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2년 08월 2012-08-06   1729

[만남] 그렇게도 사진 좋아하는 사람

그렇게도 사진 좋아하는 사람
김세경 회원


호모아줌마데스 애엄마   사진 박영록 사진가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요? 전 나이 들었다고 느끼지 못 하는 데요.” 
  헉! 인생이라는 게 원래 뜻한 대로 되지는 않는다. 인터뷰도 마찬가지다.
  올해 69세라……. 〈은교〉이야기를 해도 좋겠다 싶었다. ‘네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 또한 나의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라는 가슴 시린 이야기를 그와 함께 나누고 싶었다. 그러나 이는 헛된 소망이었다. 중요 질문 하나가 빵꾸났지만, 그는 대신 지르박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걸로 족했다.

인연 하나, 사진과 만나다

“나이가 들고 직장도 다 관두고 나니 사람들 만날 때, 이렇게 명함 주고받을 때마다 참 곤란하더군요. 그래서 하나 만들어봤습니다.” 
  인사를 나누며 명함을 건네는데, 김세경이라는 이름이 그가 직접 충주의 어느 곳에선가 찍었다는 일몰 사진 위에 새겨져있다. 그리고 한켠에 쓰여 있는 또 다른 글귀, ‘그렇게도 사진 좋아하는 사람.’ 
  “참여연대 회원모임인 참여현상소 회원입니다. 그 모임에서 지난 봄에 8주짜리 강의 <시니어, 사진과 조우하다>를 진행했는데 그 강의를 제가 맡았었죠.”
 
  인생의 후반전을 준비하는 시니어 세대. 새로운 취미 하나 가져보려 해도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막막할 그들에게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어 그는 강사를 자원해 맡았다. 강의는 무료로 진행되었고, 최근엔 친절한 사후 서비스까지 보탰다. 
  “근래에 여행 사진에 대한 강의를 들었어요. 그 내용을 요약해 제 강의를 들었던 분들에게 메일로 보내드렸더니, 강의 끝난 후에 AS까지 해주는 강사는 저밖에 없다고 그러더라구요.” 
  은근한 자랑과 함께 그가 환한 웃음을 터뜨린다. 게다가 강의의 후속 모임으로 수강생들과 출사도 한다. 
  “7월엔 경기도 광주에 갔었고 8월엔 수원 화성으로 갑니다. 순조롭게 진행되면 언젠간 그 결과물들을 모아 전시회를 열 수도 있겠죠.” 
  그 전시회에는 어떤 사진들이 걸릴까?
  “강의 막바지에 지축지구로 출사를 나갔어요. 뉴타운을 짓겠다고 다 파헤쳐 놓았더군요. 그 자리에 살던 사람들은 어디론가 쫓겨 갔겠죠. 그런 풍경들을 있는 그대로 찍었어요. 그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의미가 있는 거죠.”
  참여현상소는 바로 그런 모임이다. 멋진 구도와 예쁜 사진을 위한 테크닉을 배우는 곳이 아닌, 세상으로부터 주목받지 못해 늘 그늘지고 축축한 삶의 자리를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이름 하여 ‘독립미디어활동가 그룹’! 2006년 5월 평택 대추리에서 있었던 군경들의 강제진압과 폭력적인 해산 과정을 경험하면서, 이 땅에서 버젓이 일어나는 일을 사실 그대로 전달해 줄 미디어가 하나도 없다는 절망이 그들의 슬픈 시작점이 되었다. 
  “사진은 카메라가 찍어주는 게 아니라 빛이 찍어주는 거라는 말이 있습니다. 각자의 마음 안에 있는 빛을 찾아가는 것이죠. 이번 사진 강의도 누가 누굴 가르치고 배우는 게 아니라 그저 함께하며 같이 성장하는 마음으로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한 장의 사진에도 마음을 담으려 한다.
  “한 컷을 찍더라도 혼이 들어가 있느냐가 중요해요. 그림을 봐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 수준의 테크닉을 구사할 줄 아는 화가들은 많이 있어요. 그러나 거장의 세계를 담아내는 사람은 적어요. 혼을 담으면 예술가가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저 장인에 불과한 거죠.”

인연 둘, 참여연대와 만나다

해남 땅끝마을의 장엄한 일출과 안면도의 안개에 취해있다가도, 다시 그 아름다움 뒤편의 일그러진 얼굴을 기억해내는 그다. 지금은 사진에 열심이지만 대학 시절엔 조각을 공부했고 국전에 출품해 두 번이나 입선을 했다.  
  “대학 졸업하고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쳤어요. 그러다 아내가 많이 아팠는데 병원비다 뭐다해서 경제적으로 어려워지기 시작했어요. 고민 끝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그곳에서는 생업 때문에 조각을 할 짬을 낼 수 없었고요. 그렇게 지내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 조각을 다시 하려니 힘들더군요. 칼을 잡는 손도 어색하고 마음먹은 대로 되지도 않고……. 그래서 조각을 그만두게 되었어요.”
  더 이상 조각을 할 수 없는 그의 빈손. 그 허전함을 카메라가 메워주고 있는 것이었다. 
  그나저나 왜 꼭 집어 미국으로 가신 건지?
  “아메리칸 드림이요? 글쎄요……, 미국 사람들은 미국을 기회의 나라라고 하더군요. 균등한 기회Equal Opportunity가 있다고요. 근데 실제로 살아보니 나한테는 해당 사항이 없는 말이었어요.” 
  직접 차린 광고회사를 꾸리며 타향에서 보낸 30년. 계산대로라면 강산이 세 번 바뀌었어야 맞겠으나 요즘은 ‘누구’ 때문에 시간 단위로 바뀐다. 이러다 대한민국 지도는 실시간 업데이트가 필요해질지도 모를 일이다. 30년 만에 돌아온 한국, 어떠셨어요?
  “중간 중간 한국에 왔었어요. 그땐 좋은 것만 눈에 보이고 나쁜 건 안 보이더라구요. 다시 돌아와 살아보니 그제야 나쁜 것들이 하나하나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돌아오자마자 한 일이 촛불시위에 참가하는 거였습니다.”
  그런 그를 두고 친구들은 좌빨이라며 비난했다. 그렇게 그의 한국 생활은 또 다른 소수자의 삶으로 시작되었다. 
  “그래도 가족들이 응원해주니까 괜찮아요. 특히 아들은 뉴욕에 있는 소수민족을 위한 NGO에서 일하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제가 참여연대에서 이러이러한 활동을 한다고 얘기하면 이해도 잘해주고, 좋다고 그래요.”
  미국의 추악한 역사를 들려주는 아버지에게 반항하던 어린 아들은 자라며 점점 아버지를 닮아가기 시작했다. 어느 날 9.11테러에 관해 의문을 제기하는 책을 쓰더니 여기저기 강의를 하러 다니기 시작한 거다. 그래서 블랙리스트에 올랐는지 가끔 공항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아버지는 담담한 목소리로 전한다. 불의한 시대에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은 그렇게 서글픈 것들뿐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아버지의 셔츠 주머니에서 낯익은 물건 하나를 발견했다. 참여연대 볼펜이다. 그의 두 번째 인연, 참여연대에 대해 물었다. 
  “아카데미 강의를 들으면서 인연을 맺게 됐죠. 다른 곳의 강의보다 보편적인 주제들이 많아서 좋더라구요.” 
  그의 주위엔 여전히 보수적인 친구들이 더 많다. 어버이연합도 그가 속한 세대의 군상이다. 그러나 셔츠 주머니에 떡하니 참여연대라 새겨진 볼펜 한 자루를 꽂고 당당히 길을 나서는 그와 같은 어버이들도 있다. 내년에 있을 어버이날에는 모두 자신의 부모님들 가슴에 참여연대 볼펜 한 자루씩을 꽂아드리기를, 일만 이천 참여연대 회원들에게 강력히 추천하는 바이다. 

인연 셋, 지르박을 만나다

“귀국하고 영어를 가르쳐 보려고 테솔 코스에 등록했어요. 30년이나 미국에서 살았으니 어느 정도 자격증만 갖추면 취직이 될 줄 안 거죠. 근데 아무리 이력서를 내도 연락이 안 오는 거예요. 이상하다, 그러고 있는데 주변 사람들이 이유를 알려주더라구요.”
  돌아왔을 때 이미 나이가 지긋했던 그가 용감하게 이력서를 내놓고 ‘왜 연락이 안 오지?’하며 갸우뚱했을 상상을 하니 살짝 당황스럽긴 하다. 이왕 나이 얘기가 나왔으니 이 틈에 슬쩍 민감한 것을 물어야겠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주위 사람들이 저보고 자꾸 나이 들었다고 하는데, 사실 전 나이 들었다는 걸 못 느끼겠어요.” 
  <은교> 이야기가 빵꾸나는 바로 그 대목이다. 그리고 더불어 그의 이야기가 단순한 허세가 아님이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일주일에 두 번씩 아내와 함께 지르박과 블루스를 춥니다. 한두 시간 추고 나면 발바닥에 땀이 다 나요.” 
  지루박인지 지르박인지 명칭조차 헷갈리는 녀석. 검색을 해보니 ‘지터벅Jitterbug’이란다.

  1940년대 미국에서 유행했던 빠른 춤이라는 설명. 그러나 Jitterbug이라 쓰고 지르박이라 읽는 우리에겐 어쩐지 좀 우스운 이름이기도 하다. 그 춤을 춘지도 벌써 2년 반이나 되었다고 한다. “춤의 매력이라…, 집중하게 만드는 힘 아닐까요. 순서도 그렇고 음악도 스텝도 집중해야 하거든요. 사실 전 노래를 배우고 싶었어요. 그래서 싫다는 아내를 두고 혼자 배우러 갔는데, 80명 중에 남자는 저 하나더군요.  그래도 그 사이에 끼여 함께 노래를 불렀는데, 목 수술을 하는 바람에 그만 두었죠. 근데, 제가 노래 배우러 다니는 걸 아내가 안 좋아하더라구요.” 

  당연하죠. 그걸 말씀이라고……. 아, 남자들은 육십, 칠십이 되어도 여자들의 마음을 이토록 모른단 말인가.

  “그래서 아내가 원하는 춤을 같이 하게 된 거예요. 그리고 시간이 날 때면 함께 사진을 찍기도 해요. 제가 가르쳐주기도 했죠.” 
  그렇게 해서 나온 아내의 사진을 주위 사람들이 보고는 처음인데도 잘 찍었다고 칭찬했다며 마지막까지 아내에 대한 자랑을 놓지 않는다. 저 별로 샘 안 나요, 진짜, 끙……. 원래부터 그렇게 금실이 좋으셨어요?
  “금실이 좋긴요. 우린 엄청 싸웠어요.” 
  말은 그렇게 해도 그는 좋은 남편임에 틀림없다. 요즘 나이든 부인들은 삼식이니 뭐니 해서 집에서 하루 세 끼를 꼬박꼬박 챙겨먹는 남성을 짐스러워할 뿐, 남편과 도통 놀아주질 않는다. 그런 세상이니 노년에도 아내가 남편과 동행하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면 그건 바로 좋은 남편이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 아닐까. 

우리 뿔 같은 거 없어요

<시니어, 사진과 조우하다> 강의에 그의 친구가 왔었다. 보수적인 그 친구에게 절대 정치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몇 번이고 당부했다. 강의를 들으며 그곳에 모인 참여연대 회원들을 계속 지켜보던 친구가 어느 날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네…….”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지금까지 참여연대가 사람들에게 우리 사회의 정의라든가 부패 문제에 대해 일깨워주는 노력을 계속해왔다고 생각해요. 다만 그런 노력들이 전체 사회 구성원들과 함께 가면 좋은데, 그렇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지요. 바른 길을 가는 사람은 항상 외로운 법이에요.”
  참여연대 회원인 그도 나도 모두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다. 단지 그의 말처럼 ‘바른 길을 가는 외로운 사람’ 곁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것일 뿐. 
  그리고 그 외로운 길에는 머리에 뿔도 없고 얼굴도 빨갛지 않은 이들이 함께 걷고 있다.  

▶김세경 회원이 찍은 사진(우)  ▼김세경 회원 부부(하)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