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8년 11월 1998-11-01   1769

「국민인권위원회」유감

「국민인권위원회」유감

수사와 재판의 결과는 국민의 생명·재산·지위·명예에 치명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대다수 국민들은 경찰, 검찰, 법원을 가까이 하기에는 시간과 돈이 너무 많이 지출된다고 생각한다. 언필칭 “양심과 법률에 따라 독립해 수사하고 재판한다”면서도 현실은 정반대의 경우가 더 흔하다는 시민들의 불만이 있다. 특히 기소편의주의, 기소독점주의, 검사동일체 원칙을 채택하고 있는 검찰은 일단 제 눈의 잣대로 처분해 버리면 항고, 재항고를 해봐도 별 소용이 없다. 그저 항고기각통지서 한 장이면 끝이다. 법원도 별로 신통할 게 없다. 무겁고 권위적인 법정에서는 신속 공정보다는 ‘번개심리’와 ‘늑장재판’이 비일비재하다. 우리 국민들은 웬만큼 도둑을 맞거나 피해를 당해도 수사 관서에 신고하고 법원에 제소하기를 주저한다. 결과는 대개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되기 때문이다. 법이 큰 도둑에게는 관대하고 좀도둑에게는 엄혹하다는 논리도 거기서 비롯되는 것 같다.

오늘날 사회 구석구석이 각종 비리와 부정부패로 곪아터지는 것이 경제만 잘못되어서가 아니라고 본다. 첫째 법이 제 구실을 못해서이다. 이보다 더 헐벗고 궁핍했던 시대에도 비록 일부라 할지라도 이처럼 일선 경찰이 향응에 눈멀어 수배자를 풀어주고, 검사가 도박판에 끼어 들고, 판사가 브로커 변호사의 뇌물에 법복을 벗는 예는 보기 힘들었다.

최근 법무부 발표에 따르면 국가기관에 의한 인권침해를 감시하고 구제할 수 있는 ‘국민인권위원회’를 신설한다고 한다. 이를 인권보호 차원에서 환영할만한 일인지, 그러나 그 취지나 목적이 단순 권고에 머물러온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수준에 이르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 법의 목적과 인권침해의 내용을 보더라도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는 사회를 구현한다’는 선언적인 말뿐 검찰 경찰의 불법체포, 감금, 고문, 가혹행위, 유치장 등에서 피보호자를 징벌하는 행위 등에 대한 수사권조차 갖고 있지 못해 어떤 법적 구속력을 행사하겠다는 건지 대체 알 수 없다. 특히나 힘있는 국가기관에서의 인권침해 사례는 언제나 발생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이렇다할 단서가 없다. 예컨대 일선 경찰관이 담당사건을 조사할 때 소위 ‘떡고물’ 유·무에 따라 죽을 죄 아닌 바엔 일부 자의적으로 조서가 꾸며지는 일이 일어날 수 있고, 단순한 사건을 가지고도 3개월 혹은 그 이상씩 수사지연으로 고소·고발인의 애를 태운다. 이건 국민들의 인권침해, 생활침해가 아니고 또 뭔가. 분명 당해 서에도 계장, 과장, 서장, 지휘 감독 책임자가 상존하면서도 법률피해자들의 수사 이의서, 진정서 등을 수없이 써내봐도 별 소용없는 것이 현실이다. 항고제도가 있는 검찰도 별로 다를 게 없다. 즉 “아래", “위"가 한통속이 되어버렸으니 누가 누구를 지휘감독하고 처벌하겠느냐는 비판이 대다수 국민들의 견해다. 한마디로 현재 ‘국민인권위원회’ 수준이라면 결국 ‘빛좋은 개살구’ 정도에 머물지 않을까 염려된다.

그보다는 차라리 김대중 정부 100대 과제 중 재정신청제도만이라도 조속히 실천에 옮겨 국가기관에 의해 피해를 당한 국민이면 누구나 손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특히 이 사회의 ‘거울’이요 ‘목탁’ 임을 자처해온 언론 등 시민운동단체들이 사법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본다. 그렇잖아도 IMF로 살기 힘든데 다수 국민들이 잘못된 크고 작은 법망에 걸려 생업에 지장과 피해를 당한다면 우리는 언제 한번 허리를 펴고 살아볼 것인가. 거듭 애정어린 마음으로 정부당국자의 맹성을 촉구해본다.

한천석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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