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2년 06월 2012-06-04   1178

[경제] 진보 시즌2

진보 시즌2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지난 5월 13일 새벽, 여느 휴일처럼 나는 연구원에 출근했고 컴퓨터를 켰다. 한동안 멍한 상태로 화면만 쳐다보다 페이스북에 “저는 오늘 통합진보당에 입당합니다”라고 썼다. 단 15자였고, 한참 뒤에 스스로 단 댓글 두세 개를 합쳐도 200자가 되지 않을 것이다.

“분명 80년대 시작된 운동이 한 막을 내렸습니다. 진보 시즌2를 시작해야죠. 현재 상황에선 장기 표류가 불가피할 것 같습니다. 조금이라도 시즌2 개막을 앞당겨야죠”

 

 

진보시즌2

 

 

진보의 시대에 자멸하는 진보

뭔가 해야한다는 절박감, 그리고 진보정당에 대한 죄책감(2007년 겨울, 나는 민주노동당 비상대책위원이었다)에 떠밀린 즉흥적 행동에 수없는 댓글이 달리는 것부터 수상하더니, 그예 언론에서 ‘진보 시즌2’의 시작이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이제 ‘시즌1’은 무엇이고 ‘시즌2’는 어떤 점에서 다른지부터 설명해야 할 판이다.

 

 

지금은 역사의 대전환기다.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유발된 세계금융위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아니 유럽의 재정위기가 겹치면서 세계는 ‘장기 침체’의 모래수렁으로 하염없이 빠져 들고 있다. 1929년 대공황 때 폴라니가 그랬던 것처럼 역사는 현재를 ‘대전환기’로 기록할 것이다. 유럽의 사회주의자들, 미국의 진보주의자Progressivist들, 그리고 케인즈나 비버리지와 같은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은 당시에 전후의 ‘황금기’를 설계했다.

 

 

새사연의 새 책, 『리셋 코리아』에서 나는 어설프게나마 그런 설계도를 그리려 했다. 앞으로 전후의 ‘복지국가’와 같은 구상은 동아시아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성장세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더 성숙한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함께 끓어오르는 곳이기 때문이다. 하여 아시아 진보주의자들의 역할은 막중하다. 시민사회가 미성숙한 중국, 중앙정치가 실종된 일본을 고려한다면 한국의 진보주의자가 해야 할 역할은 가히 세계사적이라고 할 만하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진보정당의 오랜 주장은 이제 현실이 되었다. 이름마저 바꾼 새누리당도 복지 경쟁에 나서고 민주당은 미적미적 경제민주화를 간판으로 내걸었다. 통합진보당이 13석을 얻은 것도 이런 흐름을 올라탔기에 가능했다. 이제 바투 다가온 대통령 선거에서 단순한 정권교체를 넘어 바야흐로 ‘시대교체’가 이뤄질 판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한 줄기 빛도 아쉬웠던 엄혹한 때에도 결기에 찬 목소리로 장담했던 새로운 시대가 막 열리려는 순간, 광장에 쏟아지는 햇빛에 눈을 뜨지 못하는 걸까, 온갖 몰상식을 다 드러내면서 굳이 골방으로 퇴행하려는 건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진보의 시대에 진보가 자멸하고 있다.

 

 

시즌2에 해야 할 일

70~80년대의 운동은 이제 조종을 울렸다. 냉전시대가 우리 몸에 아로새긴 폐쇄성, 비타협성, 좁은 시야는 우리가 ‘타는 목마름으로’ 달성한 민주주의마저 부정하고 있다. 선진적인 진성당원제와 비례대표 직선제가 ‘부정선거’의 장으로 전락한 것은 그 상징적 예이다.  국민의 일반 상식이 쇄신을 요구하는데도 당원의 1%도 안되는 정파 구성원만으로 ‘당원 비대위’를 구성하여 ‘이중권력’을 꿈꾸는 것은 극단의 사례이다.

 

 

지금이야말로 과거의 모든 이념과 행동양식을 성찰하고 지양해야 한다. 그것이 진보의 정의 자체이고, 즉 한 발 더 나아가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선 그동안 우리가 ‘부르주아 민주주의’라고 비판했던 현실의 민주주의를 한 단계 높이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과연 ‘민주집중제’가 그 답일까? 아니면 서구 민주주의론이 현재 다다른 ‘숙의민주주의’를 도입하면 그만인가? 2008년 촛불이 보여준 ‘직접민주주의’의 열망과 힘을 기존의 대중조직운동과 결합하는 묘방은 무엇인가? 거기엔 또 어떤 새로운 민주주의의 내용이 필요한 것일까?

 

 

보편복지를 완성하려면 진보정당이 커야 하고, 스웨덴 LO와 같은 노동조직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습관처럼 말을 하지만 과연 어떤 구체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일까? 과연 ‘노동중심성’을 관철시키면 문제가 해결될까? 우리는 그동안 비정규직의 실태를 냉철하게 비판하고 현장의 투쟁에도 뜨겁게 동참했는데 왜 아직도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LO의 ‘연대임금’같은 감동적면서도 현실적인 처방, 진보의 비전을 갖춘 구체적인 정책은 무엇일까?

 

 

당장 떠오르는 두 개의 사례를 들었지만, 우리 모두 내팽개쳤던 이런 문제는 무궁무진하다. 확실한 것은 우리가 베낄 것은 세계 어디에도 없으며 우리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시즌2는 이제 모든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80년대 사회구성체 논쟁처럼 지나치게 추상적이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한없이 표류할 여유도 없다. 자기 의견을 관철하는 것이 아니라 남과 의견을 나눠서 합의된 공통선Common Good을 찾아야 한다. 소통은 이명박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생각을 최대한 벼려 토론하되 자신의 의견을 바꿀 수 있는 용기야말로 진보이다. ‘진보 시즌2’가 실천해야 할 것은 공공이성과 집단지성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합의된 작은 것부터 당장 생활 속에서 실천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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