출신의 비중과 비교하여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다.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이후 발생한 각종 권력형 비리에 시민운동이 과거와 같이 끈질긴 비판과 저항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이유도 이런 사실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민주화운동 출신들이 과거 육사 출신만큼 특권화했다는 그의 주장에 과연 누가 동의할 것인가? 류 교수와 같은 인식을 가진 이들은 김영삼·김대중 정부를 쿠데타정부 혹은 혁명정부쯤으로 생각하는 게 아닌지. 오히려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일부 주요직책에 등용되었던 민주적 인사가 극우적 색깔시비로 인해 제 역할을 못하고 좌초했던 사례들이다. 또한 유 교수가 알고 있는 시민운동의 과거가 어떤 것인지는 몰라도 ‘국민의 정부’에서 일어난 옷로비 사건만큼 시민사회단체들이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던 권력형 비리가 있는지 묻고 싶다. 류 교수의 주장은 사회학자의 분석으로는 구체성이 부족하며, 정략적 선동을 일삼는 낡은 정치인에게나 어울리는 어법이다.

진보적 인사들에 대한 집요한 색깔공세

홍위병론을 입에 올리는 논객들은 시민단체가 초법적인 존재로 탈법을 일삼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이 거론하는 유일한 사례는 총선연대의 선거법 불복종운동이다. 그러나 이 운동은 시민사회단체가 선거법 독소조항의 개정을 수년 간 요구해왔음에도 정치인들이 정략적 이해에 얽매여 개정을 미뤄온 데 대한 일종의 참정권 회복운동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홍위병론의 논객들은 이 운동이 국민 대다수의 동의 아래 이루어졌다는 점도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어 균형감각을 잃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이들은 또 이를 결행한 시민단체들이 그들의 손쉬운 표현대로 ‘초법적 태도’를 취하기보다는 불복종에 따른 법의 심판을 감당하겠다고 밝혔고, 재판 출석 등을 회피하는 정치인들이나 일부 언론인들과는 달리 법정 논쟁에 충실히 임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애써 외면하고 있다.

또한 류 교수류의 논객들은 시민운동이 “작가 이문열과 같은 비판적 지식인에게 재갈을 물리고 특정언론과 정치세력을 반개혁 세력으로 몰아붙인다”고 개탄한다. 시민운동가들도 여러 활동과정에서 다양한 개인들로부터 비난성 전화와 이메일을 무수히 받아본 경험이 있어 그러한 무차별적 비난을 받았을 때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두고 문화혁명이니 홍위병 운운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네티즌들의 반응은 정보화사회의 초입단계에서 겪는 홍역으로서 `열린 사회로 가는 과도기적 부작용이지, 정보조작과 차단을 전제로 하는 나치의 선동론이나 홍위병의 획일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현상인 것이다.

더 심각한 자가당착은 이 글을 실은 『조선일보』 자신이 그 동안 저질렀던 무수한 매카시즘적 전횡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있고, 이문열, 류석춘 등 ‘홍위병론’의 논객들도 이런 사실에 대해 철저히 침묵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 유명한 박홍 총장의 주사파 소동과 근거 없는 김정일 장학생 파동을 대서특필했던 일, 김정남, 한완상, 최장집 등 역대 정권에 기용된 민주·진보적 인사들에 대한 편파적인 색깔공세를 벌써 잊은 것일까.

반개혁집단의 시대착오적 반격

한편 그들 중 일부는 시민단체들의 정치개혁, 언론개혁, 재벌개혁, 복지개혁을 위한 활동이 자유주의 시장질서와 법치주의의 근본을 흔드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유주의 시장경제가 사회복지제도의 확충을 통해 유지되어 왔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한국재벌의 비정상적 소유지배구조가 한국 시장경제 질서를 교란하는 핵심요인이라는 것 역시 국제사회에 알려진 통설이다. 따라서 그 논자들의 편협함과 몰상식이 아니라면 고의적 왜곡으로밖에는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이들이 주로 거론하는 언론사 세무조사의 경우, 과거 김영삼 정권시절부터 시민사회단체들이 일관되게 요구해온 것이며, 재벌들의 변칙상속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에 관해 시민단체가 철저한 조사와 그 처리의 투명성을 주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홍위병론자들의 움직임에서 지난 반세기 동안 형성된 ‘시민배제적 국가·기업·언론 권력’을 견제하기에는 아직 턱없이 취약한 시민운동에 대한 악의적 비난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87년 민주화 이후 완만하지만 꾸준히 지속되어 온 개혁작업에 대한 이들의 근원적 적대감이다. 이들은 “유일한 판관으로서의 배타적 지위, 부와 권력의 독점, 오랜 기득권 유착의 틀”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는 시대착오적 의지에 따라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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