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12월 1999-12-01   1706

땜질 처방은 이제 그만

– 인천 호프집 참사에 애도의 뜻을 표하며

우리는 종종 진실이 알고 싶다고 하지만, 막상 진실을 알았을 때의 느낌이 어떨지에 대해서는 미리 생각해 보지 않는다. 많은 경우 우리가 알고 싶은 진실은 아름답다기 보다는 추하고 역겨운 것이다.

최근 우리는 한 참혹한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에 숨어 있는 진실의 일면을 볼 수 있었다. 그 진실이란 30대의 세상물정 잘 아는 어떤 남자가 평소에 공무원, 경찰관, 조직폭력배들과 친밀한 인맥을 형성해 둔다. 이 30대 남자가 하는 일은 유흥업소 경영이다. 이 남자는 돈을 벌기 위해 법을 어기는 것을 밥먹듯이 한다. 아예 미성년자들을 주고객으로 하는 호프집까지 만들었다. 법을 어겨도 이 남자는 끄떡이 없다. 관할경찰서 경찰관은 자신의 집에 ‘무료임차인’으로 살고 있고, 공무원들과는 평소에 호형호제하는 사이다. 물론 때마다 돈을 찔러주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래서 이 남자는 한달에 1억 원 정도의 돈을 벌었다고 한다. 한달에 1억 원이면 1년에 12억, 일반인으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규모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남자에게 갑자기 일이 터졌다. 고등학생들이 주고객인 호프집에 불이 나 버린 것이다. 불이 난 순간에도 이 남자는 혹시나 자신이 미성년자들을 상대로 불법영업을 하고 있었던 사실이 발각될까봐 걱정했을 뿐, 학생들의 생명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이 남자로 보면 정말 재수없는 일이 생긴 것이다. 물론 그와 친밀하게 지내던 공무원과 경찰관들에게도.

우리 사회에서 이런 종류의 추하고 역겨운 진실은 이렇게 가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불타버린 호프집의 참혹한 장면을 TV로 보던 우리는 그 다음부터는 이 남자의 삶을 둘러싼 진실에 맞닥뜨린다. 사고의 이면에 숨어 있던 진실을 보면서 어떤 사람은 분노하고, 어떤 사람은 절망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의문을 가진다. 이 남자는 단지 재수없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이 남자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방식을 통해 돈을 벌고 있지는 않을까.

요즘 중·고등학생들이 술을 마시고 담배를 핀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어린 시절에도 어른들 몰래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웠었다. 호기심에서 그랬을 수도 있고, 억압적인 교육제도와 입시제도에 눌린 가슴을 풀어보려고 그랬을 수도 있다. 지금의 문제는 어른들이 아이들의 그런 마음을 이용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탐욕을 채우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부패구조가 그런 탐욕을 실현가능하게 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우리의 아이들은 비리에 찌든 공간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아이들은 우리 사회가 움직이는 메카니즘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이다.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비리와 부조리가 우연한 사건을 통해 모습을 드러내고 우리는 그 진실에 역겨워하지만, 그런 역겨움을 기억하기 보다는 잊어버리고 산다. 그 다음에 또 다른 사고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그러면서 비리와 부조리는 재생산된다. 때로는 우리 아이들을 희생자로 만들면서. 언제까지 이 역겨운 현실을 지켜보아야 하는 것일까.

지금 우리 사회의 부패문제는 쉽게 고쳐지지 않을 것이다. 문제가 터질 때마다 책임을 묻는다면서 경찰서장, 경찰청장을 바꾸지만, 또 다시 문제는 반복되기 마련이다. 더 이상 임시방편적인 처방으로 부패문제를 덮으려 하면 안 된다. 그늘지고 음성적인 것은 햇볕에 가장 약하다. 이미 존재하는 부패문제를 감추려하지 말고, 그 존재를 인정하고 드러내야 한다. 그리고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 진지한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 그것이 진실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이다.

하승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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