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12월 1999-12-01   1782

우리는 지금 개혁중입니다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전주지역에서 재야운동으로 잔뼈가 굵은 이들이 시민운동을 벌이겠다고 나섰다. 동네 빵집 주인, 은행원, 기자, 심지어 공무원까지 이에 가세했다. 단체 사무실 집기도 회의용 탁자와 의자를 제외하고는 직접 돈을 주고 산게 없다. 팬티엄급 컴퓨터 2대와 4대의 486기종 컴퓨터를 한 시민이 기증했고, 컴퓨터 사업을 하는 시민은 이를 공짜로 업그레이드까지 해줬다. 지역 단체로선 다소 풍족한 45평 남짓 공간은 시민들의 성원에 의해 에어콘, 복사기, 책상 등의 집기로 가득 채워졌다.

오늘 11월말에 창립할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공동대표 여태곤 목사, 원불교 이선조 교무, 전북대 백종만·이석영 교수, 무주성당 박창신 신부)

이들은 정식 발족하기도 전에 ‘사고’를 쳤다. 지난 8월 전주시에서 8박9일의 유럽 시찰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한 것이다. 시 예산 중 경비로 쓰인 돈이 5,700만 원으로 공무원들은 그리 크지 않게 여길지 모르겠지만 이 지역 ‘곳간’을 지키자고 나선 일이다. 여행 과정에서 경전철 용역업체가 동행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시의원들의 여행경비를 전주국제영화제 조직위에서 댔다는 사실도 추가로 밝혀냈다. 시장과 동행한 인사는 공무원을 포함해 지역 일간지 4명의 편집국장과 6명의 시의원, 그리고 시민단체 인사 3인 등 총 18명.

이때 쓰인 시장의 업무추진비 영수증을 요구하자 시청측은 “영수증이 없다”고 버티면서도 잔뜩 긴장했고, 전북 자치단체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타 시도 단체장들이 “그쪽에서 확실히 매를 맞아줘야 우리가 대처하기가 수월해진다”고 얘기했을 정도로 민감하게 받아들인다는 후문이다. 지역 단체에서 자치단체 살림살이를 감시하기 위해 정보공개를 청구하기는 아직까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지역 시민운동의 대 정부 견제 기능이 미약하다는 반증이다. 시민운동을 이제 막 시작하려하는 신생 단체치고는 당찬 선전포고였던 셈이다.

재야운동에서 시민운동 모색

전주는 쌀수입개방 반대 투쟁이 활발하게 진행됐고, 임실 고추 투쟁으로 번지는 등 전통적으로 농민운동이 강세를 보였던 지역. 전반적으로 지역정서는 보수적이지만 70년대부터 농민운동과 재야운동의 흐름이 90년대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문정현, 문귀현 신부와 강인환 목사 등으로 대별되는 종교운동도 활발한 지역이다.

하지만 DJ정서에 민감한 지역 사정 등의 요인으로 시민운동은 그다지 시민 속으로 깊이 뿌리내리지는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 지역의 시민단체는 YMCA, YWCA, 흥사단, 환경연합, 환경을 지키는 여성들의 모임 등이 있다. 이들 10여 개 단체는 4∼5년 전에 전북시민운동연합을 결성해 활동하고 있다. 대체로 자치단체 등으로부터 프로젝트 사업비를 받고 있는 단체들이다.

또다른 연대틀은 지난 9월에 결성된 전북민주시민사회단체협의회(약칭 민사협). 민주노총, 민교협, 전주시민회, 전북총협, 건강한 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성폭력예방치료센터 등 가입해있는 34개 단체들은 대체로 재야운동의 맥을 잇는 단체들이다.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도 이 협의회의 가입돼 있다. 민사협은 현재 국보법 철폐 사업에 주력하고 있고, 가입 단체들과 함께 내년 총선 전략을 모색 중이다. 전북시민연대의 모체는 민주주의민족통일 전북연합이다. 90년대 초반부터 운동 방식을 고민해오다가 올초 연합이 해체됐고, 이 주축 멤버들이 지난 4월부터 전북시민연대의 준비모임을 주도했다. 이 과정에 일부 민중운동 진영에서 심한 질책을 받기도 했고 따로 연합을 창설하겠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연합 해체에 동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전북대 이석영 교수, 무주성당 박창신 신부 역시 전북연합에서 활동했던 인물. 현재 이 단체의 사무처장인 박종훈 씨(46)는 전북연합 전 대변인이자 97년 국본 집행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남규 시민감시국장(35)도 기독교사회운동연합 사무국장을 거쳐 전북연합의 전 사무처장을 맡았었다. 이밖에 전북시민연대 상근자 6명 전원이 전북연합 출신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시민운동이 그리 낯설지 않다. 이 단체의 실무 총책을 맡고 있는 박종훈 사무처장만해도 전북연합에서 민주시민학교 교무처장, 교장을 지냈다. 전북연합은 또 그간 환경위원회 활동을 통해 지역의 환경운동에도 직접 나서기도 했다. 상근자들 대부분이 대중단체에서 회원사업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시민있는 시민운동’을 벌일 수 있는 기본 토대는 마련된 셈이다.

현재까지 회원으로 가입한 시민은 80여 명 정도. 이미 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타 시민단체에 뒤지지 않는다. 여기에 후원회원만도 100명이 넘는다. 내년 1년동안 500명의 회원을 확보하겠다는 게 이 단체의 바람. 이쯤되면 자치단체 또는 기업으로부터 지원을 받지 않고도 회원 회비만으로도 자립할 기반을 갖출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정치지망생 많지만 시민운동 투신할 전문역량 부족

“이곳 주민들도 시민운동이라고하면 우선 떠올리는 게 경실련, 참여연대입니다. 그만큼 언론을 통해 이 두단체가 익숙해졌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시민운동의 기반이 아직은 척박하고 내부 역량도 미흡한 실정에서 이처럼 높은 기대 수준을 따라잡을 수가 없을 겁니다. 앞으로 1년정도면 지역에서 중앙 단체 못지않은 위력을 발휘할테니 지켜봐주십시오.”

박종훈 사무처장의 말이다. 실제 그는 지역의 종합적 시민단체를 그리고 있다. 도·시정 감시 센터는 정보공개청구운동을 시작으로 이미 가동중이고, 작은권리찾기 운동본부도 결성됐다. 작은권리찾기 운동본부의 경우 현재까지 1주일에 4∼5건의 민원을 받고 처리하는 데 그치고 있지만 앞으로는 공익소송도 담당할 예정이다. 이밖에 부정부패추방운동본부, 사회복지위원회, 좋은 이웃모임 등을 통해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운동에 주력한다는 계획이다.

김남규 국장은 “중앙과는 달리 시민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전문가 그룹층이 얇아 이를 보강하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정치 지망생들은 많지만 시민운동에 투신할 인물난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지역 시민단체들과의 연대도 이들이 안고 있는 또다른 과제다. 또 자치단체와 ‘동거’ 관계에 있는 성향의 단체들과는 선뜻 함께할 수 없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게다가 이미 자치단체의 프로젝트는 받지않겠다고 천명한 상태다. 하지만 사안에 따라 이들과도 연대전선을 구축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서서히 느껴가고 있다. 이들은 11월 창립한 뒤 곧바로 참여자치 지역운동연대에 가입할 예정이다.

시민운동의 불모지인 전북 전주에서 새로운 텃밭을 일구는 사람들. 이들이 풀뿌리 자치를 정착시키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지 기대된다.

김병기(참여사회 기자)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