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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년 9월
  • 2019.09.01
  • 1232

한일관계 어디로? 시민사회의 역할을 묻다

갈등의 구조적 원인으로서 ‘65년 체제’

 

글. 김건우 참여사회연구소 간사

 

 

월간 참여사회 2019년 9월호 (통권 268호)

지난 7월 31일, 라운드테이블 <한일관계 어디로? : 시민사회의 역할을 묻다>가 열렸다. 이날 행사는 김정인 춘천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가 진행, 패널로는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 박정은 참여연대 사무처장, 임재성 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 이지평 LG경제연구소 상근자문위원이 참석해 한일관계의 원인과 전망을 논했다.

 

1997년 일본제철(구 신일철주금)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오사카 지방재판소에 일본제철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2003년 일본최고재판소는 배상책임이 없다고 판결한다. 피해자들은 다시 2005년 서울중앙지법에 일본제철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고, 2009년 서울고법 항소 역시 기각되었다. 그러나 2012년 대법원이 원심을 파기환송하여 2013년 서울고법에서 배상판결이 선고되었고, 일본제철의 재상고에 대해 2018년 대법원은 배상을 최종확정했다. 이 판결에 따라 현재 일본제철의 재산을 압류·현금화하기 위한 과정이 진행 중이다. 

 

2018년의 대법원 판결은 일본이 반도체 관련 3개 품목 수출규제와 화이트리스트국 배제하는‘경제보복’을 실행한 결정적 계기가 되었고, 이후 일본과 한국은 서로 엇갈린 채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일본이 요청한 제3국중재위원회에 대해 한국정부는 거부의사를 밝혔으며, 반대로 한국정부가 제안한 일본기업과 한국기업이 배상금을 모금하는 이른바‘1+1안’에 대해 일본정부 또한 거부했다. 결국 오는 8월 28일 일본의 한국에 대한 화이트리스트국 제외 시행이 다가오는 가운데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즉 지소미아GSOMIA, General Security of Military Information Agreement 종료 등 물러설 수 없는 갈등국면이 거듭되고 있다. 

 

게다가 시민사회에서는 불매운동을 비롯해 반아베 집회가 열리는 등 규모 있는 대중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작금의 한일갈등이 분출된 요인들을 살펴봤을 때, 현 국면이 일시적이거나 현안적인 성격만은 아니라는 판단에 참여연대는 지난 7월 31일 <한일관계 어디로? : 시민사회의 역할을 묻다> 라운드테이블을 개최했다. 

 

한일갈등의 복잡성의 토대

 

현재 갈등의 원인은 복잡한 가운데 명확하다. 여러 논란거리를 걷어내면 사태는 꽤 뚜렷하지만, 그것이 역사적으로 형성된 구조를 건드리고 있기 때문에 복잡한 상황에 놓여 있는 형국이다. 먼저 사태의 원인에 대해 임재성 변호사는 ‘보수 정치세력으로의 교체를 위해 문재인 정부에 타격을 주려는 의도’, ‘한국 반도체산업에 대한 견제의 의미’, ‘한국경제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함’ 등 현재 갈등을 둘러싼 여러 의견에 대해 확대해석을 경계할 것을 요청했다. 즉 현재 갈등의 요체는 대법원 판결에 있고 이후 진행 중인 일본기업 자산 압류 및 매각 절차에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갈등의 원인이 선명한 가운데 상황이 복잡한 이유에 대해 남기정 교수는 현재의 갈등(위기)이 ‘두 개의 전후’라는 개념으로 중첩된 조건에 놓여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현 사태는 ‘두 개의 전후’의 변동 즉, 일련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추동해 정전협정체제를 종식시키려는 한국과, 여전히 기존 체제를 전제로 동북아시아의 전략적 균형을 유지하려는 일본 사이의 거대한 갈등의 토대가 심연에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두 개의 전후’ 개념이 요청하는‘전쟁극복’과 ‘식민지극복’이라는 중첩된 과제가 이번 대법원 판결로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전면화됐다고 설명한다.

 

월간 참여사회 2019년 9월호 (통권 268호)

 

박정은 사무처장은 현재의 갈등국면을 ‘한반도/동북아 분단체제 균열의 힘과 현상유지의 힘’ 간의 다툼으로 설명했다. 이는 남기정 교수의 의견과 닿아 있는 주장으로, 기존 한일관계가 한일간 과거사를 봉합 수준에 두고, 한미일 관계를 안보동맹으로 지속해온 역사가 문제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결국, 이번 대법원 판결에서 재판부의 판단으로 개방된 식민지배에 따른 과거사 문제를 두고 그간 모호하게 봉합시켰던 기존 협정 중심으로 두 개의 힘이 맞부딪히고 있는 셈이다. 종합하자면 현재의 갈등은 대법원 판결이 제기한 ‘식민지배에 대한 불법성’이 기존 ‘65년 체제’의 구조를 건드리고 있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더는 침묵될 수 없는 식민지배

 

월간 참여사회 2019년 9월호 (통권 268호)

 

대법원 판결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임재성 변호사는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 판결 이후, 한일관계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대법원 판결은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기업에 대한 위자료 청구권”이며 따라서 원고들이 청구하는 것은 ‘미지급 임금이나 보상금’이 아닌 ‘위자료’라는 점을 강조했다. 즉,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나아가 대법원 판결은 청구권협정이 일본의 불법적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 청구가 아니었다는 점을 확인하고 있으며, 청구권협정 1조와 2조의 관계에 대해서는 ‘법적 대가관계’가 불확실하다고 문제제기하고, 한일 양국 정부가 일제의 한반도 지배의 성격에 관해 합의에 이르지 못했음을 지적했다. 이는 청구권협정 이후 일본의 경제협력자금이 식민지배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면, 당연히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되는 권리도 식민지 강점에 대한 배상일 수 없다는 것을 파고든 것이다. 고로 한국은 식민지배를 ‘불법’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배상 권리는 여전히 살아있게 된다. 

 

알려졌다시피 당시 청구권협정은 식민지배 불법성을 확인하지 않은 기본조약을 전제로 맺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대법원 판결은 결국 국교정상화 이후 한일관계의 근본을 이루는 65년 체제의 ‘구조’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이번 판결로 식민지배 과거사 문제는 이렇게 한일관계의 중추로 부상하게 되었다.

 

한일관계는 어디로?

 

월간 참여사회 2019년 9월호 (통권 268호)

 

남기정 교수는 이번 대법원 판결이, 그동안 식민지배의 불법성에 대한 침묵을 전제로 이어져온 65년 체제의 한계를 극복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라면, 향후 한일관계는 기존 관계의 복구나 개선이 아닌 재구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정부가 그동안 1965년의 조약과 협정들이 과거사 문제를 회피해온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일본정부에 촉구할 것을 요청했다.

 

또한, 강제동원 문제의 1차적 책임은 일본정부와 기업에 있으나, 이와는 별도로 한국정부와 기업에도 의무가 발생한다고 말한다.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외국의 강점 상태를 시정하지 못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지 못한 책임이 있으니, 그 법통을 계승하는 대한민국에 그 책임이 귀속되기 때문이라는 것. 게다가 1948년 건국설을 부정하는 문재인 정부는 그 책임을 자각할 필요가 있으며 따라서 강제동원 피해자 구제를 한국정부 책임 하에 실시하는 것이야말로 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맞는 해, ‘대한제국-임시정부-대한민국’의 법통을 확인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밝힌다. 

 

지금의 돌출된 국면은 ‘한일관계라는 문제’, 즉 그간 한반도 정세를 바라봄에 있어 부차적이거나 주목되지 못했던 것을 보도록 강제하고 있다. 사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이행에 있어서도 일본의 역할, 즉 한일관계와 북일관계가 중요함에도 그간 외면되어온 측면이 크다. 갈등이 지속되는 가운데 서로의 입장 차는 좁혀지지 못하고 있다. 대법원 판결은 서로를 물러설 수 없게 만들었고, 타개책은 요원하지만 한 가지 명확한 것은 한일관계가 이전으로 돌아가리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식민지배라는 문제적 과거사를 비판·지적하면서, 일본과 공진화하는 미래관계를 어떻게 형성해갈 것인가? 지금 우리 앞에 던져진 큰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두 개의 전후’란 제2차 세계대전의 전후가 샌프란시스코 조약 체제로 귀결되어 냉전이라는 이름의 전쟁 상태가 이어지고 있고, 여기에 한국전쟁의 전후가 정전협정 체제로 귀결되어 정전이라는 이름의 전쟁 상태가 한반도를 무대로 중첩되어 위기를 고조시키는 상태를 말한다. 

‘65년 체제’란 1951년 시작되어 1965년에 마무리된, 즉 14년 동안 오랜 협상 끝에 성립한 한일 국교 정상화로 마련된 법적 제도적 구조로서, 구체적으로는 한일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을 가리킨다. 그 기본구조란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식민지배의 성격과 그로부터 발생한 손해 구제 방식에 대해 한일 양국이 서로 다른 해석을 하고, 그것을 암묵적으로 용인하는 것이었다. 기본조약에서는 식민지배의 기원이 된 1910년조약이 무효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는데, ‘이미 무효’라는 문구의 해석을 둘러싸고 서로 다른 해석을 하고 이를 암묵적으로 용인해온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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