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2년 10월 2012-10-08   3404

[특집] 공정무역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공정무역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김성희 한살림연합 홍보지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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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살 때 습관처럼 공정무역 제품인지 살핀다. 유기농 커피라면 더욱 좋고 그늘재배라면 마음이 편하다. 그늘에서 재배했다는 말은 굳이 열대우림을 파괴하지 않고 숲속 큰키나무 아래에서 자연스럽게 자라난 커피나무에서 채취했다는 말일 테니 나의 소비가 그나마 세상에 폐를 덜 끼치리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 

  어떤 이들은 ‘문명의 위기’라는 말까지 한다. 날로 심각해지는 기후변화와 식량위기, 국가·계층 간 부의 편중, 가난과 굶주림, 전쟁……. 경제규모가 커지고 개인소득이 늘었다지만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이 우리 세대가 누린 만큼이라도 안정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러나 점점 나빠지는 현실을 제어하기 위해 개인들이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어 보인다.

 

여성환경연대-1

 

더 나은 소비=더 나은 세상? 

 

2003년 이후 우리나라에도 번지기 시작한 공정무역이나 윤리적 소비 같은 말들이 이제는 하나의 사회적 트렌드가 되었다.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현대인에게 단지 커피 한 잔 마시는 일로 세상을 나아지게 할 수도 있다는 말은 적잖은 위안이 된다. 공정무역은 1946년 미국의 시민단체인 텐사우전드빌리지Ten Thousand Villages, 1950년 영국의 옥스팜Oxfam이 푸에르토리코 원주민과 중국 난민을 지원하기 위해 이들이 만든 수공예품을 판매하면서 시작되었다. 세계무역은 끊임없이 더 값싼 원료 산지와 노동력을 찾아 이동하는 자본에 의해 제국주의적 수탈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확장되어 왔고, 이는 1세계 국가 국민들이 더 많은 소비를 향유할 수 있도록 한 반면, 제3세계 민중의 빈곤과 기아, 그리고 환경 파괴를 심화시켰다. 

 

  공정무역은 이러한 문제의식에 뿌리내리고 꾸준히 설득력을 키워왔다. 지난 7월 독일 본에서 열린 국제공정무역기구 회의 자료에 따르면 2011년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50억 유로(약 7조2천5백억 원)에 가까운 공정무역인증 상품이 소비됐다고 한다. 

  공정무역은 이제 단순히 이념적 구호의 수준이 아니라 의미 있는 대안적 경제 흐름이 된 것 같다. 스위스에서는 수입 바나나의 절반 이상(55%), 영국에서는 거래되는 설탕의 42% 가량이 공정무역인증상품이라고 한다. 이 자료에 따르면 뒤늦게 시작한 우리나라에서도 지난해 1,700만 유로(약 240억 원)의 공정무역물품이 거래됐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2003년 아름다운가게가 시작한 이래 YMCA, 두레생협연합회, 한국공정무역연합, 여성환경연대(페어트레이드코리아 구루), 아이쿱생협 등이 공정무역 커피, 설탕, 초콜릿, 올리브유나 의류 소품 등을 수입해 판매하고 있다. 그러나 공정무역에 대해 ‘좀 더 나은 값으로 물건을 사주는 방식으로 초국적 자본이 제3세계 민중을 수탈하는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겠는가?’, ‘제3세계 민중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우리는 더 많은 설탕과 커피와 바나나를 소비해야만 하는가?’ 이런 의문을 던지는 이들이 적지 않다. 물론 공정무역이 정당한 가격만 강조하는 게 아니고 친환경적인 농업, 생산자들의 복지와 자립을 지원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은 알지만, 본질적으로는 공정무역 역시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닌 기호식품의 무역을 증대시키고, 이 과정에서 화석연료의 소모와 탄소 발생을 증가시켜 지구 환경을 파괴하고, 히말라야 산악 오지나 열대우림 속의 원주민들마저 세계시장으로 끌어내 편입시키면서 수출용 단일작물재배에 매달리게 한다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다고 비판한다. 우리나라 최대의 생협인 한살림이 공정무역을 하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아름다운커피님-2012 세계 공정무역의 날 한국 페스티벌-1

 

공정무역+너머

 

아무래도 커피를 마시는 것만으로 세상이 나아지리라 생각하는 것은 너무 낭만적인 기대인 것 같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겪고 나서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각국의 생산자 조직과 한국의 한살림과 두레생협연합회, 일본의 생협 시민단체 등은 공정무역에서 한걸음 나아가기 위해 ‘호혜를 위한 아시아민중기금’을 설립하고, 그 해 9월 서울에서 창립 총회를 열었다. 

 

  2009년 7월 기금 설립을 제안하기 위해 한살림을 방문했던 일본의 그린코프생협연합회 유키오카 전무는 자신들이 민중교역을 이십 년 가까이 했지만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는 “생산지는 대개 서구 제국의 식민지를 겪으면서, 스스로의 요구가 아니라 식민지 종주국의 필요에 따라 커피나 사탕수수 단일작물 플랜테이션을 하게 됐다. 포르투갈, 일본, 인도네시아의 식민지 지배를 겪은 동티모르의 농작물은 거의 커피뿐이고 주식인 쌀은 커피를 팔아서 베트남에서 사다먹는다. 민중교역만 지속하면 이들의 의존적인 상태를 고착화한다. 동티모르 민중이 쌀농사를 복원하고 자립적인 삶을 살 수 있게 지원하는 일을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한살림을 빼고는 대개 공정무역을 해오던 단체들이라 기왕에 해오던 공정무역 제품, 바나나 1kg에 100엔씩, 새우 100g에는 5엔씩 기금을 쌓아가기로 했다. 이 기금을 생산자들의 자립과 복지를 지원하는 기금으로 싼 이자로 빌려주기로 했다. 한살림은 해마다 1만 달러씩 기금을 출연하고 있다. 아시아민중기금은 교역 자체보다는 소비자들과 생산지 민중들 간의 교류와 연대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다. 

 

  나는 커피를 줄여가며 궁극에는 끊을 생각이다. 그러나 그 전까지는 가능하면 공정무역커피를 선택할 것이다. 공정무역에 나서고 있는 이들은 그것이 세상을 구할 근본적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지는 않다. 다만, 당장에 생태순환적인 자급자족의 삶을 결단하기 어려운 이들에게 세상에 조금 덜 해로운 소비를 하자고 권하는 정도일 것이다. 비판하는 측도 공정무역이 선의에서 출발했다는 것까지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바닥이 드러나고 있는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대규모 교역의 종말이 멀지 않았다는 점, 생산자든 소비자든 식량 자급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한 아무리 ‘공정하고 윤맂거인’ 교역도 위태로운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김성희
3벌식자판 사용자. 산길 걷기, 자전거 타기를 좋아함. 저소비 자급자족, 괴로움 없는 자유로운 삶을 꿈꾸며 한살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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