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0년 12월 2010-12-01   1796

아주 특별한 만남-53인의 거울 ‘아주 특별한 만남’

53인의 거울 ‘아주 특별한 만남’

 

이경휴 회원, 『참여사회』 객원기자

 

입동立冬이 지난 지 꽤 되었건만 늦가을이라는 표현이 더 운치 있는 날들이다. 엷어진 햇발과 몇 개 붙어있지 않은 은행나무 이파리는 바람이 살랑만 불어도 떨잠처럼 흔들린다. 마치 금관이 공중에 달려있는 것 같다. 하지만 한 번씩 심술을 부리며 불어대는 바람 끝에는 겨울의 칼날이 숨어있다. 그래도 무수한 칼날 끝에는 봄이 온다는 희망을 우리는 갖고 있다. 누가 말했던가, 모든 희망은 유통기간이 없다고. 그 중 단연 으뜸은 사람에 대한 희망이리라.

  그 말을 등불 삼아 몇 해 동안 사람들을 만났다는 이를 만났다. 오랫동안 알고 있지만 때로는 낯설기도 한 사람. 이경휴(58세)회원이다. 이번호는 『참여사회』를 통해 만났던 사람들에게서 보았던 희망을 자신의 이야기로 풀어내는 아주 특별한 만남이다.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고…’ 이 글이 뜻하는 깊은 의미의 손이 아닌 외양이 예쁜 손을 가졌고, 남 앞에서 조리 있게 말하기 보다는 글로 설득하기가 낫고, 사십 년 가까운 세월을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억센 경상도 억양을 못 버린 사람이다. 

53인의 특별한 사람을 만난 ‘아주 특별한 사람, 이경휴’

참여연대 가입 동기도 사람을 통해서였다. 그녀의 전공은 교육학이지만 그보다는 역사와 나무를 좋아하고, 낯선 사람들 틈에 끼어 여행하기를 좋아한다. 7년 전, <한겨레>에서 외연도 상록수림 답사가 있었다. 그녀는 물론 혼자였고, 일행 중 참여연대 열혈 자원활동가인 장연희 회원을 만났다. <한겨레>신문을 보고, 여행을 따라 다니고, 언론학교(시민단체)과정을 수료했다는 이야기를 하자, 바로 그녀를 회원 가입과 동시에 자원활동가 자리로 불러들였다. 잠시 갈등하다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 보다 못하다’는 글을 떠올리며, 참여연대에 발을 들였다. 겨자씨만한 글쓰기 재능을 살려 <아주 특별한 만남>인 회원인터뷰를 54회 째 쓰고 있다.

  그녀는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참여연대를 정확히 볼 수 있었다. 바깥에서 폄훼하는 ‘데모꾼 단체’가 아닌 인간다운 삶의 조건을 확보하기 위한 인권의 버팀목이요, 공정하지 못한 권력과 부도덕한 기업이 뿜어내는 공해를 신선한 공기로 바꿔놓은 큰 나무라는 것을. 그런 힘든 과정을 이겨내는 간사들의 열정을 회원들은 적극 지지하고 있는 걸 느꼈고, 또 안에서 그녀가 지켜본 그들 마음 또한 변함없는 초심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역사와 나무를 생활 속으로 끌어들여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나이를 밝혀야 할 자리라면, “저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360년 후에 태어난 임진생이며, 조선의 르네상스시대를 연 정조대왕보다 200살 적으며, 고종황제보다는 100살 적습니다.” 때에 따라선 환호하기도 하고 때론 썰렁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한다. 나무로는 꽃과 잎과 수피가 모두 아름다운 쪽동백나무를 가장 좋아한다. 때문에 마지막 귀의처를 그 나무 아래로 이미 정해 놓았다.


잎이고 꽃이고 열매인 사람들

참여연대는 16년 생 느티나무다. 느티나무 수령으로는 아이에 불과하지만 그늘은 웅숭깊다. 느티나무는 오래 사는 나무요, 아주 크게 자라는 나무요, 든든한 뿌리를 가진 나무요, 가지가 많은 나무이다.

  이른 봄, 잎이 날 무렵 꽃이 피는데 너무 작아 잘 보이지 않고, 가을이면 잎 사이로 팥알처럼 작은 열매가 달린다. 많은 가지를 거느린 큰 나무이지만 꽃, 잎, 열매 모두가 작다. 하지만 서로 은밀히 피고 지고 열매를 맺으며 둥치를 만들어간다. 참여연대와 같은 나무이다. 뿐만 아니라 참여연대에는 시민 교육을 위한 느티나무 강좌도 있고 지하 느티나무 홀까지 있으니 이 보다 더 적합한 비유는 없지 싶다.

  그녀는 그간 만났던 53명의 회원들을 느티나무의 잎, 꽃, 열매, 뿌리로 구분해 나무를 살포시 안아보았다. 나무의 특징이 잎과 꽃이 거의 동시에 피어나듯 그들도 잎인 동시에 꽃이요, 꽃인 동시에 또한 잎 사이에 숨어있는 열매들이다.

  이른 봄, 연둣빛 새순의 얼굴을 떠올리면 단연 촛불소녀 김지인 님이다. 이제 소녀시대의 막을 내리고 자신의 진로를 탐색하며 고민하는 촛불숙녀이다. 세상을 향해 맘껏 웃을 수 있는 강산을 꿈꿨던 5월의 신록 이강산 님. 양심적 병역거부로 이 시대의 양심을 대표하는 백승덕 님은 복역 중이고, 미래가 아니라 현재를 강조했던 임우섭과 오은주 님. 느티나무의 싱그러운 잎새로 눈이 부신다.

  꽃은 나무의 현재이다. 하지만 느티나무는 꽃과 잎이 피는 시기가 거의 같고 꽃은 너무 작아 잘 보이지 않는다. 잎과 하나 된 꽃이다. 그들 역시 마찬가지다. 2006년 7월, 첫 인터뷰 이던 수원의 꽃집 아저씨 안정희 님. 꽃향기 그윽했던 안방에서 먹었던 호박부침개 맛을 잊지 못한다. 여전히 활동적이며 참여연대 나눔꽃 광고 모델이다. 꽃을 세우는 바람 ‘꽃세움 바람’을 몰고온 김한보람 님. 부드러운 긴 머리로 사진작가의 인상을 강하게 풍겼던 참여현상소의 정김신호 님. 청년마을 촌장이던 박진호 님은 참여연대 밴드의 베이시스트로 음악을 통해 장년마을, 노년마을까지 장악할 기세이다. 킬힐을 벗어던지고 조례개정 서명을 받던 파이프오르간 연주자 박지영 님. 추운 겨울 무거운 서명대를 몸에 지고 다니며 서명 받기에 힘 쏟았던 국어선생님 유효진 님. 미디어악법 엽서로 세상에 정의의 엽서를 띄웠던 김지현 님. 예능의 ‘끼’를 아낌없이 기부하며 달리는 마라톤 모임의 맹봉학 님과 그 모임의 좌장인 공무원 허필두 님은 참여연대를 배너를 달고 앞장서서 달린다. 빛고을 광주의 백금렬 님. 구수한 입담과 변함없는 재기로 아이들의 한문시간을 업그레이드 시키는 선생님, 고이주미-괴로울苦 귀耳 주인主 아름다울美 : 망언으로 이웃나라 사람들의 귀를 괴롭히고 미국을 주인으로 섬긴다. 이런 수업으로 학생들에게 역사관을 심어준다. 비무장지대에서 세계인의 음악축제를 꿈꾸는 대중문화비평가 탁현민 님, 지역의 벽을 넘어 운영위원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는 부산의 김봉수 님, 봉사와 자원활동으로 세상을 즐겨보기 시작한 정현주 님. 이들 모두는 잎과 함께 꽃의 향내를 멀리멀리 뿜어내는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열매 또한 늦가을에 꽃처럼 자그마한 팥알 모양으로 엽액잎겨드랑이에 달린다. 서로 드러내지 않고 큰 나무를 이루어가는 과정이 참여연대 사람들과 닮았다.

  안국동 옛 참여연대 앞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를 팔던 정춘희 님. 요즘은 날씨 덕을 본다며 손이 쉴 틈이 없이 붕어빵과 어묵으로 사람들에게 온기를 전해준다. 관계를 소중히 여기며 부산시민이 된 서정민 님. 강원도의 힘 유학수 님. 정선으로 인터뷰를 떠날 땐 태풍이 할퀴고 간 지역이 많아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넉넉한 웃음으로 도리어 위로해 주셨고, 지금도 철 따라 두릅·옥수수·산나물 등을 참여연대 사무실로 보내신다. 돈보다는 사람다운 삶을 우선으로 하는 회원모임협의회 전 회장 치과의사 한승호 님, 노동운동가 조민호 님. 목련꽃 흐드러지게 피었던 날, 건국대 컴퍼스에서 했던 인터뷰는 최고의 배경이었다. 너무 조용하고, 말수가 적고 음전하여 인터뷰 내내 힘들었던 이충도 님과 경찰공무원 김명숙 님. 노래로 참 좋은 교육을 펼치는 ‘참좋다’의 이혜미, 홍의표 님. 조용하고 단단하게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삶의 동력을 충전시켜주는 남상우 님을 만나러 안산으로 향할 때 물왕저수지 변의 벚꽃 세례는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가장 추웠던 날의 인터뷰로 기억하는 풍선아티스트 홍남숙 님. 책 속에서 읽은 세상을 책 밖에서 실천하는 자원활동가 장정아 님과 눈 덮인 북한산을 눈앞에 두고 마신 뜨겁고 부드러운 커피 맛은 잊을 수 없다. ‘숯검댕이’ 눈썹과 넉넉한 마음씨로 회원모임을 이끌었던 김철희 님. 제부도로 귀농하여 농사꾼과 사진작가의 길을 함께하는 이영동 님, 조계사에 출근(?)하며 촛불수배자의 손발이 된 송영민 님. 촛불집회의 명작들이 눈에 아른거린다. 강남의 높은 빌딩에 사무실을 두고 있지만 눈은 낮은 곳에 사는 사람에게로 향하는 변호사 최영동 님. 참여연대 후원의 밤을 아름다운 선율로 장식하는 기타연주가 정광교 님. 희망업 사랑업으로 가정을 이룬 이은주 오경준 부부. 물길이 사람의 길이요 평화의 길임을 강조하는 지관스님. 참여연대 만능손 김종복 님과 부산 광안리 밤 바닷가에서 파도소리와 함께 한 철야인터뷰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출렁인다. 회원에서 참여연대 사무실로 들어와 한솥밥을 먹는 식구가 된 간사들 김진욱, 정형기, 명광복 님. 잎과 잎 사이에서 알알이 영그는 존재들이다.


뿌리 깊은 나무들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아니 하므로, 꽃이 좋고 열매도 많으니…’  더 이상 뿌리에 대한 예찬이 필요할까.

  교회일치 운동으로 살아있는 신학이 된 참여연대 전 공동대표 박상증 님.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를 몰고 나와 뭇사람들 가슴에 경적을 울렸던 안건모 님. 촛불집회는 삶의 에너지를 충전하는 곳이라고 크게 웃던 조룡상 님은 집회가 끝나고도 눈빛은 여전히 형형했다. 매일 식당 수입의 1/100을 기부하며 올곧게 살아가는 황철 님은 입맛 돋우는 순댓국을 만들던 사모님과 사별하고, 그 상처를 가슴에 묻고 꿋꿋이 남을 위한 삶을 펼친다. 안내데스크 자원활동의 원조 캐나다 밴쿠버의 이옥숙 님, 머나먼 땅에서도 변함없는 지지에 경의를 표한다. 늦가을, 긴 내 권영환 님을 뵈러가던 날, 가평의 은행나무 나무 길은 비감하리만큼 아름다웠던 풍경이었다. 팔순이 내일모레인데도 의미 있는 도전은 실패도 두렵지 않다는 이영구 님. 굴곡진 시대를 한결같은 마음으로 살아온 우리들의 어머니 박영희 님. 천수천안으로 참여연대를 보듬어 주는 이해숙 님. 공익의 호루라기 현준희 님. 웃음소리와 한문책을 함께 들고 다니는 훈장님 채명묵 님. <활기차>에 재미있는 ‘만평 펌’이 전공인 참여연대 천군만마 성승택 님. 이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어떤 외풍이 불어와도 참여연대는 끄떡없다.

  이렇게 뿌리를 단단히 내려 잎을 내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게 한 흙의 힘을 결코 잊을 수 없다. 느티나무의 자양분이 되어 늘 우리와 함께 하시는 고 허세욱 님과 고 기우봉 님. 인터뷰의 순간을 회상하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한미 FTA를 반대하며 분신하셨던 택시기사 허세욱 님은 말수도 적고 수줍음이 많은 소년이었다. 너무나 깍듯하고 겸손하셔서 도리어 어려웠다. 늘 당신보다 어려운 사람을 생각하고 입보다는 손이 발이 먼저 나가는 분이었다. 한 몸으로 모든 걸 막아냈지만 여전히 상황은 강자의 논리이다. 인터뷰 후에도 몇 번이나 전화를 주셔서 참고사항을 말씀하셨고 혹시 당신 말씀이 오해를 빚을까봐 세심하게 챙기셨다. 인터뷰 후 안국동 한 국밥 집에서 같이 한 식사가 최후의 만찬이 되어버렸다.

  칠순에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신 고 기우봉 선생님. 나이가 들었으니 혹시 병이라도 들면 학업이 중단될까 싶어 학기마다 한 과목씩 더 수강 했다는 말씀에 고개를 숙였다. 참여연대 백년지기 1호였던 선생님은 재생에너지 연구에 지대한 업적을 남기고 가셨다. 고매한 인품과 넉넉한 인심으로 간사들을 늘 자식처럼 챙겨주셨다. 두 분은 항상 느티나무의 거름이 되어 나무를 살찌게 하신다.

  이렇듯 참여연대라는 큰 느티나무에는 모두가 소중한 한 분 한 분이다. 하지만 나무의 가지인 회원여러분을 잊을 수가 없다. 특히 느티나무의 가장 큰 특징은 가지를 많이 거느린 나무이니 어찌 그들을 잊을 수 있으리. 

  이경휴 그녀는 자신의 삶에서 맑고 투명한 거울을 이렇게 많이 가져보기는 처음이었다. 거울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며 때로는 자신을 위로하고 치유하기도 했다. 글을 쓰는 순간은 참여연대 회원도 자원활동가가 아닌 자신을 담금질하는 수행자였다. 수 백 권의 책을 읽은 것보다도 인터뷰를 통해 만난 53인이 그녀의 삶을 빛나게 한다.

느티나무의 잎, 꽃, 뿌리는 나이순이 아니랍니다. 오해 없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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