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3년 08월 2013-07-26   1664

[여는글] 행복, 좋은 삶

여는글

 

행복, 좋은 삶

 

요즘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 How Much is Enough?>라는 책을 읽고 있다. 스키델스키 부자(父子) 공저인데, 아들은 철학자이고 아버지 스키델스키는 케인즈 전기 3부작을 쓴 잘 알려진 케인즈 전문가다. 부자가 책 한 권을 함께 만들어 세상에 내놓았다는 게 우선 부러웠다. 서문을 보니 두 사람은 책 쓰는 동안 내내 행복했고 집필기간은 서로를 발견하는 항해의 과정이었단다. 아직 다 읽어보지 못했지만 인간에게 돈과 부가 무엇이며 또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성찰을 한번 해보라,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맹목적 성장 추구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를 깨닫게 될 것이라는 것이 이 책의 핵심 주장인 듯하다.   

 

아주 옛날 일이다. 아마도 이십대 때였으리라. 그 때 어느 라디오 방송에서 DJ를 보던 가수 양희은이 낭랑한 목소리로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인생에서 돈만 맹목적으로 추구한다면 그 인생은 잘못된 거다. 인생에서 돈이 첫째는 결코 아니다. 그러면 둘째냐? 그렇지도 않다. 돈 없어봐라, 그 인생이 뭐가 되겠냐. 그러니 인생에서 돈은 첫째도 아니고, 둘째도 아니다. 돈이란 무엇인가?’ 

 

How Much is Enough?

 

요즘 행복경제학을 접하게 되면서 양희은의 이 말이 무슨 화두나 된 것처럼 더 자주 생각난다. 행복경제학은 돈과 부에 비례해서 그만큼 사람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명제(이스털린 패러독스)에서 출발해서, 소득 외에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은 무엇인가를 탐구한다. 그런데 그 연구결과는 너무나 상식적이다. ‘좋은 삶’을 누리려면 건강해야 하고, 좋은 배우자와 가족이 있어야 되고, 친구나 직장동료들과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해야하며, 일정한 소득도 있어야 한다는 등등. 이것들은 우리가 이미 다 아는 것들이다. 너무 당연한 말들이라 이런 걸 굳이 연구해봐야 아느냐고 힐난해도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 이 당연하고 자명한 말이 우리 삶의 진정한 북극성이었는지를. 돈만으로 사람이 행복해 질 수 없음을 안다면서, 우리는 그 반대로 시장경쟁 메카니즘에 매몰되어 돈만을 위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이는 아마도 우리 사회가 성장에 중독된 사회이고 시장은 끝없는 경쟁과 소비의 욕구를 창출해내는 구조이다 보니, 한 개인이 사회와 시장의 거대한 흐름을 거스를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알면서도 아는 대로 행하지 못하는, 구조가 만든 불행인 것이다.

 

행복연구의 메시지는 간단하다. 시장은 소득을 주지만 반드시 그만큼 행복을 주는 것은 아니다. 시장에서 한 발을 빼서 가족, 친구, 동료 등과 좋은 시간을 보내라. 공동체적 관계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 그러니 작은 공동체들을 만들고 참여하라. 혼자서 TV보고 혼자서 볼링을 하는 삶이 행복할 수는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우정, 사랑, 공동체 참여라는 삼총사가 인간의 삶을 완성시키는, 따라서 자동적으로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덕성이라고 했다. 물론 좋은 성품, 건강이나 재물과 같은 행운도 있어야겠지만, 더불어 사는 삶 즉 공동체적 삶도 ‘좋은 삶’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라는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 두 사람이 함께 책을 만든 스키델스키 부자가 부러웠다. 얼른 생각해도 공동 작업을 하려면 우선 두 사람 사이가 좋아서 각자가 상대방 사정을 잘 이해하고 배려해서 일의 호흡을 서로 척척 잘 맞출 수 있어야 한다. 좋은 친구나 연인들처럼 말이다. 더구나 그것이 책을 쓰는 일이라면 두 사람이 가진 세상 보는 눈이나 세계관, 문제의식, 지식의 깊이, 글쓰기 재주, 이런 것들이 좋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웬만한 행운이 아니면 그런 지적 동반자를 만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아버지와 아들 사이가 그랬다니 정말 드문 일이다. 부럽다. 스키델스키 부자의 좋은 관계는 그들이 만들고 있는 ‘행복, 좋은 삶’에 대한 증명이리라.  

 

 

김균 경제학자. 현재 고려대 교수이자 참여연대 공동대표. 노년이 지척인데 아직도, 고쳐야 할 것들이 수두룩한 미완의 삶에 끌려다니고 있음. 그러나 이제는 인생사에서 우연의 작용을 인정함. 산밑에 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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