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2년 11월 2012-11-05   1371

[특집] 농민을 위한 나라는 가능하다


농민을 위한 나라는 가능하다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


 

농민도 이 나라 국민이다

 

박근혜가 말하는 국민 행복에 농민의 행복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적어도 이명박 정권의 살농殺農정책을 뼈저리게 겪었던 농민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렇게 말한다. 나 역시 그렇다. 그렇다면 안철수와 문재인은 어떤가? 아직 안철수의 생각에 식량주권과 먹거리 기본권이 분명하게 각인되어 있지는 않은 듯하다. 사람이 먼저라고 외치는 문재인은 지난 10월 18일 식량주권과 먹거리 기본권을 말하기는 했지만 확실한 믿음을 주기엔 2% 부족해 보인다.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에 관한 부분이 빠졌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대선 후보 중 식량주권과 먹거리 기본권의 개념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 핵심과제의 하나인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를 분명하게 제시한 것은 이정희가 유일하다.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는 농민이 이 나라의 국민으로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주요 농산물의 가격과 농가의 소득을 안정적으로 보장하는 데 있어서 국가의 책임성을 제도화한 것이다. 그동안 수출 위주 경제성장을 위해 일방적으로 희생되어 왔던 농민들이 앞으로는 안심하고 농사지을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의 조건을 정책과 제도를 통해 마련하자는 의미다.


식량주권, 국민의 먹거리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

 

농업의 위기와 먹거리 위기는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농산물 시장 개방과 농업 구조조정으로 농업이 몰락함에 따라 식량자급률은 최근 22.6%로 시장 최저치를 기록하여 국민의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기능이 사실상 무너지고 있다. 자급률이 낮은 만큼 국민의 밥상에 오르는 먹거리의 3/4 이상을 국외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외국에서 수입되는 먹거리는 초국적 자본이 지배하는 글로벌 푸드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고, 중국산 수입 농산물도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이 때문에 먹거리 안전에 대한 국민의 불안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고, 많은 전문가들이 한국도 먹거리 위험 사회로 진입했다고 평가한다. 

 

  그뿐 아니라 국내 농업의 생산·공급 기반이 취약해지면서 잦은 기상이변으로 인한 작황 불안이 가격의 폭등 혹은 폭락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졌다. 과거보다 가격폭등 및 폭락의 발생 빈도도 증가하고, 피해 강도는 더욱 커졌다. 이러한 가격 불안은 양극화 사회에서 서민들의 장바구니에 부담을 주고, 나아가 생계유지의 고통을 가중시킨다.

  
  한편, 사회의 양극화는 먹거리에도 양극화를 불러왔다. 고소득층일수록 안전한 먹거리를 소비하고 저소득층일수록 위험한 먹거리에 노출되는 흐름이 고착화되고 있는 것이다. 소득수준에 따른 먹거리 차별은 결국 건강 및 질병의 격차를 커지게 하고 사회적 의료비용을 증가시킨다. 

  식량주권이란 먹거리 문제를 개인과 가계의 책임으로 돌리지 말고,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국민의 먹거리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첫째, 국민에게 필요한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생산·공급하는 기반을 강화하고 식량자급률을 높여야 한다. 둘째, 먹거리 안전을 위해 지속가능한 생태농업의 기반을 확대하고, 이와 연계한 지역먹거리체계local food system, 공공급식 프로그램 등 사회적 경제 영역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셋째, 애그플레이션Agflation과 농산물의 가격폭등으로부터 국민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주요 농산물의 가격안정장치를 제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넷째, 먹거리의 양극화에 따른 건강과 빈곤의 불평등을 해소하고 국민의 보편적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먹거리와 농업 그리고 복지의 적극적인 결합이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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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주권, 생산자 농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


식량주권은 국민의 먹거리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먹거리의 생산자인 농민의 기본권도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농민이 안심하고 생산 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농산물의 가격정책과 소득정책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복지정책이 중요하다. 

  이렇게 국민의 먹거리 기본권과 생산자 농민의 인간다운 삶을 실현하기 위한 대안 정책은 아래 그림과 같이 포괄적으로 제시할 수 있다. 핵심 정책 과제는 첫째, 식량자급률 50% 목표 실현, 둘째,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 셋째, 먹거리 복지를 위한 기초농산물 지원 프로그램 등이다. 또한, 위와 연계된 주요 정책 과제로는 ①중소 가족농 중심의 협동체 육성 ②농지자원의 보존 ③지속가능한 생태농업 발전 ④먹거리 안전관리 체계 강화 ⑤한반도 공동 식량자급 확대 등이 있다.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로 농민을 국민으로 


기초농산물의 취약한 국내 생산·공급 기반을 강화하고, 식량자급률 50%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농산물의 생산비를 보장하는 가격 정책과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소득 정책이 필수적이다. 또한 농산물 대란 및 가격 폭등을 방지하고 가격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적극적인 가격 정책이 필요하다.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는 이러한 적극적인 가격 정책과 소득 정책을 포괄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주요 농산물을 대상으로 정부의 직접수매, 농협 등 생산자단체를 통한 약정수매(계약재배) 등과 같은 방식을 통해 안정적인 생산기반을 유지하고, 생산비를 보장하는 품목별 최저가격(하한선)과 국민이 수용 가능한 최고가격(상한선)을 설정하여 기초농산물의 가격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도농 간 소득격차 해소, 농업의 다원적 기능 유지 등을 위해 직접지불제도를 통한 소득보조가 병행되도록 한다. 물론 이러한 방식들은 모두 공적 재원을 활용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국가가 책임지는 제도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도에 대해 몇 가지 오해가 있는 부분은 별도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 우선 세계무역기구(WTO)하에서 가능한가 하는 점이다. 물론 가능하다. 정부의 직접수매는 총액보조금 한도 내에서 수행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고, 농협 등 생산자 단체의 약정수매는 규제대상에 포함되지도 않는다.

  다음으로 시장에 개입하는 가격 정책이 가능한가 하는 점이다. 당연히 가능하고, 또 필요하다. 미국, EU 등 어느 나라든지 구체적인 방식의 차이는 있지만, 농업 정책의 핵심으로 가격 정책과 소득 정책을 병행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만 가격 정책을 사실상 폐지한 상태에서 소득 정책만 시행하는 기형적인 상황이다. 세계적인 추세에 맞도록 가격 정책과 소득 정책의 병행을 통해 정상적이고 균형 잡힌 농업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막대한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점이다. 재원 조달 방안은 충분히 제시되었다. 2011년 현재 정부의 가격 및 소득 정책 재원으로 약 3조 원 가량이 이미 사용되고 있다. 이것을 우선 활용하고, 부족한 부분은 연간 약 150조 원에 달하는 농협 상호금융에서 조달하는 방법이 있다. 농협 금융사업 자체가 원래 농협 경제사업에 필요한 재원조달에 목적이 있다. 이 목적에 부합하게 사용하면 되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시중금리와 상호금융 금리 차액 부분 정도만 정부가 이차보전 방식으로 해결하면 된다.


인식의 전환이 첫걸음


먹거리는 국민의 삶의 질을 유지고 높이는데 가장 중요한 근본이다. 따라서 먹거리에 대한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 책무다. 특히나 전 지구적 식량위기가 확산되고, 먹거리 위기가 심화되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더욱 국가의 높은 책임성과 적극적인 역할이 요구된다. 

  그동안 UR/WTO 체제를 핑계로, 시장논리를 맹신하면서 먹거리에 관한 국가의 책임과 역할을 방기한 결과가 지금의 먹거리 위기로 나타나고 있다. 비록 늦은 감이 없지는 않지만, 지금이라도 식량주권과 먹거리 기본권에 관한 국가의 책임과 역할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 글에서 제시하고 있는 대안의 먹거리 정책 패러다임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중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차근차근 실현해 갈 수 있는 대안이다. 결국, 정부의 정책 방향 전환에 대한 인식이 첫걸음이라 할 수 있다. 

 

 

장경호

전국농민회총연맹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이 공동으로 설립한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겸임교수. 농업의 새로운 대안 패러다임으로서 식량주권과 먹거리 기본권을 제도화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사회적 경제, 협동조합, 보편적 복지와 같은 사회적 의제와 농촌/농민문제의 해법을 연계하는 부분도 관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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