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2년 08월 2012-08-06   1358

[살림] 누가 나에게 이 길을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김민수 청년유니온 기획팀장

 

민수야, 글 하나만 쓰자

 

  2012년 8월, 경제적 동물의 범주에서 나를 규정할 수 있는 표현은 없다. 나인 투 식스로 책상머리에 앉아서 수행해야 하는 업무가 없다는 의미이고, 나의 지갑을 보전해 줄 고정적인 수입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며,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백수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딱히 일이 없지는 않다.

 

  ‘민수야, 글 하나만 쓰자.’

 

  나는 누가 깨우지 않으면 12시간 꼬박 숙면을 취하는 습성이 있는데, 머리맡에 놓아 둔 핸드폰에서 격렬한 진동이 울린다. 청년유니온 사무국장의 지엄한 카톡이다. 짜증을 섞어 수차례 이불을 걷어찬 뒤에야 눈을 비비고 액정을 확인한다. 성명서를 써야 할 일이 생겼거나 언론사에서 기고 요청이 들어왔으리라. 글쓰기 귀찮다고 우는 소리 하는 것도 귀찮다. 이제 나는 1/5갑의 담배를 태우며 키보드를 두드리면 된다. 음, 사회적 동물이라는 범주에서 나를 규정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표현은 ‘청년유니온 활동가’이다. 

 

  나는 청년유니온에서 기획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상근비가 나오지 않으니 장난 섞인 자조로 ‘노예’라 표현하기도 한다. 청년유니온에서 진행하는 기획 사업을 주로 담당하고, 기획할 일이 없으면 대개는 글을 쓰고, 쓸 글이 없으면 기타 등등의 잡무를 전천후로 수행하고 있다. 대체 나는 왜 이러한 사회적 동물을 자임하고 있는가.

 


이게 말이 돼?

 

고등학교에 다니던 풋풋한 시절(?), 나의 별명 중 하나는 ‘이게 말이 돼?’였다. 별명이 대개 한 단어로 만들어진다는 보편에 비추어 봤을 때에는 대단히 특수하다. 이 별명의 의미는 간단하다. 늘 저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는 뜻이다. 학교 측에서 급식업체 선정 과정을 공개하지 않았을 때, 쉬는 시간을 임의적으로 단축시켰을 때, 이해할 수 없는 과제가 부여될 때, 나는 이게 말이 되느냐고 물었다. 대단히 큰소리로 비난하고, 전혀 행동하지 않는, 세상에서 가장 피곤한 스타일의 인간 군상이었던 셈이다. 

 

  20세 성인이 보기에는 너무도 하잘 것 없는 문제들이 너무도 치열하게 느껴졌던 17세 소년은 학교 밖 세상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가장 결정타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그분이었다.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를 고등학교 기숙사에서 지켜본 나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나랏놈들이 헛짓을 과하게 하면, 내가 밥을 먹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공부하는 친구들을 붙잡고 일장 연설을 늘어놓으면서 정작 촛불집회에는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던 나는 우여곡절 끝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게 말이 돼?’의 연장선에서 재학 중 내가 저지른 사고들을 돌이켜보면, 졸업은 가히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술에 낚여, 연대를 겪어, 희망을 보아 
 

비판만 하는 피곤한 군상에서, 행동하는 양심으로 거듭나기 위해 나는 청년유니온에 가입했다, 면 뻥이다. 동갑내기 친구가 당시에는 출범도 하지 않았던 청년유니온의 존재를 용케도 파악했다. 우석훈 박사의 블로그를 눈팅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모양이다. 이 친구는 청년유니온의 모임에 함께 가자고 나를 꾀었다. 머리털 나고 처음 만난 이들과 새벽을 찢어가며 술을 마신 나는 말 그대로 ‘낚여서’ 계속 청년유니온 행사에 나가게 되었다. 대학 신입생이 동아리 첫 모임 나갔다가 선배들에게 낚여서 학생운동을 시작하는 것과 비슷한 수순이리라. 나를 청년유니온으로 인도한 친구는? 첫 모임 이후로 등장하지 않았다. 이런 젠장.

  나는 이 공간에서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인간의 삶과 마주했다. 취객들의 몽니를 상대해가며 담뱃갑에 바코드를 찍으면서도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편의점 알바의 절망과, 자신은 정작 사 먹지도 못할 커피를 만들어 팔면서 8시간 내내 서서 일해야 하는 커피숍 노동의 야만과, 피자를 30분 안에 배달하기 위해 질주하다 마주 오는 버스를 발견하지 못한 대학생의 비극을 마주했다. 나는 ‘이게 말이 되느냐고’ 물었고, 선배들은 ‘말이 안 된다’고 답했다. 

  말이 안 되는 세상을 ‘나 혼자서’ 마주하면 대안 없는 비판으로 귀결된다. 말이 안 되는 세상을 ‘우리 함께’ 마주하면 행동하는 양심으로 거듭난다. 그렇게 우리는 편의점 알바의 절망을 고발하고, 커피숍에서 떼인 돈을 받아내고, 청년들을 죽음으로 이끈 피자 30분 배달제를 폐지시켰다. 청년들이 상식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당위는 조금씩 현실이 되었고, 이 작은 현실은 더 큰 현실을 실현하기 위한 힘으로 거듭났다.

  대기업이 나쁘다고 욕하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과 싸워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쟁취한 것이다. 근로기준법이 사문화되었다고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근로기준법을 들먹여서 사회에 그 뿌리를 내리꽂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식이라면, 어쩌면 정말로, 세상이 바뀔지도 모른다는 희망이라는 이름의 가능성을 끌어안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가열하게 싸우고, 유쾌하게 웃음 짓는 삶의 방정식이다.

나의 답은 이렇다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걷게 된 계기를 묻는다면, 새벽을 찢어가며 마신 술을 답하겠다.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걷는 이유를 묻는다면, ‘말이 안 되는’, 현실을 답하겠다. 누가 나에게 이 길의 의미를 묻는다면 ‘말이 안 되는’, 현실과 대립하는 희망을 답하겠다. 누가 나에게 이 길의 미래를 묻는다면, ‘이렇게 살아도 어떻게든 입에 풀칠은 하겠지’라는 근거 없는 낙관을 답하겠다. 누가 나에게 이 길을 묻는다면, ‘당신도 이 길로 오라’고 답하겠다. 

 

  마음으로 응원하겠다는 분들을 자주 뵙는다. 마음뿐 아니라 현찰로도 응원해주시면 참 좋겠다. 자본주의 만세. 이런, 돌이 날아오는군. 

 

 

김민수

청년유니온 기획팀장과 백수를 겸임하고 있다. 쉽게 용인되지 않는 문장을 구사해서 자주 욕을 먹지만, 별로 개의치 않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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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은 네 명의 필자가 번갈아 연재합니다. 김민수 님의 글은 12월호에서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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