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3년 11월 2013-10-31   1561

[읽자]] 박애, 자본주의

박애, 자본주의

 

박태근 알라딘 인문MD가 권하는 11월의 책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이자 세계 최고 부자인 빌 게이츠가 280억 달러를 출연해 재단을 만들고, 미국의 투자가이자 마찬가지로 세계 최고 부자로 꼽히는 워런 버핏은 재산의 4분의 3에 달하는 370억 달러를 이 재단에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뿐 아니라 인도, 멕시코 등지에서도 각 나라를 대표하는 부자들이 이런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이들은 과거 자선사업과는 달리 직접 재단을 만들고 해결할 문제, 집중할 영역을 선택한 후, 이를 풀어갈 방법을 고민하도록 관련 기관을 지원하거나 정부와 협력하여 전 지구적 규모로 일을 벌인다. 이런 일련의 흐름을 박애자본주의Philanthrocapitalism라 부르는데, 자본주의의 탐욕과 그로 인한 불평등을 넘어설 새로운 계기로 봐야 할지, 이제는 자본주의가 박애라는 인류 공영의 가치까지 통째로 집어삼켜 ‘돈 세상’ 구현에 성공할지를 두고 여러 생각이 오가는 시점이다.

 

참여사회 2013년 11월호     참여사회 2013년 11월호 

1 박애자본주의 – 승자만을 위한 자본주의에서 모두를 위한 자본주의로 / 매튜 비숍·마이클 그린 지음, 안진환 옮김, 사월의책 / 원제 Philanthro-capitalism
2 왜 기업은 세상을 구할 수 없는가 
– 기업의 자선 활동에 담긴 불편한 진실 / 마이클 에드워즈 지음, 윤영삼 옮김, 다시봄 / 원제 Small Change : Why Business Won’t Save the World

 

승자만을 위한 자본주의에서 모두를 위한 자본주의로

 

『박애자본주의』는 길게는 수십 년, 짧게는 최근 몇 년 동안 벌어진 ‘박애자본주의 현상’을 일별하면서 박애자본주의가 현 단계 자본주의를 넘어설 변화이자 혁신이라 말한다. 가장 중요한 차별성은 박애자본가의 기부가 자선 행위가 아니라 투자 행위에 가깝다는 점이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투자는 금전적 이익보다는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한 투자이고, 이로써 사익과 공익이 합치되는 지점에 이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투자’라는 행위에 걸맞은 비즈니스 방법론이 적용되는데, 바로 효율과 성과 측정이다. 이는 박애자본가가 세운 재단이 비용 대비 효과에서 더 나은 결과를 얻는 동시에 기부를 하는 이들에게 효과적인 기부 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기도 한다. 또한 박애자본가들은 대개 모험가에 가깝다. 특히 최근 들어 이런 현상을 주도한 이들은 대부분 지식산업과 금융투자를 통해 부자가 되었는데, 이런 성향이 박애자본주의 활동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이들은 개별 정부나 국제연대로도 해결이 요원한 일에 과감하게 도전하면서 성과를 내는데, 대표적으로 빌 게이츠의 말라리아 백신 개발을 들 수 있다. 지난 10년 215조를 투자한 이 프로젝트는 최근 1차 백신 개발에 성공했고, 곧 접근 가능한 싼값에 배포되어 매년 수십만 명의 생명을 구할 거라 예상된다.

 

기업과 사회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어떤 현상이 벌어지면 이에 대한 반작용이 있기 마련이다. 옥스팜, 세이브더칠드런, 포드재단 등에서 오랜 기간 운영자로 일한 마이클 에드워즈는 『왜 기업은 세상을 구할 수 없는가』에서 박애자본주의를 가차 없이 비판한다. 세금 감면이나 재단 운영을 통한 재산 상속 등 박애자본주의의 선의에 대한 의심은 늘 있었다. 하지만 이 의심은 답을 내릴 수 없다. 겉으로 드러난 결과에 앞선 의심이 포함된다고 해도 박애자본가가 애초 가진 양심에 대해서는 본인 외에는 누구도 알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박애사업과 기업적 사고를 접목하는 현상에 대해 ‘사기’라고 단언한다. 효율 중심의 기업적 사고는 사회 변혁을 위한 더 깊은 변화를 외면하게 만들고, 여럿이 함께 가는 의사결정의 과정을 손익계산의 문제로 축소하는데, 이렇게 기업적 사고가 시민사회를 장악하게 된다면 빠른 변화는 가능할지 몰라도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가는 힘은 축적되지 않는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또한 결핍 충족과 권리 실현, 소비자와 사회 참여자, 기술적인 문제와 정치적인 문제, 속도와 인내 등 두 영역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애초에 같은 질문에 대한 서로 다른 해답을 내놓은 게 아니라 전혀 다른 질문을 던져왔다고 냉정하게 평가하는데, 양측이 제시하는 자료의 문제보다는 서로가 지향하는 방법과 가치의 문제라 어느 한 편으로 판단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실제로 앞선 책에서는 이 책에 대해 기업적 사고를 너무 협소하게 정의했기 때문에 시민사회에 해를 끼친다는 오해에 빠졌다고 말하고, 이 책에서는 앞선 책의 장밋빛 분석과는 달리 박애자본주의는 일시적으로 구축된 독점산업 시기의 산물이라고 평가한다.

 

부를 독점0는 자본가와 자선을 실천하는 영웅은 한 사람 혹은 한 집단 안에서 동시에 실현될 수 없는 걸까. 말라리아를 퇴치하는 백신을 넘어 탐욕, 가난, 불평등, 부패를 치유하는 사회적 백신을 만들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면, 서로의 선의가 서로를 돕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을 구하는 방법이 더욱 다채롭고 폭넓게 펼쳐진다면, 시민사회가 이를 조정하고 선도할 역량을 보여준다면, 논쟁은 생각보다 시시하게 끝날지도 모르겠다. 그날이 하루라도 앞당겨지길 바란다. 

 

 

박태근

온라인 책방 알라딘에서 인문, 사회, 역사, 과학 분야를 맡습니다. 편집자란 언제나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는 사람이라 믿으며, 언젠가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을 짓고 책과 출판을 연구하는 꿈을 품고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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