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3년 12월 2013-12-05   5726

[만남] 로만 칼라를 입은 사나이 – 민경일 신부

참여사회 2013-12월 통권205호

 

로만 칼라를 입은 사나이 

민경일 신부

 

호모아줌마데스

사진 Nina Ahn 

 

평생을 빈민 구호에 헌신한 프랑스의 신부 아베 피에르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중요한 점은 종교인과 비종교인의 차이가 아니라 돌보는 자와 돌보지 않는 자의 차이다”라고.

“곧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니 신부님이나 수녀님을 모셔서 은혜롭고 따뜻한 이야기를 들어보자는 게 이번 달 콘셉트예요.”

신부님? 무슨 계시였을까? 이즈음 손에 잡는 책마다 모두 신 아니면 종교 관련 서적이었고 소설도 하필 젊은 수사의 사랑 이야기였다. 잠시 기막힌 우연에 감탄을 하다 책 제목들이 눈에 박히는 순간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유신론의 근거들을 하나씩 격파하고 있는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무신론의 고전인 버트런드 러셀의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종교 테러리즘과 과학 일방주의에 대해 폭넓은 성찰을 담은 『종교전쟁』. 이쯤 되면 제아무리 성탄절이라도 은혜로운 이야기만 오고갈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어쩐다……. 

 

한마음한몸운동본부

 

명동성당 옆 가톨릭회관 4층. 민경일 신부님의 사무실 안. 당연히 십자가 발견. 그러나 예상치 못한 것들도 눈에 띔. 예를 들면, 무한도전 달력이라든가 여자 연예인 사진이라든가, ‘미남 경일’이라 쓰인 응원용 팻말이라든가. 문득 인터뷰가 길어질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여자 연예인 사진을 보여주시며) 아, 이분요, 저희 단체 홍보대사세요.”

그 단체란 바로 그가 부본부장을 맡고 있는 한마음한몸운동본부를 말한다. 단체 소개를 부탁드렸더니 곧바로 프리젠테이션을 위해 아이패드와 핸드폰을 꺼내곤, 헉! 블루투스로 연결을 시도하신다. 인터뷰이가 ‘신부님’이라고 했을 때 내가 상상했던 건 대체 언제 적 버전이란 말이냐.

“한마음한몸이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한 마음 한 몸이 되게 해달라는 뜻이에요.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에서 당신의 몸과 피를 우리에게 모두 내주셨듯이 우리도 그런 나눔을 실천하고 생명을 살리는 정신 안에서 살자는 것, 그것이 저희 단체의 비전입니다.”

나눔의 실천은 국제개발협력, 인도적 구호, 국제자원활동 등으로 이루어지며 생명을 살리는 정신은 장기기증운동, 백혈병난치병 청소년지원사업, 자살예방센터 운영 등과 같은 사업 안에서 구체화되고 있다.

“띠앗누리라는 국제청년자원활동단도 운영하고 있어요. 그저 참가자가 가난한 나라에 가서 봉사하고 오는 게 아니라 지구라는 마을의 시민으로 함께 산다는 것에 대해 배우는 프로그램이죠. 그래서 떠나기 전에 빈곤, 인권, 환경, 청년문제 등 글로벌 이슈들에 대해 미리 공부해요. 교육하면서도 우리가 시혜를 베푸는 입장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에게서 많은 걸 배우고 받는 입장이라는 걸 강조하죠.”

 

참여사회 2013-12월 통권205호

 

가톨릭에서 운영한다고 해서 종교를 기반으로 하는 것도 아니다. 파키스탄에서 벌이는 활동은 현지의 이슬람 종교단체와 함께 일한다. 

“개인적으로는 국제개발협력 분야의 일을 많이 했고 그래서 애정이 더 가기도 해요. 대학원에 진학해 NGO 관련 공부도 했었고, 국제개발협력시민위원회 운영위원으로 함께 하기도 하고 요즘엔 ‘인권에 기반을 둔 국제개발’과 관련된 내용으로 강의도 많이 하고 있어요.”

한국인권재단의 이사를 맡고 있을 정도로 인권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은 그다.   

“인권에 관심이 많은 이유요? 음, 이건 그냥 교회가 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교황청 문헌 중 ‘지상의 평화’라는 글에도 인권의 중요성이 분명히 나와 있구요, 그리고 그 안에는 정치 참여의 권리와 의무에 대해서도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야기가 갑자기 핫코너로 흘러들어갔다. 정치와 종교가 만나면? 내 대답은 ‘폭발한다’이다. 

 

같은 질문을 던지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입에서도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교황님이 내린 회칙의 첫 번째 수신자는 모든 주교를 포함한 성직자들입니다. 따라서 사제라면 정치에 참여하는 게 너무 당연한 거고, 가톨릭 사회교리 첫 번째에 해당하는 공동선의 원리를 실천하기 위해서도 정치 참여는 꼭 필요한 것입니다.”

 

공동선은 단순히 각 사람들의 개별적 선을 종합하여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사회적·공동체적 차원에서 모든 인간이 함께 해야만 달성할 수 있는 것, 그래야 미래에도 그 효력을 보존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공동의 선’인 것이다. 한 개인의 도덕적 자질이 선을 행함으로써 성취되는 것처럼, 한 사회도 공동선을 이룰 때 완전한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 

 

“사실 제가 굉장히 사회 참여적인 사람이라고 생각진 않아요. 처음부터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한 건 아니었구요. 2009년 용산참사 현장에 미사를 드리러 갔던 게 처음이었는데, 그저 연대하는 차원에서 갔었죠. 전 맡고 있는 성당이 없기 때문에 부활절이나 성탄절이 되면 어딘가에 가서 미사를 해야 해요. 그럴 때마다 두물머리 4대강 공사 현장이나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농성 현장에 가서 미사를 드렸죠. 특히 두물머리에서 미사를 드릴 때 참 좋았어요. 비슷한 지향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기도할 때 느껴지는 일체감 같은 것도 있고, 그런 곳에 가면 오히려 제가 힘을 받고 와요. 그 이후로 강정 해군기지 건설 현장에도 갔다 오고, 그런 곳을 찾아다니게 되더라구요.”

정치 얘기를 하면서 몇 번, 그는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무엇이 그를 조심스럽게 하는지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같은 신을 섬기는 사람들 안에서도 신념과 지향은 다를 수 있기에, 예수의 삶을 읽어내는 방식은 하나가 아니기에.

 

“신부로서 가장 훌륭한 삶은 예수님을 닮는 것이겠죠. 예수님은 창녀, 세리, 이방인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사셨어요. 그들은 당시 사회라는 테두리 밖에 존재하는 사람들이었죠. 예수님은 결국 율법을 핑계 삼아 사람들을 이리저리 구분 짓고 핍박하던 이들에게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신 거죠.”

인터뷰를 준비하며 무신론적 신념으로 똘똘 뭉친 내가 신부님을 만나서 과연 은혜로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염려했었다. 내심 그와 신의 존재에 대해 진지한 논쟁을 벌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했다. 그러나 세상에 대해 동일한 답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신을 섬기는 그와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나는, 세상을 향해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인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해답을 공유한 공동체가 아니라 질문을 공유한 공동체라는 어느 책의 한 구절이 다시 한 번 뒤통수를 세게 내리치는 순간이었다. 

 

참여사회 2013-12월 통권205호   참여사회 2013-12월 통권205호
1 신학생들이 시작해서 지금은 ‘신부님 밴드’가 된 우니타스94의 공연이 올해 4월 26일, 혜화동 성당에서 열렸다. 민경일 신부는 이 밴드에서 베이스기타를 연주한다. 
2 2011년 4월 23일, 부활절 밤 두물머리에서의 미사. 모든 것을 빼앗기고 ‘함께 있음’을 필요로 하는 이들과의 미사에서 민경일 신부는 힘을 받는다고 한다. 

 

은혜로운 말씀

 

“신부가 된 계기가 특별하게 있는 건 아니에요. 어릴 적엔 가족들 모두 성당에 가면서 저만 어리다고 안 데리고 갈 때 무척 서운했던 기억도 있고, 대학생 땐 성당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맡아서 매일 새벽 미사를 다니기도 했고, 그러다 이렇게 성당에 다니고 매일 기도하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대학에서 화학을 공부하던 한 청년이 신부가 되겠다 마음을 먹은 일, 어쩌면 그것은 그의 말처럼 한 사람의 개인적 선택이 아니라 신의 부름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제 취미들을 보면 세속적인 욕망이 없는 것도 아니고, 여학생들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도 아닌데, 그 당시엔 무엇보다 신부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더 강했던 것 같아요.”

그의 취미는 카메라, 요리, 음악 등 분야도 다양하다. 틈틈이 찍은 사진들로 로마에서 공부할 때 만난 신부님들과 함께 인터넷에 갤러리를 운영하기도 하고, 여건만 된다면 직접 요리를 해서 사람들과 나누어 먹는 것도 즐긴다. 무엇보다 이 세속적 욕망의 클라이맥스는 가죽 재킷을 입고 기타를 든 그의 사진이었다. 

 

“우니타스94라는 밴드에서 베이스기타를 연주해요. 모두 신부님들로 이루어진 밴드예요. 1998년, 제가 신학생 때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죠. 성당에서 공연한다고 해서 성가를 부르진 않아요, 절대로. 주로 락 음악을 연주하죠.”

신부복을 벗어 던지고 기타를 어깨에 멘 그가 메탈리카의 음악을 연주한다. 공연의 마지막엔 앵콜 곡으로 강남스타일을 부르기도 했다. ‘미남 경일’이란 팻말이 등장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아, 신부님! 너무 과하게 멋지신 거 아녜요?  

“신부가 될 때 이런 이야길 많이 들었어요. 신부가 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신부로서 죽는 게 더 중요하다고. 2002년에 사제 서품을 받았으니 이제 햇수로 12년째네요. 신부로 산 날들 보다 앞으로 신부로서 살아야 할 날이 더 많이 남았죠.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해요. 근데 아는 신부님이 그러시더라구요. 하느님이 딱 견딜 수 있는 만큼의 힘은 주신다고.”

‘내가 너희와 함께 있겠다.’ 사제 서품을 받으며 가슴에 새겼던 그 한 마디. 그렇게 하느님이 자신의 빽이라 자랑하는 그에게 성탄절을 앞두고 ‘은혜로운’ 한마디를 부탁했다.   

 

“성탄의 의미는 생일 파티가 아니에요. 예수라는 신이 모든 걸 버리고 인간들 사이로 내려온 것, 그 의미를 되새기고 진정한 나눔을 실천하는 데 의의가 있는 거죠. 그래서 앞으로 기부 문화에 대한 생각도 많이 달라져야 해요. 나눔을 개인의 호의에 기댈 것이 아니라 정책적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거죠. 부자가 할 일은 기부가 아니라 세금을 더 내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참여연대를 포함한 시민단체들도 기부 문화 확산에만 에너지를 쏟을 게 아니라 조세 정책에 대해 더 활발한 논의를 해야 해요.”

‘세금.’ 이보다 더 은혜로운 성탄 메시지가 또 있을까. 

 

예수 이름으로  

 

가시관을 쓴 예수를 마주할 때마다 난, 신의 아들이기에 앞서, 하느님과 신성을 나누어 가진 자이기에 앞서, 그저 우리 인간의 모습을 한, 고뇌하고 분노하고 절망하는 한 청년의 얼굴을 보았다. 그 서글픈 얼굴에서 때때로 위안을 받은 건 그 때문이었다. 인간이기에 짊어져야 하는 삶의 무게를 함께 나누어졌던 남자. 예수가 신으로서 위대한 까닭은 그가 한때 인간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제가 찾아가서 미사를 드렸던 현장들은 ‘함께 있음’을 필요로 하던 사람들이 있던 곳이었어요. 예수가 신으로서의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인간 사이에 오신 것처럼, 저도 이 지상에서 모든 것을 빼앗긴 사람들 가운데 함께 섰을 때, 그제야 비로소 부활과 성탄의 의미에 한발 더 다가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 내 앞엔 예수의 삶을 따르려 하는 한 사나이가 앉아 있다. 그의 목에 둘러진 흰 빛의 로만 칼라. 세상의 명예와 지위를 모두 거부한, 청빈과 평등의 가치를 실현하며 신을 섬기겠노라는 그 하얀 약속을 난 오래 바라보았다. 

 

 

호모아줌마데스 두 딸을 키우고 있는 애 엄마. 2007년 참여연대 회원 가입과 동시에 자원활동 시작. 아카데미 느티나무에서 ‘백인보’라는 코너에 비정규적으로 인터뷰 글을 쓰고 있음. 특기사항 : 합기도 빨간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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