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3년 12월 2013-12-05   918

[읽자] 전세도 월세도 아닌 제3의 주거

전세도 월세도 아닌 제3의 주거

 

박태근 알라딘 인문MD가 권하는 12월의 책

 

많은 이가 집을 꿈꾸지만, 그 내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월세에서 전세로, 전세에서 자가로 이어지는 단선적인 방식이거나, 아파트 또는 단독주택, 조금 나아가도 전원주택 정도가 상상의 한계다. 재산으로서의 집이라면 이 정도 상상에 평형과 입지 조건 등 투자가치만 고려하면 충분하겠지만, 삶의 공간으로서의 집을 고민한다면 어떤 사람 곁에서, 어떤 집(가구)과 함께,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느냐도 중요하지 않을까.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이런 맥락에서 새로운 주거 문화를 고민하는 움직임이 활발한데, ‘제3의 주거’라 불리는 ‘셰어하우스’와 ‘컬렉티브하우스’ 두 가지 주거 형태를 살펴보며 집과 삶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상상을 시도해보자.

 

참여사회 2013-12월 통권205호참여사회 2013-12월 통권205호
1 셰어하우스 – 타인과 함께 사는 젊은이들 | 구보타 히로유키 지음 | 류순미 옮김 | 클
2 컬렉티브하우스 – 언제나 함께하고 언제든 혼자일 수 있는 집 | 고야베 이쿠코 주총연 컬렉티브하우징 연구위원회 편저 | 자비원 옮김 | 클

 

 

셰어하우스, 자유롭게 자립하는 방법

 

셰어하우스는 일본에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생겨난 주거 형태다. 여럿이 한집에 살면서 침실 같은 개인 공간은 따로 쓰고, 거실과 주방 등 공용 공간은 함께 사용하는 방식으로, 혼자서 부담해야 하는 방세와 전기요금 같은 생활비를 나눠서 내기 때문에 경제적 부담이 적다. 물론 혼자 사는 것과 비교하면 신경 쓸 일이 많다. 욕실 같은 공용 공간 청소는 번갈아가면서 하는 게 보통인데, 어떤 사람은 윤이 날 정도로 깨끗한 수준을 원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눈에 띄는 더러움만 없으면 괜찮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 수준에 격차가 있는 경우, 함께 쓸 새로운 물건을 살 때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결국 이런 차이를 조정하는 과정이 중요한데, 명확한 규칙으로 서로를 통제하기보다는 서로를 경험하며 적절한 타협 수준을 찾아가는 게 현실적이다.

 

이렇게 본다면 혼자 사는 것도 아니고 가족과 사는 것도 아닌 셰어하우스는, 타인과의 거리감을 조정하는 방법과 타인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는 훈련 과정이라 할 수 있겠다. 『셰어하우스』는 타인을 전제하지 않은 자유, 자립, 친밀감은 성립할 수 없다고 말한다. ‘자유’는 타인과의 대화 속에서 자신을 인정받는 것이고, ‘자립’은 정도껏 타인에게 의지할 수 있는 것이고, ‘친밀감’은 함께 살면서 타인에게 느끼는 경애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셰어하우스는 집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나눠 쓸 뿐 아니라 이런 정서적 교감까지 나누는 주거 형태라 하겠다.

 

컬렉티브하우스, 따로 또 같이 사는 방법

 

컬렉티브하우스는 셰어하우스보다 크고 넓은 개념이다.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동주택으로, 각자 생활공간을 따로 쓰면서 정기모임과 공동 식사, 그룹 활동을 통해 공동체를 꾸려간다. 셰어하우스가 자생적 주거 형태라면 컬렉티브하우스는 계획적 주거 형태라고 하겠다. 입주 예정자가 모여 1년이 넘는 동안 수십 차례 워크숍을 진행하며 각자가 생각하는 집, 각자 생활에 맞는 집을 고민하고 구체적 건물에 반영한 후 그렇게 만들어진 집에서 직접 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컬렉티브하우스는 생활과 주거에 대한 사고방식과 실제 생활의 모습을 집의 형태에 반영하고, 거주자들이 살아있는 집의 주체로서 이를 가꾸어가는 주거 방식이라 하겠다.

 

임대 형식이기 때문에 입주할 때 비용 부담이 적고, 공동생활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게 장점이지만, 컬렉티브하우스에 거주하는 이들은 자신과는 다른 여러 사람과 함께 산다는 걸 가장 큰 장점으로 꼽는다. 순번제로 운영하는 식사 당번이나 청소가 익숙하지 않거나 귀찮기도 하지만,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체감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세계가 넓어지는 경험은 이곳이 아니었다면 깨닫지 못했을 거란 고백이다. 집이 잠만 자는 곳이 아니라 생활의 거점이 되어 만들어진 거주 커뮤니티. 이런 점에서 컬렉티브하우스는 주택 모델을 넘어 새로운 거주운동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겠다.

 

사람만큼 많은 집이 있다. 아니 사람보다 많은 집이 있다. 그럼에도 집은 늘 모자란다. 모두가 같은 집을 바라기 때문이다. 재산으로 환산되지 않는, 삶으로 축적되는 집이라면 어떨까. 셰어하우스가 ‘가족에게 의지하지 않고 혼자서 허덕이지 않는 삶’의 방법, 컬렉티브하우스가 ‘독립의 공간은 지키면서 고립의 시간은 줄이는 삶’의 방법으로 고민되고 만들어졌다면, 과연 당신에게 필요한 집은 무엇일까. 평형이나 집값으로 표현할 수 없는, 집에서 하고 싶은, 집으로 하고 싶은 자기 이야기를 적어보자. 내 집 마련의 꿈은 여기에서 시작되어야 하니까. 

 

 

박태근 온라인 책방 알라딘에서 인문, 사회, 역사, 과학 분야를 맡습니다. 편집자란 언제나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는 사람이라 믿으며, 언젠가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을 짓고 책과 출판을 연구하는 꿈을 품고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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