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0년 12월 2010-12-01   1589

아카데미 느티나무-세상 이야기 들려주는 부모이고 싶다

세상 이야기 들려주는 부모이고 싶다

박현아
회원

 

“엄마, 지혜로운 게 뭐야?”

책을 읽다 말고 다섯 살 난 둘째아이가 묻는다. 아이가 읽던 책을 살펴본다. 그런데 그 책에서 말하는 지혜롭다는 것의 내용이 영 마뜩치 않다. 못생긴 며느리가 온갖 구박에도 지혜를 발휘해서 결국 시집식구들의 사랑을 얻는다? 물론 예상대로 며느리를 저주했던 주술이 풀려 원래의 예쁜 모습으로 돌아온다는 반전의 계기가 되는 사건은 있다. 그리고 비로소 시집식구들의 인정과 사랑이 시작된다는 것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식의 지혜를 아이에게 전해 주어야 하는 것인지 고민이다. 

  이렇듯 동화책 하나 제대로 읽어주는 것조차 만만치 않음을 새삼 깨달으며 지난 10월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의 <자녀와 부모가 함께 행복해지는 길> 강좌를 신청했다. 새로운 내용들도 많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강좌의 메시지는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었고, 심지어 무척 단순한 것들이었다. 아이와 많이 놀아주고 대화하며,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아이 스스로 선택하게 하기, 진정한 성공과 행복이란 무엇인지 고민하기……. 하지만 그 단순한 결론들을 온몸으로 깨닫고 실천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길들은 구도의 길 그 자체임을 이 땅의 모든 부모들은 알고 있다.


부모를 단련시키는 위대한 존재, ‘아이’

그래서인지 세 아이를 키워내며 겪어야했던 사연들을 같은 부모의 입장에서 이야기 해 주었던 이광구 선생님의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다. 대안학교를 졸업하고 지역의 사회적 기업에서 일하는 큰 아이에겐 격려와 지지를 보내고, 과학고에 다니지만 인문분야에도 관심 많은 둘째에겐 적절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선까지만 부모의 역할을 한정하고, 공부는 관심 없고 늘 말썽인 셋째에겐 그 아이만의 장점을 인정해주는 넉넉함… 그렇게 각기 개성과 능력이 다른 자녀를 키우며 얻어낸 교육철학에서 난 실로 엄청난 내공을 느꼈다. 아이를 키워보면 안다. 어쩌면 아이들은 이렇게 부모를 철학적으로 단련시키려고 태어났는지도 모르겠다.

  뒤돌아보면 자녀교육과 관련한 책들을 열심히 들여다보던 때에 내 가슴을 치는 말이 있다.

  “아이는 부모의 그릇 안에서 큰다.”

  내가 아이를 놓고 이렇게 저렇게 선을 그어대는 부모로 머무는 한 아이는 자신의 그릇을 제대로 키울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내 그릇 안을 채우고 있는 것들을 어느 정도 버려야 내 아이를 담아내는 큰 그릇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순간순간 아이를 향해 내던지는 나의 말들과 행동 속에 교묘히 숨어있는 내 욕심, 아이와는 상관없이 내가 그려낸 아이의 미래가 아이의 행복을 보장해 주리라 믿는 어리석음 따위들 말이다. 그러나 그게 쉽게 버려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큰아이가 재미로 시작한 서점의 영어 프로그램이 장사가 되자 서점 주인이 프로그램을 아예 학원으로 등록해서 운영한 일이 있었다. 함께 어울리던 아이들이 모두 학원에 등록하는 바람에 나도 별 고민 없이 휩쓸리고 만 것이다. 하지만 학원 프로그램이 되더니 내용은 어려워져만 갔고, 급기야 단어시험까지 보더니 그 시험 결과를 엄마들이 모인 자리에서 발표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엄마들의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했고 아이들도 점점 생기를 잃어갔다. 중간에 포기하면 낙오자가 될 거라는 생각 때문에, 아이가 커서 내던져질 무시무시한 경쟁의 세상을 생각하면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다.

  내 아이가 일등인 날은 나도 일등 엄마였고 그렇지 않은 날은 아이를 향한 짜증이 늘었다. 뭔가 잘못돼간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고 불안했다. 아이가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을 때에야 우린 그 학원을 나올 수 있었다.


“엄마인 나, 세상 공부를 멈출 수 없다”

흔들리는 부모들을 위해 이광구 선생님은 미국의 한 재무설계 회사 사장이 한 말을 소개했다. “우리는 당신을 부자로 만들어 줄 순 없지만 가난뱅이가 되지는 않게 할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아이를 천재로 키울 수는 없지만 자기 생활을 스스로 꾸리고 주위 사람들과 어울리고 사회에 기여도 하는 그런 평범하고 정상적인 아이로 키우는 것이 진짜 교육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은 이 비슷한 얘기를 다른 데서 들은 적이 있다. 바로 아이들 교육에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던 남편에게 서다. “부모인 우리가 이렇게 평범한 사람들인데 왜 우리 아이가 비범해야 된다고 생각하냐?” 맞다. 내가 이렇게 평범하니 그 속에서 나고 자란 내 아이는 지극히 평범한 것이 맞는 것이다. 만약 아이가 부모의 수준과 기대치를 넘어서는 무언가를 지니고 있다면 그건 그저 감사해야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만 있다면 아이가 받아오는 평범한 점수들이, 아이가 그려오는 밋밋한 그림들이, 아이가 보여주는 느리기만 한 발전 속도가 더 이상 나의 신경을 긁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아이들의 평범한 미래가 목표가 되고 꿈이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난 아이들한테 성공과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강의를 들으며 내가 실천할 수 있는 항목들을 추리고 하나씩 실제 행동으로 옮겨보았다. 강의에서 소개되었던 『비폭력 대화』라는 책도 읽고 늘 자매 사이에 일어나는 폭력적인 상황을 매끄럽게 중재하려는 시도도 현재진행형이다. 물론 우여곡절이 적지 않은 실천들을 해 가던 어느 날, 평소 무뚝뚝하고 시니컬하기만 한 큰아이가 잠자리에서 날 꼭 끌어안더니 “커서 엄마처럼 딸을 낳고 내가 엄마가 되면 나도 엄마가 나한테 해주었던 얘기들을 해 줄 꺼야!” 이런다.

  “무슨 얘기?”

  “하루하루가 즐거우면 되는 거라고. 내가 원하는 걸 즐겁게 하면 되는 거라고. 그 얘기.”

  작은 아이도 지지 않는다.

  “나도… 나도 얘기해 줄 꺼야!”

  “넌 뭔데?”

  “난 접시 깨도 엄마처럼 화내지 않고 치워줄 꺼야.”

  잠든 아이들 곁에서 오래오래 가슴이 먹먹했다.

  요즘 대학생의 40% 이상이 부모로부터 받고 싶은 건 돈이 전부라고 대답했다는 설문결과가 강의 중에 소개된 적이 있다. 각자가 자식한테 돈 말고 무엇을 주고 싶은지 무엇을 줄 수 있는지 고민해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난 과연 내 아이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나에게 부모는 세상에 대해 이야기 해주는 사람이다. 내가 아는 세상과 내가 살아온 세상의 이야기들을 천천히 길게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그것만이 내가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고 그 욕심만은 끝내 버리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난 지금도 세상 공부를 멈출 수가 없다. 그렇게 이 강의는 나에게 공부였다.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 강좌>

자녀와 부모가 함께 행복해지는 길
     

강좌기간  10. 07 ~ 11. 11
강사  김찬호 이재훈 제윤경 이광구
1강  가족은 어디에 있는가 
2강  사춘기 마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3강  소통의 어려움, 소통의 즐거움 
4강  우리 아이 경제교육, 어떻게
5강  공부, 얼만큼 잘 해야 할까 
6강  부모는 어떤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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