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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년 12월
  • 2010.12.01
  • 1116


영원한 제국은 없다

식민 지배에 실패한 제국들이 주는 교훈



정창수 좋은예산센터 부소장

 

100여 년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식민지는 영국이 지배하는 인도였다. 인도는 지금도 인구가 10억이 넘는 대국이지만 당시에도 이미 인구가 3억을 넘었다.

  영국이 그들을 지배하는 데는 엄청난 물리력이 필요했으리라고 상상하기 쉽다. 그러나 이런 예상과는 달리 뜻밖에도 3억 명의 인도를 지배한 영국의 군대는 장교 1만 명을 포함해 6만 명에 불과했다. 그리고 ‘원주민’ 군인 20만 명이 그들을 보조했다. 그리고 영국 군대식으로 훈련받은 2천 명의 인도 문관들이 모든 행정을 관장했다.

  ‘간디’를 주제로 한 영화를 보면 영국군이나 경찰이 아닌 인도인 경찰들이 비폭력 시위대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것은 영국이 대리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최소의 비용으로 통치했음을 보여준다. 폭력을 최소한만 쓰면서 상층부를 회유하는 영국의 지배 방식은 상당히 고도화 되어 있었다. 특히 각 지역의 왕국들은 특권을 보유하면서 영국의 신하로 인정받으며 살았다.

주민들의 정신적 저항을 이기지 못하는 제국의 물리력

영국은 인도의 독립운동을 다룰 때도 본국의 법률과 동일하게 다루려고 노력하는 등 세계제국을 운영하는 방법에 있어서 나름대로 원칙이 있었다. 그래서 간디의 활동에서 독립을 외치는 단식이 거의 없었다. 영국의 문제보다도 인도 내부의 문제가 더 심각했기 때문이다. 간디의 단식 중에 ‘장렬한 단식’이라 불리는 1932년의 단식도 종교적인 이유로 천대받던 ‘불가촉천민’에 대한 차별을 반대해 이루어졌다.

  간디가 투쟁 방식을 정치적으로 고려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것이 최선의 방식이라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런 우회적인 비폭력 저항도 영국에는 커다란 짐이 되었다. 그리고 많은 비용을 발생시켰다. 그래서 결국 인도는 독립을 쟁취하게 되는 것이다.

  케냐의 경우에도 이것이 증명된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케냐는 백인들이 999년 간 땅을 소유하고 흑인들은 연간 180일 이상을 무료로 그들의 땅을 경작해 주어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저항 없이 착취를 당하기만 하던 흑인들도 마침내 꿈틀대기 시작했다. 1952년 2만여 명의 KLFA(케냐토지자유군)이 저항전쟁을 일으켰다. 영국이 군대 5만을 동원해 진압했지만 이때 식민지 예산을 모두 전쟁에만 사용해야 했다. 영국은 더 이상 빼앗을 것이 없어졌다. 한마디로 남는 것이 없는 장사가 된 것이다. 앞으로도 상황이 더 어려워질 것으로 판단해 마침내 1963년 케냐의 독립을 인정했다. 정치적인 통치 대신 경제적 통치로 방향을 선회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알제리 독립전쟁에서도 프랑스는 본토의 수십만 군대에 더해 알제리의 인구 900만 명 중 50만 명을 뽑아 진압군으로 편성했다. 그 부담은 알제리를 지배할 이유를 상실하게 만든다. 우익 사이에서도 도대체 무엇 때문에 알제리를 지배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니 대프랑스를 외치는 드골마저도 극우세력의 암살 위험을 무릅쓰고 알제리를 독립시키게 될 수밖에 없게 된다.

  베트남 전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프랑스를 이어 베트남을 지배하려던 미국은 50만의 자국 군대와 50만의 남베트남 군대를 동원하고도 베트남을 포기한다. 북베트남의 정규 군대는 국경을 거의 침범하지 않았지만 대중 속의 적들과 싸우기 위해 너무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했던 것이다. 이 일은 많은 사람들에게 베트남 수렁(Quagmire)이라는 단어로 불린다.

  우리에게도 그런 기억이 있다. 조선을 점령한 일본은 전체 20만 명의 일본군 중에 5만 명을 조선에 주둔시켰다. 그리고 1만 3천 명의 헌병 경찰이 치안을 담당했다. 당시 지방 관리 수가 5천여 명에 불과했으니 일본이 얼마나 많은 군대를 동원했고 조선 점령 때문에 얼마나 많은 유지비가 소모했는지 알 수 있다.

  식민지가 전쟁에서 승리한 결과로 독립한 경우는 거의 없다. 끈질긴 저항 때문에 점령 비용이 증가해 어쩔 수 없이 물러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전에 이미 점령군이 식민지를 착취하고 주민들에게 고통을 주면서 지배의 정당성을 상실했다. 민중들이 그 과정에서 엄청난 희생을 치르는 것은 물론이다.


‘이라크 수렁’에 빠진 미국

현재 이라크에서는 미군 전사자의 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아프카니스탄에서도 통제력을 상실한 듯 보인다. 불과 삼 주 만에 전쟁을 끝냈던 미국이 이라크 선거 하나 제대로 치러내지 못하는 현상을 두고 ‘이라크수렁’에서 헤매기 시작한 것이라는 평가가 늘고 있다.

  현재 상황과 비슷한 경우가 ‘제 9차 십자군전쟁’으로 불리는 200년 전 나폴레옹의 이집트 침략이다. 1798년 나폴레옹은 3만 8천 병력을 이끌고 이집트에 상륙한 후 하루 만에 알렉산드리아를 점령하고 3주 만에 카이로를 접수했다. 이와 비슷하게 부시도 20일 만에 바그다드를 함락하고 40일 만에 승리를 선언했다.

  나폴레옹은 이집트를 오스만투르크에게서 해방시켜 주겠다는 말로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이집트의 가치를 무시했고 주민들의 반감을 샀다. 결국 산발적인 게릴라전이 민란으로 확대되고 3년 만에 철수하게 되었다. 이때 나폴레옹은 ‘개선으로부터 몰락까지의 거리는 단 한 걸음에 지나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나폴레옹의 위 경우와 같이 정당성이 없고 인종적인 편견에 따른 정책은 분노의 화살로 돌아온다. 이제 미국이 이라크에 쏟아 부어야 할 유지비용이 갈수록 증가할 것이다. 수렁에 빠진 미국은 자칫하면 전 세계를 수렁에 빠뜨릴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전쟁과 지배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미국은 또다시 역사의 오류를 반복하고 있다.

  요즘 준전시 상황을 보면, 한반도에서도 제국의 지배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과정이 진행되는 것 같다. 아니면 제국의 지배질서 안에 들기를 원하는 세력들이, 결과를 전혀 예상하지 않고 미국을 유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미국은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지 않은가. 과잉종속을 원하고 극단적인 상황을 만들고 싶어하는 어떤 사람들이 대신 돈을 들이고 있어, 미국이 쏟아야 할 비용은 거의 없으니 말이다. 기억하자. 제국의 지배에는 한계가 있다. 곧, 제국은 영원할 수 없다. 영원을 믿는 사람들이 의도하는 바와는 달리, 지배를 위한 노력은 오히려 상황을 더 빨리 끝내버리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는다. 역사는 이를 증명한다. 문제는 민중의 고통만이 영원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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