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12월 1999-12-01   2257

배꼽빠지게 슬픈 영화

기막힌 사내들

장진 감독을 아십니까? 작년 스물일곱의 나이로 영화감독에 데뷔하고 올해 인간적 간첩을 주인공으로 한 반공영화(?) ‘간첩 리철진’으로 가능성을 인정받은 열혈청년 말이다. 이 감독의 27살 데뷔작 ‘기막한 사내들’. 개봉 2주에 관객 2만 명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내고 비디오 가게 한켠으로 슬며시 물러난 이 영화를 어느 평론가는 영화 매니아라면 두고두고 살펴볼만한 영화라고까지 극찬을 했다.

98년 여름, 서울 한복판에서 국회의원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난다. 베테랑이라 자처하는 형사와 한가닥 한다는 형사들이 모여 수사팀을 구성했지만 사건은 미궁에 빠져 있다. 그 와중에 우연히 사건현장에서 붙잡힌 불행한 죄수와 베테랑이 취조실에서 마주 앉았다. 베테랑은 무조건 “불어라”고 다그친다. “뭘 불라는 겁니까?”, “저는 아무 죄가 없습니다”라고 항변하는 불행한 죄수에게 베테랑의 답은 하나이다. “불어라”.

힘 있는 자와 힘없는 자는 항상 이런 식이다. 영화는 이 장면을 아주 코믹하게 그리고 있지만 화면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으면 이건 기가 막히고 가슴답답한 현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가 매력적인 이유는 형사 베테랑의 모습이 악의가 아니라 코믹하고 인간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점이다. 또한 베테랑의 위에는 베테랑을 다그치는 또다른 힘이 도사리고 있고 베테랑은 하수인에 불과할 뿐이다.

어느날 서울 시청앞에서 한 청년이 “서울시여, 이 지옥 같은 교통문제를 해결하라”라는 현수막과 함께 온몸에 기름을 부으며 자살소동을 벌인다. 그러나 실패한다. 휘발유가 아닌 경유를 쓴 것이다. 추락은 심각한 사회현실을 구호로 내걸고 자살하려고 하지만 매번 자살에 실패하는 청년이다. 전기감전으로 죽으려고 할 때는 정전이 되고, 목 매달아 자살하려고 할 때는 끈 길이를 잘못 재서 실패한다. 영화는 그가 왜 자살을 하려고 하는지는 묻지 않는다. 영화는 추락의 세상에 달관한 듯한 표정과 자살 실패라는 상황설정을 통해 힘 없는 사람이 평범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보여준다.

이 영화의 압권은 전봇대를 사이에 두고 이루어지는 얼굴 없는 두 살인범의 전화통화이다. 국회의원 연쇄살인범은 이들인데, 경찰은 북한 남파원에 의한 음모설을 제기하고, 언론은 TV토론을 통해 살인자에 대한 정신분석까지 한다. 전라도와 경상도 출신인 이 두 살인범의 전봇대 대화는 이런 권력과 언론의 난리법석에 일침을 가하는 역할을 한다.

“씨팔…와이라노…. 아까 저녁 만침 우리가 팍 쑤신 아가 씨팔 또 국회의원이라 안카나?” / “뭣이여? 아니 그라문….” / “좆됐다. 벌써 네 번째 아이가. 우째 이런 일이 있을수 있노?” / … / “우리가 워티기 국회의원인줄 알수 있다냐? 우린 잘못이 없당께” / “와이라노? 국회의원이건 아니건간에 사람을 죽이지 않았나?” / … / “그 염병할 놈들은 주는 금뺏지도 왜 안달고 다닌디야?” / “ 니 같으면 룸싸롱에 술처먹으로 갔는데 그런 거 달겠나?”/ … / “우야노?” / 그랑께 나가 하잔대로 냄비들을 담구잔께.” / “주둥이 닥치래이! 우에 가시나를 죽이노?”/ ….

장진 감독의 영화는 선과 악의 구분이 없는 인간적인 영화이다. 컬트적 유머, 살인자까지 인간적으로 그려내는 감독의 표현력, 사회를 풍자하기 위한 우회적 표현과 연극과 뮤지컬 등에서 차용해온 실험적 요소들은 <기막힌 사내들>이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괜찮은 영화로 기억되기에 충분한 이유이다. 난 개인적으로 <기막힌 사내들>처럼 배꼽빠지게 슬픈 영화를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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