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2년 12월 2012-12-12   1972

[여는글] 가시나무 뿌리

가시나무 뿌리

청화靑和 참여연대 공동대표

어떤 부부가 있었다. 남편은 사업을 했다. 그는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부정적인 방법이라도 가리지 않았다. 그러나 아내는 부당한 방법으로 이익만 취하려는 남편의 사업에 반대를 했다. 정도正道에 맞게 사업을 하라는 뜻에서다. 그로 인해 부부간에는 언쟁이 많았다. 점점 싸움이 잦아지자 남편은 남자가 하는 일에 여자가 나서서 방해한다며 마침내 폭력까지 휘둘렀다. 폭력은 갈수록 심해지더니 급기야 그의 아내를 반신불수의 장애인으로 만들었다. 
  그런 가운데 사업은 날로 번창했고 거기서 창출된 재력으로 남편은 어렵게 사는 처가를 도와 전망 있는 사업체도 하나 마련해 주었다. 하지만 아내는 그것이 조금도 고맙지 않았다. 친정 부모는 환호하면서 사위를 능력자로 칭찬하고 반겼지만 아내의 눈에 남편은 그저 광적인 폭력배일 뿐이었다. 설령 남편이 자신의 친정을 재벌로 만들어준다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친정의 일이지 이미 반신불수가 된 자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의 내면에는 항상 남편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끓고 있었다. 그 때문에 감정이 안 좋을 때는 남편의 폭력을 공격적으로 비난하며 원망했다. 그러면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폭력은 당신이 자초한 거야. 만일 당신이 내가 하는 사업에 동조하고 순순히 따라주었다면 그런 일이 생겼겠어? 다 잘 살자고 한 건데 왜 반대를 하고 말썽을 부려? 그리고 내가 당신네 식구들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는데 감사한 줄 알아야지, 그깟 몇 대 때린 일만 문제 삼는 거야?”
이에 아내도 침묵하지 않았다. 
  “당신의 폭력은 범죄 행위야, 그런 당신이 나의 친정을 재벌이 되게 한다고 해서 그 죄가 없어질 것 같아? 만일 당신이 우리 식구를 세계적인 갑부로 만들어준다 한들 그게 또 나와 무슨 상관이야, 내 몸은 이미 이렇게 장애인이 되었는데……. 당신이 날 이 지경으로 만든 과거의 폭력 행위를 죄로 인정하고 진심 어린 사죄를 하지 않는 한 나는 당신을 끝내 용서할 수 없고, 용서하지 않는 한 나는 두고두고 당신의 폭력을 공격하고 비난할 거야, 알아?”
  이쯤에서 말하지만 여기 나오는 부부의 남편은 독재자 박정희 전 대통령이고 아내는 독재에 맞서 저항했던 민주화 세력이다. 그리고 아내의 친정 부모는 정부의 금융 지원에 힘입어 발전한 산업화 세력이다. 이 삼자 중에 제일 비극적인 사람은 아내이다. 아내는 보호받아야 할 남편에게 오히려 폭력을 당해 불구자가 되었고, 친정 부모로부터도 외면 받는 신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남편은 폭력에 대한 사과 한마디도 없이 저격에 의해 가버렸고, 친정 부모는 딸의 불행 위에 산업체의 기초를 놓았으면서도 딸의 입장과 주장과 피해에 공감할 줄을 모르니 그 처지는 그야말로 울 밑에 선 봉선화이다. 
  최근 18대 대선 가도에 박근혜 후보가 유력 주자가 되면서 5.16 군사쿠데타, 유신독재, 인혁당 사건의 사법 살인, 정수장학회의 재산 강탈 등이 거론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박근혜 후보를 압박했다. 아버지의 과오가 딸의 죄는 될 수 없다. 그러나 박근혜 후보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현재의 민주화된 정치 공간은 독재자 박정희와 싸워서 이뤄낸 결과물이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수많은 죽음과 피를 바치고 얻어낸 것이 지금의 민주적인 정치제도이다. 이를 안다면 독재자의 딸로서 이 민주정치의 공간에 첫발을 들여 놓을 때 먼저 그 많은 죽음과 피 앞에 아버지의 과오에 대한 심심한 사죄가 있어야 했다. 그 정도는 사람이 마땅히 가져야 할 양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이 없었다. 그러기에 2007년도에 공격 받았던 내용이 죽지 않고 2012년도인 지금도 펄펄 살아있는 것이다. 결국 궁지에 몰리고 몰려서 최근에 사과를 했지만, 그것은 대통령이라는 목표를 눈앞에 두고 했기 때문에 속이 보이는 짓에 지나지 않는다. 
  아직도 박근혜 후보의 눈에는 박정희라는 인물이 천륜적인 관계인 아버지로 밖에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정치인의 입장에서 아버지를 냉정하고 객관성 있게 조명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만인이 보는 박정희의 독재 상을 박근혜 후보만은 보지 못하고, 천하가 다 아는 박정희의 정치적 오점을 박근혜 후보만은 유일하게 모르는 것 같다. 
  흔히 과거에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그 잘못을 지적하면 미래를 보고 살자고 한다. 좋은 말이다. 그러나 과거는 사람의 뿌리이다. 그리고 그 뿌리는 미래를 결정하는 원인이 된다. 이 원인을 바꾸지 않으면 과거의 가시나무 뿌리에서 난 나무는 미래에도 역시 가시나무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코끼리가 하늘을 날지 않는 한
가시나무에서는 가시만 돋아날 뿐
꿀사과가 열릴 수 없다
그 뿌리가 가시나무 뿌리이기 때문이다.

가시나무 뿌리를 가진 사람은
아무리 그 입으로
사과꽃을 말하고
꿀사과를 노래해도
결국 그 손에서 나올 것은
가시나무 열매.

안 그러냐
가시나무 뿌리가
사과나무 뿌리로 변하지 않고
어찌 가시나무 가지에서
사과꽃 피고
꿀사과가 열리겠느냐.

그러니 사람아, 가시나무 뿌리를 가진 사람아
씨앗대로 다 드러나는 가을 날
바구니마다 담아주고 싶은
과일이 있거든, 과일이 있거든
가시나무 뿌리부터
과일나무 뿌리로 바꾸고 바꿀진저.

*본문의 시는 참여연대 공동대표 청화스님께서 참여사회를 위해 지은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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