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12월 1999-12-01   1977

희망을 위하여

"저∼, 거기 직원뽑고 있죠? 월급은 얼만가요? 퇴직금도 있나요?”

“기본급은 45만 원이구요, 퇴직금은 없습니다. 시민운동에 관심있는 사람은 누구나 지원할 수 있습니다. 출근시각은 오전 9시, 퇴근시각은 오후 6시이지만 퇴근시각은 일정하지 않습니다. 일이 많으면 밤늦게까지 사무실에서 일하는 경우가 허다하니까요.”

참여연대 창립이래 대대적인(?) 상근활동가 채용광고가 신문에 난 직후다. 참여연대 간사들은 전화선 너머로 이것저것 따져 묻는 이들에게 얼마만큼 이들이 만족해 하는 답변을 줄 수 있었을까? 5년이 넘는 참여연대 상근활동과 대학졸업 이후 참여연대 활동 경험이 전부인 나에게는 아직도 ‘직원’과 ‘퇴직금’이라는 말들이 낯설기만 하다.

‘병역필한 힘센 남자, 대학졸업, 30세 미만의 용모단정한 미혼녀만 지원가능’이 아닌 <채용에 있어 학력, 나이, 성차별을 두지 않는다> 이 얼마나 멋진 광고 멘트인가! 하지만 ‘요즈음 언론에 NGO활동이 한창 소개되고, NGO가 제3섹터니, 제5의 권력기구라고 해대니, 많은 사람들이 시민단체, 시민운동에 대한 진지한 고민없이 참여연대 상근을 지원하는 것같다’며 씁쓸해 하는 동료 선배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참여연대가 다른 시민단체들보다 업무환경이나 재정상황이 좋다고는 하나 대다수 운동단체 활동가들의 경제적 생활은 여전히 힘들고, 활동가들이 자기 재충전의 시간도 제대로 가질 수 없는 것이 현실 아니던가!

이런 현실이니 만큼 당분간 직업으로 사회운동을 하려는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일정한 불안을 감수하고, 이런 상황을 변화시켜 나갈 수 있는 집단적인 힘을 만들어 가야할 것 같다. 언젠가 어느 한 동료가 시민단체에서 일하려면 ‘참을성, 인내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지만 나는 일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과 자기를 성찰하는 자세’를 잃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는 70, 80년대 군부독재와 맞서서 치열하게 민주화운동을 하던 많은 선배들처럼 모든 일에 헌신적이고 특별한 자기결단이 있어야만 이런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미혼이고 생계에 대한 부담이 다소 덜한 나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철학(?)을 갖고 그동안 그럭저럭 살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 진정 나를 부끄럽게 하는 것은 ‘관성’과 ‘적당함’이 나의 일상을 지배하는 것이다.

사회변화의 속도가 의식의 변화속도보다 빨라지고 정보화, 세계화, 지역화니 새로운 변화의 흐름을 읽어야할 필요성이 날이 갈수록 증대하고 있고, 활동가들은 여러 능력을 요구받게 된다. 이를 위해서는 활동가들이 단순히 재충전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확보하는 것 뿐 아니라 활동가를 재교육할 수 있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프로그램 마련이 급선무다. 또한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학습하고 자기정진의 기회를 스스로 마련해 가지 않으면 안된다.

얼마후면 책임감과 성실함으로 똘똘 뭉쳤던 내 동료들의 빈 자리, 관성과 타성으로 젖어 있던 나의 빈 자리를 새로운 활동가들의 열정과 패기, 옹골참으로 가득 채워 줄 것이다.

나는 이들이 ‘참여연대는 더 이상 5,000명의 회원들과 자원활동가, 상근간사들만의 것이 아니다. 이제 참여연대는 우리사회에서 가장 소외받고 억압받는 자들의 것이 되어야 한다’며 의미심장하게 말하던 어느 한 회원의 눈빛을 가슴속 깊이 느껴가길 바란다.

또한 나는 이 늦가을에 ‘우리사회에서 가장 소외받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참여연대’를 만들기 위해 여전히 각자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나가는 많은 동료와 회원들의 눈물과 땀방울을 가슴 가득 담아놓고 싶다.

이수효 참여연대 시민권리국 아파트공동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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