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2년 01월 2012-01-02   2148

위대한 시민-만화가 고필헌 씨와 쫄패

메가쇼킹, 쫄깃센터

 

강지나 「참여사회」 시민기자

 

우리는 종종 바쁜 도시생활을 떠나 자연에서 유유자적하며 생활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래서 여행을 통해 그런 충동을 조금은 해소한다. 그런데 아예 과감히 도시생활을 접고 제주도에 정착한 ‘문화이주민’이 있다. 제주 협재 바다에 자리를 잡은 쫄깃센터의 쫄패(쫄깃센터 패밀리) 8명을 만나보았다.

  쫄패의 대장격인 메가쇼킹(@animaiko)은 무조건 재밌게 살기위해 게스트하우스 ‘쫄깃센터’를 만들었다고 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잘 놀 수 없을까 생각하다가 열게 된 것이다. 재미있게 살기 위한 방법이 많은데 굳이 게스트하우스의 형태를 생각한 것은 무엇일까?

  “처음에는 동생들과 홍대에 까페 형태로 이런 공간을 만들어 볼까 했는데, 제주도 여행했을 때 제주도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고, 동생들은 여행을 좋아해서 관련된 일을 계속 하고 싶어 했다. 게다가 해변이니까 비키니 입은 여자들도 많이 볼 수 있고, 게스트하우스니까 예쁜 여자분들의 화장한 모습뿐만 아니라 아침에 민낯의 부은 얼굴도 볼 수 있어서 좋다(웃음).” 

 

쫄패의 탄생

메가쇼킹은 인기 트위터리안이기도 하지만 ‘탐구생활’, ‘애욕전선 이상없다’ 등의 인기 만화를 그린 만화가이다. 쫄깃센터를 지으면서 잠시 만화 그리는 일을 접었는데, 앞으로 다시 그리고 싶은 ‘땡김’이 올 때까지는 할 생각이 없다. 처음 쫄깃센터의 구상부터 같이 시작한 쫄패는 3명인데, 그 외에 5명의 쫄패들은 모두 트윗을 통해 모집되었다. 이들 역시 인생을 재미있게 살고 싶어서 참여한 사람들이다. 쫄깃센터에서 일하면서 돈을 받는 것이 아니라 3~4일만 일하고 나머지는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원래 하고 있던 자기 사업을 하기도 하고, 제주도 여행을 떠날 수도 있고, 그냥 쉬면서 한가로이 지내기도 한다. 즉 쫄깃센터 일이 스트레스가 되거나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즐기면서 한다는 것이다.

  8명의 쫄패들은 그 형태만큼이나 각자 가진 사연도 독특하다.

  김희정 씨는 게임회사의 일러스트 작가로 일했었는데 직장생활에 지쳐 제주도에 왔다가 쫄깃센터에 눌러앉았다. 오은선 씨는 가난한 이들을 도와주는 의사가 되는 것이 꿈인데, 잠시 전문의 생활에 여백이 생겨 쫄패에 합류하게 되었다. 모두 20대에서 30대 사이인 이들은 직장생활로 경력을 쌓고 돈을 모아서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느라 바빠야 할 시기에 어찌 보면 한적한 협재바다에서 신선놀음을 하고 있는 셈이다.

  “처음에 트위터로 쫄패 모집광고를 냈을 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신청했었다. 도시생활이 주는 심리적 답답함, 경쟁적인 환경에서 받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뭐 도시에서도 잘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자기가 처한 상황에 대한 어떤 갈급증이 이런 돌파구를 찾게 하는 것 같다.”

 

자아를 찾아 온 여행자들

여느 게스트하우스들과는 좀 다르기 때문인지, 이용자들도 단순히 여행하는 사람들 외에도  장래 제주도에 정착하고 싶어 하거나 지금과는 다른 삶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이 온다. 매일 밤 투숙객들의 자유로운 대화의 장이 열리는데, 그날 다녀온 여행지 얘기부터 심각한 진로에 대한 고민, 연애고민까지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이 오간다. 게스트들 중에는 언젠가는 이런 게스트하우스를 차려보고 싶어서 쫄깃센터의 성공사례를 벤치마칭하러 온 사람들도 상당수 있다.

  쫄깃센터의 더 이색적인 모습은 마치 북까페나 도서관에 온 것 같은 열독 분위기도 함께 공존한다는 것이다. 쫄깃센터의 거실이 모두 책으로 둘러 쌓여있기 때문에 게스트들은 사뭇 진지하게 책 속으로 빠져들면서 휴식을 취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때그때 어떤 게스트 분들이 오시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는데, 하루만 묵어가는 분들보다는 장투자(한주 이상 머무는 장기투숙자)들을 중심으로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한 달간 실내에서 책만 읽으셨던 분, 한번 다녀가고 나서 잊지 못해 다시 오는 분들 등등 쫄깃센터를 즐기는 문화를 장투자들이 스스로 만들어 가고 있다. 그리고 자기 생활터전으로 돌아가고 나서도 쫄깃센터가 그립다는 피드백을 줄 때 가장 뿌듯해진다.”

  다녀간 장투자들 중에는 자아를 찾아 떠나 온 중학생이 있었는데, 그의 이야기가 메가쇼킹의 트윗을 통해 전해지면서 많은 인기를 끈 적이 있었다. 부모에 의해 강제로 보내졌던 그 학생은 처음에는 말도 없고 우울해 보였는데, 나중에는 스스로 한달간 머물기로 결정을 하고 매일 쫄패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즐거운 시간들을 보내다가 떠날 때는 매우 쾌활하고 밝은 얼굴로 돌아갔다.

  또한 쫄깃센터를 찾는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여성이었는데, 이런 현상은 쫄깃센터 뿐 아니라 대부분의 여행지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남자들에 비해 여자들이 삶을 재밌게 살아가는 방법은 더 많이 알고 있고 시도하고 있다. 남자들은 오히려 직장과 집만을 오가면서 뭔가의 압박감에 짓눌려 있는데 반해 여자들은 훨씬 사고의 틀이 넓고 자기 삶에 대해 적극적이다.”

 

제주 문화의 아지트, 쫄깃센터

고필헌 씨와 쫄패들은 이런 여행자들의 에너지를 모아서 단순히 게스트하우스 형태를 넘어 좀 더 생산적인 문화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꿈이다. 쫄깃센터가 일종의 중심지가 되어서 다양한 문화기획을 하거나 기존에 제주도에 존재하는 문화 역량들과 결합해서 한판 마당을 벌여보고자 준비하고 있다.

  “제주도 토착 귀신이야기만 수천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워낙 사람들이 많이 죽어나간 역사가 있으니까… 자연도 아름답고, 휴식을 취하러 온 여행자들도 많으니까 그런 부분들을 결합해서 내년에는 호러 영화제나 콘서트 같은 것을 열어 볼까 생각 중이다. 우리가 굳이 판을 만들지 않더라도 그런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돕는 형태도 고민하고 있다.”

  협재 바다의 쫄패들은 그 첫 시작으로 우선, 쫄깃센터의 준비부터 현재의 모습까지 1년 여  활동을 기록한 에세이집을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는 가끔 현실의 삶을 불평하면서 어디론가 떠날 것을 꿈꾸지만, 그곳에서 이미 새로운 삶을 직접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대단한 포부와 이상을 갖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함께’ ‘재밌게 살기’ 위해 시작한 실험들이 무척 진지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쫄패들의 실험을 관심있게 지켜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가끔은 다 내려놓고 그들을 직접 만나 실험에 기꺼이 동참하는 것도 ‘함께 재밌게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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