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2년 05월 2012-05-02   2449

[경제] 지하철 9호선과 광우병 소, 그리고 ISD

지하철 9호선과 광우병 소, 그리고 ISD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원래 그런 분인 줄 알았지만 박원순 시장, 참 잘 뽑았다. 우리가 언제 투표한 뒤 이렇게 만족해 본 적이 있었나? 지하철 9호선, 정확히 말해서 서울9호선운영 주식회사가 총선이 끝나자마자 지하철 요금을 500원 올린다고 발표했다. 박원순 시장은 즉각 사장 해임 검토, 사업자 취소 검토 등 초강력 카드를 빼 들었다.

 

 

민간 기업만 살찌운 민관합작

민자사업 제도란 철도나 도로, 다리 등 인프라 시설을 민간 자본이 건설하고 일정 기간 동안 요금으로 비용을 회수하는 제도다. 민관합작이란 이름으로 무슨 예산 절감의 비결이라도 되는 듯 한참 유행했는데, 대부분 조삼모사로 판가름 났다. 민간기업은 건설 비용을 줄이려 애쓸 것이고 정부는 국민 세금을 쓰지 않아도 된다니 꿩먹고 알먹는 것으로 보였지만, 결과는 그 반대였던 것이다. ‘최소운영수입보장제(MRG)’가 그 주범이다. 이제는 그 폐해 때문에 중앙정부에서도 계약에 넣지 않기로 한 규정이다. 민자 고속도로의 요금이 터무니없이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높은 요금을 내든지, 아니면 세금으로 메꿔 주든지. 결국 국민 돈으로 건설회사만 살찌운 것이다. 이런 상황이니 애써 건설 비용을 줄일 유인이 없다. 아니 오히려 호화롭고 방만하게 지어도 문제가 없다. 정부가 차액을 보전해 줄테니…

 

이런 ‘땅짚고 헤엄치기’에 재빨리 끼어든 투자자가 바로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초국적기업 맥쿼리다. 맥쿼리는 당장 문제가 되고 있는 지하철 9호선이나 우면산 터널, 광주 순환도로는 물론 전국의 돈이 될만한 인프라 건설엔 빠짐없이 투자했고, 심지어 세계 1위를 자랑하는 인천공항공사도 넘보고 있다. 말하자면 이명박 대통령은 시장 시절부터 토목공사를 벌여 실적을 올리다가 이제는 돈 될만한 국가 자산을 팔아넘겨 맥쿼리에게 돈다발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MAC

초국적기업 맥쿼리는 인천공항공사 등, 돈이 될 만한 우리나라의 사업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지하철 9호선의 2대 주주인 맥쿼리는 오스트레일리아 회사지만 맥쿼리한국인프라투융자회사에 미국인 투자자가 참여했거나 맥쿼리인프라의 다른 지분에 미국인이 투자했다면 한미FTA의 ISD를 이용할 수 있다.

 

 

그래서 지하철 9호선이…

지하철 9호선도 마찬가지다. 2005년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은 운영권자에게 ‘세후 실질사업 수익률’을 8.9%까지 30년간 보장하는 계약을 맺었다. 이 예상 수익의 90%까지를 서울시가 보전하게 되어 있는데 현재 요금으론 서울시의 재정이 계속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 말도 안되는 계약을 파기하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사실이다. 바로 한미 FTA의 투자자국가중재제도(이하 ISD) 때문이다. 지하철 9호선의 2대 주주인 맥쿼리는 오스트레일리아 회사지만 맥쿼리한국인프라투융자회사에 미국인 투자자가 참여했거나 맥쿼리인프라의 다른 지분에 미국인이 투자했다면 한미FTA의 ISD를 이용할 수 있다. 서울시의 최강수인 사업자 취소는 정확히 ‘간접수용’에 해당된다. 

 

FTA

ISD는 한미FTA의 대표적인 독소조항 중 하나다. 

 

그럼 눈뜨고 당하는 게 옳을까?

 
난 이 건이 서울에서 터진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ISD가 무서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한다면(위축효과, chilling effect) 맥쿼리를 비롯한 모든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제 마음대로 요금을 올리는 등 횡포를 부릴 것이다.

 

ISD가 특히 미국인 투자자에게 유리했다는 건 역사적 사실이지만 매번 그들이 이긴 건 아니다. 그들은 예상 승률에 예상 보상금을 곱한 금액과 서울시가 제시한 인수 금액을 비교할 것이다. 서울시가 강한 의지를 보이면 보일수록 그 금액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만일 ISD에 걸려 패소한다면? 이명박 대통령은 그가 아무 문제없다던 ISD가 얼마나 무서운 건지 실증한 것이다. 이런 사태가 벌어진다면 현 정부가 지금 추진하고 있는 KTX 일부 민영화 등 각종 민영화 사업도 제동이 걸리게 될 것이다.

 

 
광우병도 한미FTA로부터 자유롭지 않아

글을 마무리하려는 즈음, 미국에서 네 번째 광우병 소가 확인됐다는 뉴스가 나왔다. 미국이 사료 규제를 강화한 이후론 아무런 문제가 없다던 그 광우병 소가 또 발견된 것이다. 기실 미국의 사료 규제는 유럽에 비해서 터무니없이 약하고 광우병 검사도 0.05%~1%만 하고 있으며 이력추적제도 시행하고 있지 않으니 이 사건은 예정되었던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미국 방문 선물로 쇠고기 수입 완전 자유화를 약속했다. 그 해 봄부터 뜨겁게 타오른 촛불은 광우병 위험물질이 집중되어 있는 내장 등의 수입을 겨우 막았다. 수입 제한의 형식은 미국 업자들의 ‘자율규제’였고 그것은 ‘한국민의 신뢰가 회복되면’ 풀리게 되어 있었다. 한국 정부는 한미FTA 발효를 계기로 그 조건이 성숙되었다고 선언할 참이었다. 참으로 적절한 시기에 사건이 터진 것이다. 당분간 미국 쇠고기 수입은 중단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작년 11월 우리가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날치기 통과만 막았더라면 이 두 사건은 한미 FTA 비준을 또 한 번 막았을 것이다. 안타깝고 통탄할 일이다. 앞으로도 이런 사건은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다. 한미FTA 폐기의 명분이 빠른 속도로 쌓이고 있다. 정권을 누가 잡느냐에 따라 한미FTA의 사망 시기가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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