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5년 07-08월 2005-06-08   3158

“남녀 만남 최악의 시나리오는 NGO와 NGO끼리의 결혼”

‘돈’ 보다 ‘신념’… 참여연대 여성 4인의 솔직 토크 현장

청년실업 40만의 시대라고 한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가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흔히 이야기 하는 ‘고급인력’의 경우 때때로 선택의 기로에서 자신의 앞날을 저울질 하는 것이 취업시장의 현실이기도 하다.

▲ 3개월의 수습기간을 마치고 정식간사가 된 여성 4인방. 왼쪽부터 강수경, 이은미, 차은하, 변금선씨 ⓒ2005 나영준

변금선(26·서울대 사회복지 대학원), 차은하(28·경희대 평화복지 대학원), 이은미(31·성공회대 사회복지 대학원), 강수경(29·성공회대 NGO대학원)씨 등 4명은 이제 막 수습 3개월의 딱지를 떼고 참여연대의 정식 간사가 된 이들이다. 하지만 정식간사라고 해 봐야 그들 앞으로 돌아오는 급여는 한 달 80여만 원 남짓이다.

쉬지 않고 오르는 공공요금이나 물가 인상분을 감안한다면 쉽게 납득이 안 갈 금액이다. 게다가 그들의 학력은 모두 ‘대학원 졸’이다. 취업학원화 돼 가고 있는 대학의 현실을 감안하자면 투자대비 회수비용은 그야말로 마이너스인 셈이다.

물론 직업선택에 있어 가지는 개인의 가치판단을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재단할 수는 없다. 자신이 꿈꾸던 직업을 가진 이들에게 있어 경제적인 것보다 더욱 중요한 ‘그 무엇’은 어떤 것일까. 지난 6월 13일 오후 3시, 참여연대 회의실에서 10대 1의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입사, 자신들의 꿈을 만들어 가고 있는 그녀들의 솔직 토크 현장을 들여다보았다.

남녀 만남 최악의 시나리오는 NGO와 NGO끼리의 결혼

ⓒ2005 나영준– 주변 친구나 동기생들이 취업에 있어 많은 고민을 할 시기인데, 반응이 어떤가. 부러워하는 이들이 많이 있는가?

일동 : 그건 아닌 것 같은데…(웃음)

차은하 : 요즘 추세가 좋은 곳 안 좋은 곳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금액을 주느냐 인 것 같다. 복지시설이 어떻고 근무 환경이 어떻고 보다 돈이 먼저 순위다. 언제부터인지 현실이 그렇게 바뀐 것 같다.

변금선 : 취직을 해서 부러워하는 것 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해서 놀라워하는 것 같다. “결국 그 길을 가는 구나”하며. 한 편으로 “네가 여자니까”라는 이야기도 한다. “왜 아직까지 저런 이야기를 할까”싶어 불끈하기도 하지만 현실을 돌아보면 맞는 이야기 같기도 하다. 시민단체 만큼 복지기관의 현실도 열악한데, 학교에서 사회복지의 중요성을 논하던 남자선배 중 실제 그런 기관으로 간 사람은 내가 아는 사람 중 아무도 없다. 취업 때가 되면 달라진다.

이은미 : 아무래도 금전적인 게 영향을 안 미칠 수는 없다고 본다. 어쩌면 여자였기 때문에 (입사 선택이)가능할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든다. 남자였다면, 부양가족이 있었다면 더 많은 갈등을 했고 힘들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론 결혼을 했지만, 여성이고 미혼이고 하다 보니까 자신이 해 보고 싶은 일에 발목을 잡는 것들이 없지 않나 싶기도 하다.

강수경 : 이곳 내부에서도 남자 간사 분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아니 오히려 ‘부인’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은미 : 학부시절 떠돌던 우스개가 있었다. 남녀 만남 최악의 시나리오 중 첫째가 NGO와 NGO끼리의 결혼이고 둘째, 셋째는 NGO와 사회복지, 사회복지와 사회복지의 결혼이다(‘맞어, 맞어’ 하며 폭소가 터졌다). 절망까지는 아니지만 그만큼 금전적인 부분에 있어 어려움이 큰 것이 현실이다.

참여를 이끌지 못한 시민단체의 책임도 크다

– 해결방안이 무엇인가. 시민 참여에 의해 재정을 늘리는 수밖에 없는가?

변금선 : 정부지원금을 받으면 좋은데, 그러면 정부 정책에 대해 순응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가 있을 수 있다. 지금도 “노무현 정권과 무엇이 있는 게 아니냐”하는 무조건적인 오해를 하는 이들이 있는데 돈까지 받게 된다면….

강수경 : 돈을 안 받는다는 것을 아는 사람도 별로 없다. 받는 단체도 있긴 하지만 참여연대의 경우는 감시하는 단체로서 받지 않는다는 것이 내부 기준이다. 그런데도 보수언론에서는 뭉뚱그리는 뉘앙스로 보도하곤 한다.

▲ 이 날의 솔직한 '토크'는 시종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2005 나영준

차은하 :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정부의 돈을 받아야 하는데 그것이 ‘독립적인’ 돈이라는 인식을 시민들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분명히 별개의 것인데 자꾸 언론 쪽에서 정부와 시민단체를 마치 친구사이처럼 연결시킨다. 물론 회원들의 참여가 기본이 되어야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 시민 단체의 현실상 정부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변금선 : 가장 중요한 건 우리가 얼마나 잘 하느냐 인 것 같다. 그것이 기본이 되어야 관심도 끌 수 있고, 사회도 변화하고. 여기 일하는 사람들의 생각도 정말 중요한 것 같다. 들어오기 전에는 무슨 일을 할까 막연했는데 막상 일하다 보니 내가 하나하나 하는 일이 정말 소중하다고 느끼게 된다.

이은미 : NGO가 많지 않나. 그런데 일반인들이 단순히 ‘권력 감시’만을 떠올리는 것 같다. 그 이외 소비자 활동을 하는 이들도 있고, 약간의 가치지향이 다를 뿐이지 각기 다양한 활동들을 한다. 그 모든 단체들을 권력 감시로 규정하니 정부와의 관계를 ‘밀착·유착’식으로 오해하는 것 같다. 정부지원과 인식변화 두 가지가 함께 가야 한다.

강수경 : 시민단체의 숫자도 늘고 하는 일과 영역이 많이 커졌음에도 안타까운 것은 시민들이 NGO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보다 참여가 많이 늘었을 텐데….

그녀들의 지적은 시민단체 스스로에게로 향했다. 단순히 보수언론의 탓 이라기보다는 내부 경영마인드의 부족, 홍보부족, 무엇보다 시민들과 함께 하지 못하고 ‘우리끼리’에만 바빠 주위를 돌아보지 못 한 것 같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신입간사들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예리하다고 묻자 “교육을 잘 받은 것 같다”는 웃음이 돌아왔다.

하고 싶은 일을 할 뿐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 오른쪽의 이은미씨는 네 명 중 유일한 기혼자. ⓒ2005 나영준– 자신들의 선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혹시 시민단체에서 일하고 싶은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이은미 : 나는 시민단체에 들어 온 것이 대단한 일을 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변화를 위해 굉장히 적은 금액에 이 일을 선택했다’ 식으로 보도되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있는 것뿐이다. 각자가 각각의 길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 주었으면 할 뿐 이다. 그것이 돈이 됐건 자원 활동이 됐건. 영웅시 될 필요도 없고 각자의 역할을 하는 것뿐이다. 그것이 사회를 위해 상생하는 길 아닐까 생각한다(‘상생’이라는 마무리 발언에 큰 웃음이 터졌다).

변금선 : 정말 동의한다. 4개월째 일을 하며 많은 사람을 만났는데, 다들 하는 소리가 “어쩌다 여기 오셨어요” “대단하시네요, 고생하십니다” 등이다. 내가 좋아서, 내가 선택해 일을 할 뿐인데 말이다. 나는 돈 주고도 배울 수 없는 일을 돈을 ‘받아가면서’하고 있다. 물론 본인들이 못하는 일을 우리가 하고 있어 그럴 수도 있지만 ‘대단하다’고는 보지 않았으면 한다. 나름대로 개인의 생각과 신념이 있는 것이니까.

강수경 : 그것이 NGO단체들이 살 수 있는 정신인 것 같다. ‘적은 월급을 받고 나 개인이 아닌 사회를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고 있다’라는 마음을 먹으면 이 길에 있을 수 없을 것 같다. 시민단체들이 좋은 활동을 하기위해서는 그런 개인들이 있어야 한다. 그나마 참여연대는 ‘큰’ 단체 아닌가. 우리보다 더 고생하시는 분들을 생각하면 명함도 못 내밀 것 같다.

차은하 : 세상의 잣대로 보자면 이런 곳이 영웅시될 만한 장소다.(웃음) 하지만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생각하자면 개인의 성장에 있어 굉장히 좋은 곳이다. 성장하려면 좋은 거름이 있어야 하고 그 거름은 사람으로 만들어 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곳에 있는 회원, 임원, 간사 등은 모두 훌륭한 밭이고 거름이다. 혹시 도전하시고 싶은 분들은 그걸 꼭 알아주었으면 한다.

대담을 마친 그녀들은 유쾌했다. 강수경씨는 출근 첫 날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며 “혹시 그 곳에서 남자가 말을 걸면 대답도 하지 말라”고 하셨다며 “NGO와 NGO의 결합을 우려하셨나 보다”라는 이야기를 꺼내서 다시 한 번 분위기를 ‘뒤집어’ 놓았다.

그런가 하면 변금선씨는 “우리 단체 에서 주장하는 최저임금의 상향수준 보다 임금이 적다”면서도 내내 표정은 즐거워 보였다. 그녀가 바라는 건 참여연대의 주장이 관철되면 자신의 월급도 따라 오르는 것 이라고.

연금과 적금 이야기에 열을 올리고 “이번 달에 적자를 겨우 면했다”면서도 웃음꽃이 떠나지 않는 모습은 여느 직장인들과 다를 바 없었다. 이윽고 다음 달 상여금이 나온다는 이야기에는 “아싸!”하며 일제히 환호성이 터졌다. 마지막 기념 촬영, 결코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여성 직장인들의 미소가 카메라를 향하고 있었다.

* 이 기사는 2005일 6월 8일 오마이뉴스에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 나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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